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한국은 왜 중국에 '화이부동'을 강조했나?

조성원 입력 2022. 8.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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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외교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9일 외교장관 회담을 위해 중국 칭다오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8월 9일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 참석을 위해 중국을 찾은 박진 외교장관이 방중 기간 여러 차례 언급한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바로 '화이부동(和而不同)'입니다.

■ 박진 외교장관, 방중 기간 '화이부동' 거듭 강조

박진 장관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우리는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국익과 원칙에 따라 화이부동의 정신으로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발언을 10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도 그대로 되풀이하며 강조했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화이부동은 '화목하게 지내기는 하지만 무턱대고 남의 의견에 동의해 무리를 지어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군자의 태도를 말합니다. 부화뇌동(附和雷同)의 반대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중국과 협력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나름의 국익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턱대고 중국 의견에 동의만 할 수는 없다는 취지의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박진 외교장관은 9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은 물론 10일 기자 간담회에서도 한중 관계의 ‘화이부동’을 거듭 강조했다.


사드 배치와 운용, 미국과의 반도체 협력 등 안보와 국익이 걸린 중대한 사안에 대해 마냥 중국의 입장만 고려할 수는 없다는 고민이 담겨있는 말일 것입니다. 나아가 사드와 관련해 3불 논란까지 일으키며 중국 입장을 배려했지만,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손실과 이른바 한한령은 지속되고 있고 북핵은 고도화됐다는 현실 인식도 깔려있을 것입니다.

■ 화이부동, 한중 외교장관의 방점 달라

이 같은 박 장관의 화이부동 강조에 대해 회담 상대인 왕이 외교부장이 11일 중국 매체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화이부동은 군자의 사귐이다"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기초 위에서 실현한 조화가 더 공고하면서 더 오래가고 더욱 강인하면서도 더 따뜻한 조화"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차이는 있지만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1일 화이부동에 대해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기초 위에서 실현한 조화가 더 공고하면서 더 오래가고 더욱 강인하면서도 더 따뜻한 조화”라고 말했다.(사진: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같은 화이부동을 이야기하지만 박 장관은 '차이'에 왕 부장은 '조화'에 더 방점을 찍어 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박 장관의 이 같은 화이부동 강조는 그동안 한중 관계를 말할 때 많이 언급되던 '구동존이(求同存異)'와 비교됩니다. 구동존이는 차이점을 미뤄두고 공통점, 즉 공동이익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협상 전술입니다. 1955년 중국의 저우언라이가 반둥회의에서 언급하며 널리 알려졌습니다. 시진핑 주석도 2016년 한중 정상회담에서 구동존이를 말했습니다.

1992년 수교 이후 한중 두 나라는 체제의 차이는 있지만, 무엇보다 경제 분야 공동 이익을 누리며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밀월기, 황금기로도 불립니다. 구동존이의 대표적 사례라 하겠습니다.

■ 한중, 구동존이 시대 가고 화이부동 시대로?

하지만 사드 보복을 겪으며 한국인들은 중국에 대해 근본적 회의를 갖게 됐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대중 무역 적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은 두 나라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중국의 홍콩 정책 등을 보며 체제의 차이도 거듭 실감하게 됐습니다. 수교 이후 30년 만에 중국과의 관계를 재고하고 새로운 전략을 고민하게 하는 환경이 조성된 것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중국에 대해 상호 존중을 이야기해왔습니다. 새로 부임한 정재호 주중 대사도 취임사에서 한중 양국이 서로의 안보 주권과 민생, 정체성을 존중하는 관계로 발전하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 같은 기조 하에 이번 박진 외교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중국에 대한 맞춤형 화두로 화이부동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과의 이민자 교수는 한중 양국이 핵심 이익에서의 갈등은 피하되 어느 정도 다른 입장과 목소리는 인정하는 방식으로 화이부동을 이미 실현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중국 측이 한국의 대미 반도체 협력을 강하게 비판하지 않는 것을 그 같은 사례로 봤습니다. 중국도 한국과 미국의 반도체 협력을 사드 문제처럼 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5월 방한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은 윤석열 대통령과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며 반도체 협력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사진: 연합뉴스)


한국 역시 일본, 타이완과도 함께 반도체 협력을 하려면 중국에 화이부동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되 갈등이 커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중앙선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중국의 반도체 언급 자제, 윤 대통령의 펠로시 통화도 화이부동으로 봐야"

타이완을 방문한 펠로시 미 하원의장(왼쪽)이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과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 두 사람 뒤로 국부로 추앙하는 쑨원의 초상화가 걸려있다.(사진: 연합뉴스)


이민자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한국을 찾은 펠로시 미 하원 의장을 만나는 대신 통화만 한 것도 이 같은 화이부동의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방한 당시 펠로시 의장은 중국의 강력한 반발 속에 막 타이완을 방문하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중국의 핵심 이익인 타이완 문제를 상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떠들썩하게 만나지 않음으로써 중국의 핵심 이익은 우리도 건드리지 않는다, 자극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중국 측에 전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중국이 평화로운 부상을 뜻하는 화평굴기를 내세우던 시절은 과거가 됐습니다. 이제는 중국몽, 중화민족의 부흥을 내세우며 공세적 대외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경제를 떠받치는 공급망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지만 또한 불안합니다. 섬세하고 치밀한 전략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화이부동'을 내건 한국의 대중 외교는 언제든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조성원 기자 (sungwon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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