[취재파일] 30세 청년 안중근의 하얼빈

이주상 기자 입력 2022. 8. 1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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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의 소설가 김훈이 '하얼빈'을 출간했습니다. 이번에는 안중근 의사의 내면을 치밀하게 들여다봤습니다. 안중근의 일생 전체보다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결심하고 결행하는 과정, 그리고 처형당하기까지의 기간을 특유의 짧은 문장들도 복원해냈습니다. 문학적인 성취나 평가는 전문가들의 분석과 일반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대신, 소설 출간을 맞아 김훈 작가가 직접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소설의 기본 구조와 역사적 함의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소설은 세 가지 갈등 구조가 핵심 축이라고 김훈 작가는 밝힙니다.

우선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갈등 구조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선악 구도는 아닙니다.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 '죽어 마땅한 극악무도한 민족의 원수'라는 설정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인 역사 속 인물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이미 뮤지컬 '영웅'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웅'의 뮤지컬 넘버인 '운명'이라는 곡에는 "서로가 각자 조국을 위해 뛰었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안중근은 '조국의 평화'를 위해, 이토는 '일본의 번영'을 위해 각자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것이라는 해석이었죠.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두 번째 갈등 구조인데, 김훈 작가는 "문명개화와 약육강식 사이의 시대적인 갈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안중근과 이토 모두 '동양평화'를 목표로 삼았지만, 이토에게 동양평화는 각국이 일본의 지배하에서 문명개화를 이루는 것이었고, 안중근에게 동양평화는 독립된 각국의 진정한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안중근을 둘러싼 종교적 갈등 구조입니다. 세례명 토마스로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의 내적 갈등도 있지만, 그 시대 한국에 와 있던 천주교 신부들의 현실과 이상도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선교를 위해 서양에서 온 당시 신부들의 경우 "반쯤은 천국에 속해 있고, 또 나머지 반쯤은 제국주의적 현실에 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뮈텔 주교와 안중근에게 세례를 줬던 빌렘 신부가 그런 대립적인 측면을 드러내는데, 빌렘 신부는 '살인을 저지른' 안중근을 찾아가 고해성사를 베풀었고, 한국에 간신히 자리 잡은 천주교를 보호하기 위해 뮈텔 주교는 이에 반대했습니다.


소설 '하얼빈'의 현재적인 의미에 대해 "안중근을 그 시대에 가둬두고 싶지 않았다"는 구절이 보도자료에 있는데 앞뒤에 별다른 설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기자가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 질문하자 작가는 그다음 문장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동북아 정세가 안중근의 시대보다 오히려 더 엄혹한 환경'이라는 말에서 그런 고민의 일단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일본 제국주의만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남북으로 갈린 채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 4국의 상호 견제와 중국의 급격한 부상으로 훨씬 복잡해진 관계 속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 사상을 지금 어떻게 부활시키느냐에 대해서는 정답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번 소설이 '반일 민족주의'로 읽히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의 목소리를 분명히 했습니다. 국권이 짓밟힌 안중근 시대에는 민족주의가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정신적 동력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민족주의가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이데올로기로서 매우 허약"해졌다고 말합니다. 요즘처럼 "모든 이념과 갈등이 대립하는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사회를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낭만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입니다.

안중근의 삶을 소설화하는 것이 '일생의 과업'이었다는 표현도 보도자료에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설명도 있었습니다. 일생 또는 필생의 과업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그 주제에 대해 평생을 붙들고 있었어야 했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젊어서 접했던 안중근 이야기가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합니다. 대학시절 자신을 사로잡은 책으로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일본인들이 작성한 '안중근 심문 조서'를 꼽았습니다. 그 두 작품이 자신의 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다만, 끊임없이 생각을 해왔던 것은 아니고 중간에 잊고 지내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필생의 과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훈 작가는, 자신의 작품은 '역사소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이나, '남한산성'의 최명길과 김상헌, 그리고 '하얼빈'의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모두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익숙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했지만, 그 역사적 환경에 대응하는 인간의 정신적 내면과 살아있는 삶을 그리려고 했다는 취지입니다. 이번 소설 '하얼빈'에서도 안중근의 삶 전체가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 저격 시점의 30살 청년 안중근을 그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뜻을 함께 했던 우덕순과의 대화를 간결하게 그려내며 "청춘은 정말로 찬란하구나. 청춘이라는 것이, 더 나이 먹어서 완성된 세월을 기다리는 그 기다림의 세월이 아니라 그 순간에 이미 완성돼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말로 청년 안중근에 대한 헌사를 정리했습니다.

김훈 작가의 설명을 듣다 보면, 소설의 서사 못지않게 역사 인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물들 모두 역사 속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했던 사람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문학동네 제공)

이주상 기자joos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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