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이 사라진 자리, 희뿌연 도심의 속내와 조우하다 [박윤정의 샌베노 몽골]

2022. 8. 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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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붉은 영웅 의미 '울란바토르' 러시아어서 유래
새롭게 건설되는 건축현장과 널브러진 자재들
뜨겁고 텁텁한 공기·진동하는 술냄새 발길 잡아
스트바트르 광장엔 졸업식 사진 찍는 인파 가득
헤매다 들어선 국영백화점엔 주류 매장만 즐비
몽골 수도를 들어서기 위해 음주 검사를 마치고 매연을 뿜어대는 차 뒤꽁무니를 따라붙는다. 몽골은 매월 1일, 정부에서 주류를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한다. 중요한 선거일에도 물론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전 시간에 톨게이트에서 경험한 음주 검사가 신기하여 안내하는 기사에게 물어보니 알코올중독자가 많아서라고 설명한다. 본인의 막내딸 역시 음주차량에 치여 사망했다며 어리석은 자들을 비난한다. 아픈 기억을 건드린 것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사과를 건네었지만, 이야기를 끊지 않고 이어간다.
몽골 국립 놀이공원.
몽골은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알코올 판매 일수를 줄이도록 권고받기도 하였단다. 음주로 인한 범죄가 증가하고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한 예로 2020년 상반기 몽골 내 가정 폭력 사건 53.3%가 음주 때문이라는 통계가 있다. 긴 겨울 탓일까? 도심에 들어서니 거리에 술 취한 사람들 모습이 문뜩 눈에 띄기 시작하는 것 같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는 ‘붉은 영웅’이란 뜻이다. 표기는 몽골어가 아닌 러시아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풍경은 초록의 초원이 사라지고 희뿌연 건물이 뜨거운 태양 아래 펼쳐져 있다. 새롭게 건설되고 있는 건축 현장들과 널브러진 자재들이 엉켜져 블록들을 쌓고 있다.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마치고 객실로 들어선다. 객실 창가로 몽골 국립공원이 보인다. 놀이기구들이 태양 아래 뜨거운 열기를 받으며 끓고 있는 듯하다. 천막 하나 보이지 않는 공원에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다. 냉장고의 시원한 물을 한 잔 들이켠다. 열기로 뜨거워진 체온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인지 매연으로 인한 매캐한 목을 씻어 내리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울란바토르는 뜨거운 열기와 텁텁한 공기로 맞이한다.
울란바토르 시내 풍경.
호텔 직원에게 시내 지도를 건네받고 조언을 구한다. 도심은 그다지 넓지 않아 걸어서 둘러볼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관광지는 대부분 도심 북서쪽에 있으니 우선 간단테그치늘렌 사원으로 가란다. 간단 사원은 몽골에서 가장 큰 사원으로, 공산주의 정권하에서도 유일하게 종교 활동을 보장받았던 곳이란다. 온전한 기쁨을 주는 위대한 장소라는 뜻의 몽골 최대 규모 사원을 향해 첫발을 뗀다.
울란바토르 역사는 몽골이 청나라의 지배를 받던 1639년부터 시작되었다. 1924년 울란바토르라고 개명했으며 수많은 절과 건물, 게르 촌에서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하여 몽골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중심 도시가 되었다. 비록 난방과 요리에 쓰이는 석탄과 나무 난로로 발생하는 대기 오염으로 WHO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염된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대기 오염은 의심할 여지 없었다. 걷는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무질서한 거리의 교통상황과 차량에서 뿜어대는 매연, 빵빵거리는 소음, 순간 코와 목이 퀴퀴하고 눈이 시큰거린다. 저 멀리 스트바트르 광장이 보인다. 넓은 광장에서 잠시 멈추어 차량 소음을 벗어나고자 하니 사람들 환호 소리와 여기저기서 퍼지는 술냄새가 온몸을 휘감는다. 때마침 대학교 졸업식 사진을 찍느라 광장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오색 창연한 그들의 화려한 의상에 시선을 빼앗겨 볼거리를 즐길 틈도 없이 광장 곳곳에서 진동하는 술 냄새에 정신없이 헤매다 도망치듯 옆, 깨끗한 건물로 들어선다.
스르바타르 광장 주변 풍경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중심부에 있는 거대한 광장으로 현대 몽골의 공산혁명가 및 독립운동가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을 식히고자 찾은 카페는 유명 캐시미어 판매 쇼핑몰에 자리한 한국 브랜드 카페이다. 몽골 수출품으로 유명한 캐시미어 상품을 둘러보고 다시 거리로 나선다. 한국 브랜드 편의점들이 눈에 띈다. 낯익은 상표와 낯설지 않은 외모의 사람들이 거리에 있지만, 날씨와 공기가 익숙지 않아 여행자의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울란바토르 샹글리라 쇼핑몰 야외 레스토랑. 외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꽃가루 가득 쌓인 거리를 지나니, 국영 백화점이 눈에 들어선다. 더위에 지친 발걸음을 식히고자 본능적으로 찬 바람이 불어오는 매장으로 들어선다. 백화점이라고 하지만 구경거리가 마땅하지 않다. 잘 정리된 진열대는 오로지 주류 매장뿐이다. 세계 각국의 주류가 다양하게 정리되어 있다. 한국의 소주부터 전 세계 와인까지 놀랍기 그지없다. 백화점을 벗어나 파괴되고 흔적만 남아있는 곳곳의 불교 수도원을 지나 소비에트 시대 건물이 있는 골목을 걸어 호텔로 향한다. 오히려 높은 건물이 그늘을 찾아준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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