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의 영화뜰] 지금 성(性)적으로 만족하나요?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2022. 8. 1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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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난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 없어요. 한 번도요. 내가 느끼는 척 안 해도 기분 나빠 말아요. 더 이상은 안 할 거야. 남편 죽고 결심했죠. 다신 연기 안 한다고.”

점잖게 차려입은 60대 중년 여인 낸시(엠마 톰슨)가 한에 맺힌 듯 지난 삶을 와르르 토해내고 있다. 지긋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이 얘길 경청하는 건 누가 봐도 젊고 매력적인 외모의 20대 남자 리오 그랜드(다릴 맥코맥)다. 소파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은 성적인 서비스를 사고, 팔기 위해 만났다. 물론 사는 사람이 중년 여인 낸시고, 파는 사람이 젊은 남자 리오 그랜드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인 성매매를 전면으로 다루고 '공공 서비스화'를 역설한다는 점에서, 리차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의 '귀여운 연인'(1990)시절부터 관념적으로 묘사돼 온 남성 성 구매자와 여성 성 판매자라는 성별 구도를 완전히 전복했다는 점에서, 40살쯤 나이 차이가 나는 두 배우의 나체와 여러 체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11일 개봉하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Good Luck to You, Leo Grande)'는 많은 이유로 무척 도발적일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Good Luck to You, Leo Grande)' 포스터.

여기까지 글을 읽은 독자가 느끼고 있는 모종의 꺼림칙함과 다소간의 심리적 불편감을, 연출자인 소피 하이드 감독 역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때문에 성적 서비스를 사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한 입장이면서도 지나치게 젊고 아름다운 상대를 마주한 순간 크게 당황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주인공 낸시의 입을 통해 먼저 요점을 콕 짚어버리는 전략을 택한다.

“누군가를 사서 날 위해… '쓰다'니… 난 선생이었죠. 애들한테 성매매에 대해 에세이를 쓰게 하던 사람이 몸소 매매를 하고 있다니, 미쳤어! 이건 아냐, 잘못됐어. 아들이 알면 기절할 거야. 정말 재수 없는 늙은 변태 같네요. 돈은 돌려줄 테니 그냥 가요, 나 너무 역겹다.”

이토록 정확한 자기비판을 할 줄 아는 낸시가 대체 왜, 이런 상황을 왜 만들었을까.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바로 그 '왜'를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워낙 보수적이고 억압적이던 시절 영국에서 태어나 청춘을 보낸 낸시는 여자가 성적인 자신감이나 자기 결정권을 갖는다는 게 뭔지 몰랐고, 결혼 생활 31년 동안 '몸을 대충 쓰다듬다가 볼일 보고 끝나는' 잠자리를 치러냈다. 남편에게 새로운 시도를 제안했다가 “모욕적인 걸 시킨다”는 비난만 전해 들은 뒤로는, 이렇다 할 말도 꺼내지 못하게 된 씁쓸한 기억도 고백한다.

개인의 성적인 즐거움이나 부부의 건강한 관계에 대한 인식과 실행력이 너무 부족했던 게 낸시 삶의 어려움이었다면, 40년 차를 두고 태어난 리오 그랜드는 오히려 성적 쾌락에 지나치게 빠르게 눈을 뜬 게 문제였던 모양이다. 모종의 사건으로 가족, 특히 엄마에게 큰 충격을 안긴 그는 자신감 있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가명을 쓰고, 직업을 숨기며 자신을 감추고 살 수밖에 없다.

▲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Good Luck to You, Leo Grande)' 스틸컷.

성에 너무 둔감해서, 혹은 너무 민감해서. 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경직돼 있어서, 혹은 지나치게 급진적이어서.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개인의 성적 민감도와 시대적인 흐름 사이에서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해 겪게 된 각자의 '사건' 때문에 수치심과 답답함, 말 못할 상처를 안고 살게 된 두 인물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다. '러브 액츄얼리', '크루엘라' 등으로 잘 알려진 중견 배우 엠마 톰슨의 설득력 있는 표현력과 신인 배우 다릴 맥코맥의 세련된 이미지가 조화롭게 맞물리면서 적절한 시청각적 재미를 주는 건 물론이다.

영화가 말하는 모든 메시지에 동의한다기보다는, 모든 사람이 자신에 맞는 적절한 수준의 성적인 즐거움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방향성에 동의하기에 영화를 소개한다. 성 담론을 세련되게 다루지 못하고, 때문에 개인이 건강한 방식으로 자기만족을 추구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분위기 안에서 재미와 의미를 함께 전하는 작품이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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