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같았어요"..물난리때 나타난 '20대 슈퍼영웅'의 그날[인류애 충전소]
[편집자주] 세상과 사람이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반대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도, 선한 이들도 많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8월 8일 밤 9시. 믿기 힘든 폭우가 퍼붓던 강남역과 교대역 사이 어느 사거리. 엄청난 빗줄기에 이미 웬만한 차들은 모두 물에 잠겨 버렸다. 수위는 위태롭게 높아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요!"
사방이 흙탕물에 잠겨 고립된 차 트렁크에, 60대쯤 될법한 여성이 홀로 있었다. 그는 차 트렁크 안에 간신히 앉아 버티고 있었다. 그의 남편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뭐라도 꽉 잡고 있어!"라고 다급히 외쳤다. 그러나 시간이 많지 않았다. 굵은 빗줄기에 차가 급격히 잠겨왔다.
그때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던 20대 남성이 있었다. 그는 우연히 거길 지났고, 살려달란 여성의 절박한 외침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 남성은 물에 떠다니던 주황색 '주차금지 표지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어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174cm 되는 그의 키에, 물이 턱 끝에서 찰랑거렸음에도.
그는 흙탕물 속에서 수영해 고립된 여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주차금지통을 건네어 붙잡게 했다. 그 통을 한 손으로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헤엄쳐 무사히 데리고 나왔다. 그리 한 생명을 살렸다. 의인(義人)은 남편에게 아내를 인계해준 뒤 홀연히 사라졌다. 그 무렵엔 이마까지, 아찔하게 물이 차올라 있었다.
뜨듯한 이 장면을 누군가 우연히 찍었다. 널리 알려졌다. 사람들은 의로운 그에게 '현실 세계의 슈퍼맨'이라며 뭉클해 했다. 10일 오후, 표세준 국방홍보원 주무관(27)을 처음 본 순간, 그 호칭이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듬직한 체격에, 종종 쑥스러워하며 필요한 말만 아껴서 내어놓는 이였다.
형도 : 구조하시는 사진을 봤어요. 보기만 해도 두렵던데, 거기에 뛰어드셨고요. 누구나 위험하다 생각해 망설였을텐데, 어떻게 그리하신 걸까요.
세준 : "사람 살려요" 하시는데, 어머니뻘 되는 목소리였어요. 차 트렁크에 앉아 카드와 핸드폰을 넣은 지퍼백을 입에 물고 계셨고요. 거의 패닉 상태이시더라고요. '이거 진짜 큰일 날 수 있겠다',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딱히 들어갈 때까지 많은 생각을 안 했어요. 딱 진짜 엄마 구한다는 생각으로 갔지요.
형도 : 막상 들어가니 물이 턱까지 잠기셨던 거고요.
세준 : 맞아요, 발이 땅에 닿지 않더라고요. 사거리였는데, 물이 어디선 빠지고 또 들어오고 해서, 양쪽으로 치고 도는 느낌이었어요. 와이퍼에도 찔리고, 뭔가에 밟히는데 바닥도 안 보였고요. 침수된 차에서 빠져나온 기름 냄새가 엄청나더라고요. 가면서 '이제 나도 죽겠는데' 그런 생각도 들었지요.
형도 : 상상만 해도 너무 힘든 상황이네요. 그런데 주차금지 표지판은 어떻게 가지고 갈 생각을 하신 건가요. 정말 구조하는데 '신의 한 수' 였지요.
세준 : 흔히 누가 조난되면 119 대원 분들이 던지는 튜브가 주황색이잖아요. 둥둥 떠다니던 주차금지 표지판 색깔이 주황색이어서 눈에 띄었어요. 물에 떠 있네, 주황색이네, 들고 가자, 그랬어요. 부력이 있어 잡고 있으면 뜨니까요. 그냥 들어갔으면 구조가 힘들었을 거예요.
형도 : 다급한 순간에 그런 생각이 힘든데 감사한 순발력이에요. 그리고 헤엄쳐서 고립된 운전자분께 가신 거고요.
세준 : 일단 다가가서 "괜찮으세요?" 했더니 안절부절 못하시더라고요.
"제가 수영을 못 하는데 괜찮을까요?"(운전자)
"이것(주차금지통)만 껴안고 계시면 가라앉지 않으실 거예요. 그런 것 생각하지 마시고, 급하니까 가셔야 해요."(세준)
형도 : 운전자분은 주차금지 표지판을 두 팔로 잡고, 세준님은 그 통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헤엄치신 거군요.
세준 : 맞아요. 거의 등지고 헤엄치는 상황이었지요.
형도 : 물에 젖은 사람이라 무게가 꽤 있을텐데, 나오실 때 힘들진 않으셨어요.
세준 : 한쪽 팔로 수영하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처음에 몇 번은 앞으로 안 나아가는 거예요. 운전자님께서 힘을 잔뜩 주고 계셔서, "힘을 조금 빼주세요"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러니까 앞으로 좀 나아가더라고요.
형도 : 그리고 무사히 구하신 거고요. 나오실 땐 빗물이 더 많이 차올랐겠어요.
세준 : 남편분께 인계해드렸지요. 어머님(운전자)은 벌벌 떨고 계셔서 대화하기 힘들었고, 아버님(남편)께서 "아우, 너무 고맙다"고 했어요. "아, 아닙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하고 따릉이(자전거)를 타고 집에 갔지요.
형도 : 돌아오실 땐 무슨 생각 하셨나요. 뿌듯하시다거나…
세준 : 그런 생각도 딱히 안 들었어요. 몸에 기름 냄새가 심해서, 집에 와 세 번을 씻었는데도 안 빠지더라고요. 구두와 신발과 가방은 가죽이어서 다 버렸고요. 걱정했던대로 등에 뾰루지 같은 게 났어요. 금요일(12일)부터 바다로 휴가 가는데 온몸에 트러블 나면 어떡하지(웃음), 빨리 없어져야 할 텐데 그랬지요.
형도 : 너무 멋지네요. 알려져서 다행이고요. '현실 세계의 슈퍼맨'이란 기사 댓글이 있더라고요.
세준 : 되게 민망합니다. 저는 영상이 찍힌지도 몰랐거든요. 얼떨떨하고 민망하고 그렇네요. 제 MBTI가 'I(내향형)'라서…(함께 웃음).
형도 : 저도 'I'라 그 마음 알겠어요. 가족들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세준 : 솔직히 말씀을 못 드렸는데 TV 보시고 아셨어요. 부모님께 혼났지요. 걱정을 되게 많이 하셨어요. "그럼 어떡하냐, 혹시나 네가 죽으면 우린 어떡하냐"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죄송해요, 걱정하실만큼 위험하진 않았어요", 그렇게 안심시켜드렸지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잘했다고 하셨고요.
형도 : 당연히 뛰어든 거라 하셨지만, 그래도요.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데엔 무언가 쌓여온 삶의 궤적이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혹시 그런 게 있다면 더 듣고 싶어요.
세준 : 3년 전쯤에 제일 친한 친구가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뭔가 '죽음'에 대해 되게 좀 민감하게 반응해요.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너 죽는다" 그러잖아요. 친구가 숨진 뒤엔 "그런 얘기 쉽게 하지 말라고, 함부로 하는 얘기 아니야"라고 입에 달고 살았지요.
형도 : 아마 그 기억이 잠재돼 있다가, 물에 고립된 운전자분을 보고 떠올랐을 수도요.
세준 : 죽음이란 게 주변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 순간 딱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마음속 깊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지요. 만약, 그분을 외면한다면 그래서 혹시 잘못된다면, 그 죄책감이 제게 돌아올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는, 같은 상황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똑같이 구할 거라고 말했다.
에필로그(epilogue).
세준 님이 마음 쓰이는 게 한 가지 있다고 했다. 고립되었던 운전자의 남편분을 향한 댓글 이야기였다. "남편은 아내를 안 구하고 뭐 했냐"며 쉬이 남겨져 있던 글들. 그걸 본 뒤 마음이 안 좋았단다.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그런 댓글이 제일 속상하더라고요. 수영을 못 하는 상황에서 당시의 그 물속에 들어가는 건, 나쁜 말로 스스로 죽겠단 거나 다름없었어요. 그 남편분 아니라 어떤 분이어도 어려운 상황이었고요. 남편분은 계속 엄청 불안해하시고 아내분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나이도 60대로 보이셔서 물에 들어간단 것 자체가 힘드셨을 거예요."
사람을 살리고, 살린 이의 가족까지 오해받을까 걱정하던 선한 청년. 그에게 무언가라도 도움 되고 싶어,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국방홍보원에서 '행군기(행복한 군대 이야기)'란 영상을 함께 만들고 있단다. "혹시 조회 수가 많이 나오면 성과가 될까요?"라고 묻자, 그는 쑥스럽게 웃으며 그럴 거라고 했다. 그래서 하단에 세준 님이 직접 만든 영상을 첨부한다.
정말 끝으로 이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조난당했을 땐 진짜 세상에서 제일 큰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소리 질렀으면 좋겠어요. 만약에 고립된 어머님께서 소릴 안 지르셨으면 저는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테니까요. 그리고 수영은 꼭 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언가 잡을 걸 향해 10m라도 갈 수 있을 정도라도요. 그런 상황이 또 안 오리란 법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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