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내향인 시대.. 기쁨보다 슬픔 공부해야" 수전 케인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2022. 8. 13.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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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는 리더보다 슬퍼하는 리더에게 충성
美 명문대생, '노력 없는 완벽함' 연기하며 병들어
슬픔과 갈망은 추진력 강해.. 우주선 발사까지
다윈은 멜랑꼴리 기질, 적자생존 아닌 선자생존 주장
'사무침'은 높은 차원의 정서, 노인 지혜의 기반
달콤씁쓸함은 창의성, 유대, 초월에 이르는 문
내향인의 목소리를 일깨운 '콰이어트'에 이어 달콤씁쓸함의 파워를 보여주는 책 '비터스위트'로 돌아온 수전 케인(Susan Cain).

한 여름 저녁에 영화 ‘달콤한 인생’을 다시 보는 건 이병헌의 목소리와 음악 때문이다. 인생은 달콤한가, 씁쓸한가. 아름다운가, 슬픈가. 나는 약한가, 강한가. 다정한가, 잔인한가. 쏟아지는 물음표를 음표에 쓸어 담은 채 유키 구라모토는 피아노 건반 위를 유유히 나아간다. “삶엔 그 모든 속성이 다 있어요.” 손가락으로 속삭이듯.

36개 언어로 번역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콰이어트’로 내향인의 저력을 입증했던 수전 케인이 달콤씁쓸함의 가치를 담은 책 ‘비터스위트’로 돌아왔다. 갈피마다 그동안 우리가 부정적으로 여겨왔던 슬픔의 신비와 슬기로움에 대한 증거가 차고 넘친다.

혹시 감동적인 TV 광고를 보며 눈물이 핑 돈 적이 있는가? 슬픈 음악을 들으면 고양감이 드는가? 애늙은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나? 가슴 아프다는 말에 강한 울림을 받나? 행복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는 편인가? 몇 가지에 해당한다면 달콤씁쓸한 기질일 가능성이 높다.

조용필의 노랫말처럼 우리 인생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기쁨과 쾌활, 공격성과 승리, 완벽함이 지배하는 세상에 브레이크를 걸며, 세상을 움직이는 진짜 힘은 슬픔과 갈망의 하모니라고 주장하는 수전 케인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건국 이후 아메리칸드림을 지탱해온 승자 중심의 미국 문화, 번영 신학, 강제된 쾌활함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지적하며, 학교와 기업, 리더가 ‘슬픔의 통로를 터줄 때 놀라운 기적이 벌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연민의 시대, 우월감을 버리고 슬픔을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다.

프린스턴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법대 우등 졸업생이었던 케인은 33살에 월스트리트의 42층 건물에서 로펌 변호사로 일하다 사표를 썼다. 로펌에서 일하던 7년간 그리니치빌리지의 타운하우스를 목표 삼아 달려왔지만, 관건은 부동산이 아니라 고향이었다.

고향을 향한 갈망에 따라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비터스위트’는 10년에 걸친 그의 저작물이다.

"우리의 인생은 늘 달콤하고 씁쓸합니다."

-’비터스위트’ 일명 달콤씁쓸함이란 무엇인가요?

“갈망과 사무침과 슬픔의 감정에 잘 빠지는 성향입니다. 유한한 시간에 대한 뼈저린 의식이며, 세상의 아름다움에 호기심을 갖고 통찰하는 일의 즐거움입니다. 삶에는 빛과 어둠, 출생과 죽음, 달콤함과 씁쓸함이 서로 붙어있다는 아이러니를 인정하는 태도지요.”

-멜랑꼴리 기질을 타고나는 사람이 따로 있나요?

“연구에 따르면 5~20%의 아기들은 삶의 찬란함 뿐 아니라 불확실성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기질로 나타났어요. 고도의 반응성을 타고나는 거죠. 대표적으로 몇 가지 테스트가 있어요.

만약 당신이 단조 풍의 슬픈 음악에 빠져든다면, 비 오는 날에 위안과 영감을 느낀다면, 음악과 미술, 자연의 아름다움에 강하게 반응한다면 당신은 달콤씁쓸한 기질의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다행히 이 달콤씁쓸한 마음 상태는 창의성, 유대, 초월에 이르는 관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향인의 가치와 목소리를 찾아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콰이어트’도 당신의 이야기였어요. 이번 책 ‘비터스위트’의 출발도 당신인가요?

“네. 저는 평생 이런 감정을 느껴왔어요. 제가 가장 사랑한 뮤지션도 일명 비관주의 계관시인인 레너드 코헨이죠. 슬픈 음악을 듣고 행복감을 느끼는 이 별난 감정의 정체는 뭘까? 궁금했어요. 반면 제 대학 친구는 제게 왜 장송곡을 좋아하냐고 묻더군요. 미국 문화의 무엇이 이런 취향을 농담으로 삼기 좋은 소재로 만든 걸까, 추적해보고 싶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 또한 레너드 코헨의 음악에 열렬히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완전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 아름답고 눈물겨운 인간에 대한 애틋함… 당신이 찾은 이 감정의 핵심은 무엇인지요?

“멜랑꼴리의 핵심은 교감을 향한 열망과 귀향을 향한 바램입니다.”

달콤 씁쓸한 경험은 불완전한 세상에서 정처없이 헤매는 인간의 처지에서 비롯된다.

-나약함이 아니고요?

“심리학자, 과학자, 명상가, 경영 연구가들의 저작물을 분석한 결과 달콤씁쓸함은 조용한 힘이자 파워풀한 존재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달콤씁쓸함은 고통에 대응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슬픔을 창의성, 초월, 사랑으로 전환하죠.”

-하지만 프로이트는 멜랑꼴리를 우울증과 나르시시즘으로 정의했습니다. 실제로 우울이라는 병리적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중요한 질문입니다. 두 상태는 자주 혼동되죠. 우울증은 일종의 막힘이에요. 어둠, 상실, 절망, 열등감, 좌절에 꼼짝없이 막힌 기분이죠. 달콤씁쓸함은 어둠만이 아니라 빛도 의식해요. 상실만이 아니라 사랑도 의식하죠.

이질적 상태를 동시에 볼 수 있기에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호기심과 즐거움을 느낍니다. 플라톤도 찰스 다윈도 링컨 대통령도 재즈 가수 니나 시몬이나 레너드 코헨도 멜랑꼴리한 영혼의 소유자였어요.”

-종종 위대한 시인과 철학자, 예술가와 정치가는 우리와는 다른 먼 곳을 바라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지구에 불시착한 것 같은 태도랄까요. 그들의 눈은 무엇을 보는 걸까요?

“완벽한 세계(본향). 그 갈망을 일반인보다 뼈저리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저 무지개 너머 어딘가”를 찾는 것도 근원은 같아요. 현실에 없는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향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죠. 그게 인간성의 본질이거든요. 수많은 종교에서 에덴, 메카, 시온에 영성을 부여하는 것도 같은 이유죠”

수전 케인은 멜랑꼴리의 핵심 감정인 슬픔과 갈망은 엄청난 추진력을 만든다고 부연했다. 우리가 월광 소나타 같은 곡들을 연주하고 화성으로 보낼 우주선을 만드는 것도 뿌리는 갈망이라고.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가 대장정에 나서도록 견인한 추진력도 향수였다.

‘해리포터’에서부터 ‘말괄량이 삐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랑한 동화의 주인공인 대부분 고아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실을 겪은 후 아이들은 갈망의 모험을 떠난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의 최초 시나리오에는 슬픔이가 없었다. 수전 케인과 심리학 박사 켈트너가 슬픔이의 탄생을 도왔다.

-슬픔은 어떤가요? 당신은 영화 ‘인사이드아웃’에서 슬픔이의 탄생에 일조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 픽사에서 내향적인 영화 제작자들의 재능 활용에 대해 간부 회의를 주재하며 피트 닥터 감독을 만났어요. 그에게 ‘감정의 과학’을 가르쳐준 사람은 캘리포니아 대학 심리학 교수 켈트너였습니다. 켈트너는 유년기에 가정 파탄을 겪고 사랑했던 동생과 사별하며 자신의 정체성의 핵심 요소를 슬픔이라고 정의했어요.

소심이는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버럭이는 이용당하지 않게 보호해주지만, ‘슬픔이’의 힘은 더 거대합니다. 슬픔은 연민을 자극해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느끼게 해주죠. 피트 닥터의 말대로 ‘슬픔이’가 없었다면 ‘인사이드아웃’은 망했을지도 몰라요.”

-나의 슬픔이 어떻게 서로의 연민이 되나요?

“연민은 본능입니다. 슬픔보다 먼저죠. 켈트너의 책 ‘선의 탄생’에 요약돼 있듯이 인간은 서로의 어려움에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어요. 아기는 뇌가 완전히 발달하면 산도를 통과하지 못하기에 모든 동물 중 가장 취약한 상태로 세상에 나와요. 오랜 시간 의존적인 어린아이를 돌보기 위해 인간은 연민을 키워야 했죠.

인간은 그 연민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진전시켰습니다. 슬픔을 느끼면서도 곤궁에 처한 타인을 돌보는 능력으로 지금의 문명에 이르렀어요.”

-’적자생존’이 아니고요?

“적자생존은 백인 상류층의 우월성을 선동했던 사회진화론자 허버트 스펜서와 그의 동료들이 처음 사용했어요. 다윈은 오히려 온화하고 멜랑꼴리한 영혼이었어요. 자연의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아픈 고양이를 핥아주는 개, 눈먼 동무에게 먹이를 가져다주는 까마귀 등에 주목했죠.

다윈에게 더 맞는 구호는 ‘선자생존’입니다. 그는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이라는 책에서 가족과 인류를 넘어 다른 종까지 연민 작용을 확대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고귀한 일이라고 주장했으니까요.”

슬픔을 공부하는 기쁨으로 충만한 수전 케인의 '비터스위트'.

-연민의 분량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무엇이죠?

“우월감입니다. 내가 특별하다는 우월감은 남들의 슬픔은 물론 자신의 슬픔에도 반응해주지 못합니다.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굶고 있는 아이를 봐도 연민의 신경계인 미주신경에 불이 붙지 않아요.”

-우월감을 통제할 방법이 있나요?

“누군가를 만날 때 허리를 굽혀 예의를 표하세요. 타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런 단순한 행동이 미주신경을 활성화합니다. 더불어 자책의 혼잣말을 멈추고 자신에게도 연민을 발휘하세요. 스스로 온화할수록 남에게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신은 미국의 긍정 문화, 긍정 심리학, 강제적 쾌활함, 번영 신학 등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현재의 우월한 미국을 만든 힘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지요. 왜 하필 지금 그 ‘슬픔의 권리’를 찾아야 합니까?

“언급하신 바처럼 미국의 긍정 문화는 미국의 번영에 중요한 근원이예요. 하지만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격렬한 문화 전쟁과 분열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수전 케인은 이를 ‘긍정의 횡포’라는 단어로 꿰어냈다. 긍정의 횡포는 미국의 역사에서 기인했다. 아메리카 이주 초기, 칼뱅주의자들은 천국 지옥 운명 예정설을 믿었고, 미국인들은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이 천국에 갈 운명임을 입증해야 했다.

천국 지옥의 운명은 지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로 정착됐다. 신은 사람들이 번영을 누리기를 바란다는 번영 신학과 긍정심리학이 번성했다. 많은 가정에서 불쾌한 감정을 말하는 게 금기어가 됐고, 아이들도 강제적 쾌활함에 길들었다. 부모는 아이가 슬픔을 감추도록 주의를 주었다.

승자로 인정받는 사람들과 패자로 여겨지는 사람의 구별이 심화했고, 패자들은 문화적 천민으로 취급됐다. 이런 분위기는 대학 캠퍼스에도 만연해서, 겉으로는 행복한 승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늘어갔다. 쾌활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직후 자살하는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케인은 자신이 다닌 프린스턴 대학의 동급생들도 활기찬 모습뿐이어서, 내내 괴리감을 느꼈다고 했다.

미국인들은 강인하고 낙천적이며 자기 주장이 강해야 한다는 이미지에 갇혀 있다. 영화 '위대한 갯츠비'의 한 장면.

-저는 스콧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아메리칸드림의 속물성과 판타지, 몰락의 슬픔을 느꼈어요. 당신은 어떻게 미국 명문대를 지배하는 승리의 분위기, 쾌활함과 투지가 문화적인 압박이 만들어낸 허황한 이미지라는 걸 알아냈습니까?

“멜랑꼴리를 연구하면서 프린스턴 대학 재학생들을 면담 조사했어요. 그들이 답을 주더군요. 노력하지 않아도 승자처럼 보여야 했다고. 공부를 조금밖에 안 한 것 같은데 시험은 잘 봐야 하고, 농담도 잘하고 개성적이되 틀에 맞출 줄도 알아야 했다는 거죠. ‘노력이 필요 없는 완벽함’이라는 허구 위에서 젊은 승자들은 ‘모든 것이 좋다’고 웃으며 병들어 갑니다.

졸업 후 직장에서도 절대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고 화장실에 가서 울라고 지시하는 긍정의 횡포가 벌어지고 있죠. 마냥 행복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결속을 이루고 싶다면, 진실을 말할 방법을 찾아야 해요. 내면의 패자와 승자를 같이 포용해야 합니다.”

-특별히 슬퍼하는 리더가 화내는 리더보다 더 높은 충성심을 끌어낸다는 발견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뮌헨 기술대학의 연구가 슈바츠뮐러가 화내는 리더와 슬퍼하는 리더를 실제로 비교·분석한 결과예요. 리더가 화내지 않고, 슬픈 감정을 드러낼 때 구성원은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느껴요. 진정성은 충성심을 분발시킵니다.

직원들은 “프로젝트가 망가지다니 화가 나는군!”이 아니라 “이런 일이 있다니 슬프군!”이라고 반응하는 상사에게 동기부여를 받았어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디폴트는 '편안한 슬픔'이다.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다는 게 문제는 아니다.

-일터에 슬픔의 감정이 필요할까요?

“꼭 필요합니다. 멜랑꼴리는 성과에 영향을 미쳐요. 셸 오일의 굴착 시설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로 활약한 릭 폭스도 마초적 문화를 깨고, 팀 내에 상담가를 초빙해서 고통스러운 유년, 문제 많은 결혼 생활, 아픈 자식 이야기를 공유하도록 도왔어요. 서로의 고통을 정상으로 여기는 문화가 퍼지자 생산성이 높아지고 사고 발생률은 84%나 줄었죠.

재정, 이혼 등 개인적 고민에 서로 마음 써주고 슬픔이 흐르도록 열어주는 문화를 만든 미시간주의 진료비 수금팀 미드웨스트 빌링팀 연구 사례도 있어요. 팀은 이전보다 수금 속도가 2배 이상 빨라졌고, 이직률은 2%대로 떨어졌어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디폴트는 ‘편안한 슬픔’입니다.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다는 건 문제가 아니죠.”

-나이와 멜랑꼴리의 상관관계는 어떤가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저물녘이면 마음 둘 데 없이 슬퍼지곤 했습니다만.

“보통의 아이들도 눈부신 지평선을 보면 슬퍼해요. 떠나고 헤어지는 것을 힘겨워하죠. 그럴 때 ‘언젠가 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말보다 더 위안을 주는 가르침은 작별의 고통이 삶의 일부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아이들이 우는 이유는 우리가 기만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온전하고 문제없는 게 정상이며, 낙담, 병, 이별, 피크닉의 파리떼는 비정상이라는 강박을 버리세요. 덧없음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위안이 돼요. 시인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봄과 가을’이라는 시에서 소녀에게 이렇게 가르쳐요.

‘인간이 태어난 것은 시들기 위해서란다. 네가 슬퍼하는 것도 마거릿, 너 자신인 거야.’”

인간이 태어난 것은 시들기 위해서다. 유한한 시간을 의식할 때, 세상의 아름다움에 온 몸으로 환호할 수 있다.

-‘시간이 유한하다’는 걸 아는 것이 달콤씁쓸함이 가르쳐주는 궁극의 지혜일까요?

“그렇습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장수 센터 로라 카스텐슨 박사에 따르면 나이가 들수록 더 차분해지고 만족감도 커진다고 해요. 그 감정의 답이 ‘사무침’이었어요. ‘사무침’은 행복과 슬픔을 동시에 느낄 때 일어나는 감정이며 끝이 임박할 때 몰아쳐 오는 충만감이죠.

안 좋은 것도 좋은 것도 다 지나가고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에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 사무침은 노년층이 닿을 수 있는 정서적 발전입니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멜랑꼴리한 지점은 언제였나요?

“저는 책에서 어머니와의 가슴 아픈 관계에 관해 썼어요. 유년기 때만 해도 ‘에덴동산’ 같았던 우리 사이가 청소년기와 성인기에 이르러 얼마나 가슴 아픈 단절을 겪게 되었는지. 그러나 카프카가 했다는 그 말처럼 사랑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잃게 되지만, 사랑은 결국 다시 다른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사랑하는 이가 먼저 떠나는 사별의 큰 슬픔은 어찌해야 합니까?

“작가 노라 맥키너니가 TED 강연에서 한 말이 떠오르네요. 남편 아론을 뇌종양으로 잃은 뒤 다른 사람이 슬픔을 위로한다고 해준 말 중 가장 싫었던 게 ‘훌훌 털고 가라’였답니다. 그녀는 재혼해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삶 속에는 아론이 있다고 해요.

훌훌 털고 간 게 아니라, 슬픔과 함께 나아간 거예요. 모든 상처가 다 치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슬픔과 사랑을 동시에 느끼며 다시 웃고 나아갈 뿐이지요.”

"사무침에 가닿기 위해 여러분이 단조 음악을 가까이하길 권합니다."

-알랭 드 보통은 한국인들이 멋진 멜랑꼴리를 갖고 있다고 표현한 적이 있어요. 희망도 두려움도 공유할 줄 안다고요. 마지막으로 더 높은 차원의 슬픔의 기쁨을 누리기 원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합니다.

“저도 알랭 드 보통의 말에 공감해요. 한국인의 그런 면을 좋아하죠. 당신들은 이미 더 높은 차원의 연민의 행복을 누리고 있어요. 한국의 영화와 음악은 아름답고, 파국의 상실을 견뎌내고, 빛과 어둠, 슬픔과 기쁨을 다 포용하고 있죠.

일상적으로 조언하자면 ‘사무침’에 가닿기 위해 여러분이 단조 음악을 가까이하길 권합니다. 슬픈 음악에 공명하면 사회 인지 감수성이 높아져요. 세계의 모든 민요는 멜랑꼴리를 반영한 곡이 가장 많습니다. 바흐와 모차르트의 많은 곡,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들으면 패배와 불완전함과 깨어짐이 얼마나 큰 관대함으로 우리를 묶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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