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세운 재정준칙, 팩트 왜곡의 끝판왕"

2022. 8. 13. 08: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인터뷰
기획재정부 보도자료에 빨간 줄이 쭉쭉 그어졌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획재정부 재정전략회의 보도자료에서 틀린 팩트 여섯가지를 찾아 조목조목 지적하는 글을 올렸다. 예컨대 기재부는 ‘대규모 재정수지 적자 고착화로 나랏빚 급증’의 근거로 ‘지난 5년간 확장적 재정운용’을 들었다. 이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2017~2018년 긴축, 2019년 및 코로나19 이후 2020~2021년 확장. 2022년은 윤 정부가 2차 추경으로 확장’이라며 정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기재부 최근 보도자료들이 대부분 이전 정부를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비판을 맛깔나게 하려다 보니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라며 “기재부가 팩트를 틀리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현 정부 들어 확실히 심해졌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현 정부의 정책들이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실증연구에 기반을 두지 않고 팩트를 왜곡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세수감수효과, 5년간 -13.1조원이 아니라 -60.2조원’, ‘기업상속공제 개편안 상위 5.3% 기업 대주주에게 혜택’, ‘코로나19 일회성 지출 제외 시, 관리재정수지 이미 -3% 이하’, ‘반도체 공제 확대 시, 삼성전자 최대 11조원 감면’ 등은 정부·여당 주요 경제정책의 근거를 팩트체크로 반박하는 보고서들이다. 이 연구위원은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입맛에 맞는 연구만 취사선택하는 것”이라며 “현 정부 정책에는 경제적 실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보여주기식 정책이 많다”고 지적했다. 감세, 재정건전성 강화 등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정책들이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것 중 왜곡된 사실과 틀린 숫자는 무엇인지 지난 8월 2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이상민 연구위원을 만나 물었다.

사진/ 이준헌 기자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발표되자 5년간 세수감소 규모가 13조1000억원이 아니라 60조2000억원이라 지적했다.

“정부가 감세할 수도 있고, 증세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국민에게 정책의 장단점을 정확히 알리고 설득하는 것이다. 이번 세제개편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감세 규모부터 국민을 속였다는 것이다. 정부는 세수감소 규모를 전년 대비 방식으로 5년간 합산해 발표했다. 2023년도에 6조4000억원 감소하고, 2024년에는 2023년 기준으로 추가로 7조3000억원이 더 감소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세수감소라는 개념은 세법개정 이전인 2022년을 기준으로 줄어드는 세수의 규모를 뜻한다. 2022년 기준으로 5년간 세수감소 규모를 합산하면 60조2000억원이다.”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이 OECD 평균인 21.5%보다 높은 25%다. 이에 따라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실질’이 중요하다. 정부가 말하는 최고세율은 중앙정부에 내는 법인세 최고세율이다. 이는 경제적 실질과 아무 상관이 없다. 기업 처지에서 볼 때 중앙정부에 내든 지방정부에 내든 부담해야 하는 총액이 중요하지 법적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법인세는 중앙정부 외에 지방정부에서 과세하는 부문도 있다. 정부는 중앙정부에 내는 법인세 명목세율만 따로 추려 이야기한다. 지방정부에 내는 법인세까지 합치면 우리나라 법인세율은 OECD 평균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정도다. 기재부 관료들이 이걸 모를까? 최소한 감세를 하더라도 혹세무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실효세율이다. 실효세율을 비교할 수 있는 확실한 연구는 아직 없지만, OECD 자료에 근거해 본다면 우리 법인세 실효세율은 OECD 평균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실효세율보다 더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는 것이 있다. 바로 법인세를 포함해 기업이 내는 다른 부담금을 함께 비교해보는 것이다.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처럼 법인이 고용할 때마다 발생하는 부담금이 있다. 이는 우리가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했을 때 굉장히 낮다. 미국의 경우 우리보다 법인세율은 낮지만, 의료보험 체계가 잘 안 돼 있어서 기업이 노동자들의 의료보험을 대납해주느라 허리가 휘고 있다. 유럽도 법인의 사회적 보험 부담률이 굉장히 높다. 우리나라는 법인세율은 다소 높지만, 부담금은 다른 나라에 비교해 굉장히 낮다. 법인세는 이익이 났을 때 과세를 하는 것이고, 부담금은 이익이 나지 않아도 고용을 한 이상 발생하는 금액이다. 즉 우리나라 체계는 이익이 났을 때 부담이 늘어나는 굉장히 효율적인 체계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율을 낮춘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법인세 및 부담금 체계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다. 경제적 실질을 벗어난 보여주기식 정책이다.”

-정부는 법인세 인하의 효과로 기업의 투자가 늘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입맛에 맞는 연구만 취사선택하는 것이다. 법인세율 인하와 투자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는 무수히 많고 연구결과도 다양하다. 이렇게 연구가 충분히 축적된 상태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게 취사선택이다. 이런 경우 연구결과들을 연구한 메타 연구들을 봐야 한다. 메타분석 결과를 보면 사실상 결론이 났다. 법인세율을 내리면 투자가 아주 조금만 증가한다. 정부는 입맛에 맞는 2008년 연구 논문 하나만 가져와 감세가 투자로 이어진다고 한다. 혹세무민이다.”

-정부는 서민·중산층 세 부담 경감을 위한다며 소득세 과표구간을 15년 만에 이례적으로 조정했다.

“세율 인하나 과표구간 상향 조정을 통해 서민·중산층 부담을 줄이겠다는 건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정책이다. 하위 40%는 세금을 안 내고 있다. 당연히 상위 60%에게 혜택이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누진적인 세금 제도하에서 어쩔 수 없이 고소득자에게 혜택이 더 돌아갈 수밖에 없다. 중산층은 이번 과표구간 조정으로 월 1만원 내외의 세금이 줄어든다. 내가 내는 세금은 곧 재정지출과 연결된다. 실제로 세금이 줄어 자신에게 돌아오는 재정지출이 얼마나 줄어들지도 비교해봐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저출생·고령화 사회에서 과표구간 조정은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 물가는 상승하고 그러다 보면 면세점 아래 있던 사람들도 저절로 세금을 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면세율이 높은 편이고 저출생·고령화를 대비하는 재원 조달을 위해서도 이 같은 인플레이션 증세가 효과적일 수 있다. 물가가 올랐으니 과표구간을 조정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저출생·고령화라는 현실에서는 틀린 정책이라고 본다. 이제껏 국민은 세율은 바뀌어도 과표구간 변동은 어렵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번 조정이 잘못된 시그널을 줬다.”

사진/ 이준헌 기자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0% 이내로 제한하는 재정준칙을 도입한다고 한다.

“정부가 내세운 재정준칙은 팩트 왜곡의 끝판왕이다. 정부는 전 세계에서 재정준칙을 도입하지 않은 나라가 튀르키예(터키)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처럼 현금주의 개념의 재정준칙을 도입한 나라가 거의 없다. 현금주의 회계는 기술적으로 숫자 조정을 통해 얼마든지 좋게 만들기 쉽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현 정부는 세출구조조정을 강조한다. 세출구조조정의 핵심은 지출 시기를 조정하는 것이다. 즉 올해 지출할 것을 내년으로 미루는 것이다. 그럼 올해 재정수지는 굉장히 건전해보인다. 이런 식으로 현금주의적 재정준칙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관리재정수지 숫자만 기술적으로 맞추는 것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런 현금주의적 회계의 문제점은 올해 2차 추경 국회 심의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번 추경안에서 가장 큰 지출구조조정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출자를 1000억원 줄인 것이다. 원래 정부안보다 현금 1000억원 출자를 줄였으니 그만큼 올해 우리 재정수지는 좋아졌다. 그러나 1000억원의 현금 출자를 줄이는 동시에 현물 출자는 5000억원을 증액했다. 기재부가 보유한 국유자산을 5000억원 더 출자했으나 현금주의적 재정수지로는 1000억원 플러스가 됐다. 현금주의적 개념의 재정준칙을 도입하면 예산기술자가 마음만 먹으면 수치를 조정하기가 굉장히 쉽다. 이에 대해 야당과 언론은 하나도 지적을 못 하고 있다.”

-8월 2일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가 반도체 설비투자 공제를 25%까지 확대한다는 안을 발표했다.

“이 안대로라면 삼성전자는 단일기업으로 최대인 11조원의 세금을 덜 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삼성전자의 법인세 납부액은 명목세율인 25%가 아니라 법인세 최저한세액인 17%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개별기업에 11조원이라니 말이 안 되는 감세다. 정부의 감세안도 말이 안 되는데 여당은 한술 더 뜬 셈이다. 2021년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자산만 124조원이다. 삼성전자가 돈이 없어서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니다. 현금을 쌓아놓고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은 투자할 시점이 아니라는 경영판단을 해서다. 이미 지난해 12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으로 현재 반도체를 포함한 배터리, 백신 연구개발(R&D) 및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확대 시행 중이다. 정부와 여당이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반도체 대기업의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추가로 확대하려면, 세액공제 결과 실제로 투자가 늘었는지 여부를 확인한 평가 결과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게 없으니 세수감소라는 확실한 단점과 투자증대라는 불확실한 장점만 있는 정책 발표로 이어져버리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실증연구 없이 팩트를 왜곡하면서 낸 정책으로 얻는 이득은 무엇인가.

“기업의 이득이 늘어나는 것은 확실하다. 윤석열 정부는 친시장주의라고 자칭하는데 친시장과 친기업을 혼동하고 있다. 시장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기업도 있고, 노동자도 있고, 시민사회도 있고 정부도 있다. 기업이 시장을 대변하는 게 아니다. 기업의 원리와 시장의 원리는 같은 것도 있지만 상반되는 것도 많다. 예를 들어 시장의 원리는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탈락한다. 기업의 원리는 무조건 계속기업으로 살아남아 존재를 증명하려고 한다. 정반대의 측면이 많은데 정부는 친시장과 친기업을 혼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시장이 제일 싫어하는 게 예측가능성 축소다. 예컨대 기존의 세액공제율 확대 정책의 효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세액공제율을 변경함으로써 시장의 예측가능성을 저해시킨다. 반시장적이고 친기업적인 정책이 많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

인기 무료만화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