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위기, 기후의 위기..연구자의 시대가 왔다"

이유진 2022. 8. 1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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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인터뷰][한겨레S] 인터뷰·정치철학 연구자 배세진
인문사회과학 편집자 눈길 받는 신진 연구자 중 한명
"공부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신진 정치철학 연구자 배세진 박사는 “연구자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정치철학 연구자 배세진(35·연세대 강사) 박사는 최근 인문사회과학 편집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신진 연구자 중 한명이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석사, 파리시테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석사, 같은 대학원 정치철학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해 말 프랑스에서 돌아온 뒤 말과활아카데미, 대안연구공동체, 유럽인문아카데미에서 발리바르와 푸코, 알튀세르 등을 강의해왔다. 미셸 푸코, 루이 알튀세르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비데 등 현대 프랑스 철학을 연구·번역하고 있다. 그는 “이제 연구자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연구자의 시대’가 왔다고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인문사회과학만 한정해서 얘기하면, 진보주의가 패한 이유와 지금 우리가 왜 이렇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데 연구자의 이론적 탐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데이비드 하비가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에서 너무 대단한 세계정세 분석을 한다.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황해문화> 최근호에서 왜 한국 정치가 이 모양인지 너무도 정확한 설명을 제출했다. 월가 점령 운동을 주도한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홀로 연구실에 있기보다 항상 정세 속에서 작업을 했다. 2020년 이후 우리는 정말 다른 세계로 가고 있는데, 연구자들이 분석을 해야 한다.”

―제도권 밖의 연구자들이 많아졌다.

“‘재야 철학자’ 김영민씨가 ‘창의적 불화’라는 말을 했다. 연구자 중에는 제도에 안착한 사람, 제도에서 벗어난 사람,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이 있는데 내 경우 세번째에 해당한다. 셋 중 무엇을 선택하기보다 ‘제도와 창의적 불화’를 하는 게 중요하다. 대학 밖 연구자들은 대학이 폐쇄적이고 자족적인 공간이 되지 않게 해준다. 학교 안팎에서 서로 연구를 주시하고 교통하며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배세진 박사가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공부를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제도 바깥의 연구자들을 물론 존경하지만, 가능하다면 최대한 제도 안에서 공부하라고 하고 싶다. 학문적 글쓰기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동료, 선생님, 선후배들의 평가 속에 엄정하게 논문을 쓰는 훈련이 중요하다. 조금 다른 얘긴데, 표절·대필 사태는 당사자 학생이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진다. 대학이 학문적 글쓰기를 가르치는 기능을 전보다 많이 상실한 점은 큰 문제다. 인문사회과학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사실은 학문적 글쓰기다. 제도 밖에 있더라도 스스로 이 훈련을 마친 사람들이 인문사회과학자가 된다.”

―프랑스에서도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나?

“똑같다. 미국·한국보다 늦게 왔을 뿐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대학 개혁을 밀어붙이고 ‘파리 몇 대학’이라고 일컫던 번호가 없어졌다. 68혁명 이후 대학들을 평준화시키려고 대학 이름을 번호로 붙인 건데 사라졌다. 이것은 큰 의미다. 대학들은 각자 순위를 올리려고 경쟁에 돌입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벌어진 ‘워키즘’(wokeism) 관련 논쟁을 설명했다. ‘깨어 있다’(woke)라는 단어에서 비롯돼 정치적 올바름을 나타내는 이 단어는 보수파가 진보운동을 공격하는 용어로 활용되었다. 이주자, 이슬람 문제를 전향적으로 사유하도록 도운 이론가인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 등을 ‘이슬람 좌파’로 칭하고 백래시가 기승을 부려 담론투쟁이 극에 달했다.

배세진 연구자의 번역서들.

―프랑스 학계도 미국이나 한국과 비슷한 모양새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이후 부르디외 같은 비판적 지식인들이 가졌던 지적 헤게모니가 많이 무너지고 프랑스 학계도 미국과 똑같은 방식으로 통계를 돌려 정량화 작업을 하는 등으로 논문을 생산해내는 것이 중요해졌다. 프랑스도 더 이상 이론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왜 프랑스 철학을 하려 했나?

“1990년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당연히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라고 (사람들이) 얘기했지만, 그 승리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기본적인 논지였다. 마르크스의 유령이 돌아오리라 본 것이다. 실제 미국 헤게모니의 실추는 2001년 이라크 전쟁, 2007~2009년 금융위기가 절정이었다. 그 뒤 지금 위기가 도래를 한 건데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분석하는 새로운 사회과학을 해야 했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이 마르크스주의의 곁에서 사상적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진태원, 백승욱 교수 등이 현대 프랑스 철학의 사상적 힘을 보여주시는 것 같다.”

―연구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결국 대학의 제도적 위기가 문제다. 그 반작용으로 직장인들이 밤에 공부할 수 있는 강의들도 많이 생겨났다. 우선은 제도 속에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학문적 글쓰기를 해야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수련 과정을 마친 뒤엔 제도 안에 있든 바깥에 있든 스스로 연구자로서 평생을 살 수 있다. 결국 연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공부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이다.(웃음)”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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