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폭우·산불 3연타에 추석 물가 '초비상'.. 농민·소비자·자영업자 '한숨'

채민석 기자 2022. 8.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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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자재 가격 급증
농민→마트→자영업자→소비자 가격 '껑충'
배추 10kg 가격, 한 달 만에 약 70% 상승
전문가 "추석 끝나도 농산물 가격 치솟을 것"
다시 일어날 힘도 없습니다.
가뭄에 산불에 폭염에 폭우까지 이게 말이 되나 싶네요.
배추 재배업자 김모씨(62)

추석 밥상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 ‘역대급’이라는 타이틀은 모두 갈아 치우고 있는 기후 탓에 농작물 수급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시중에 공급되는 농작물의 가격이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봄부터 여름까지 가뭄과 폭염, 산불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이번 폭우로 아예 농사를 포기하고 있다.

식자재 가격 급등세는 도미노처럼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트 등이 물량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영업자들이 식자재 가격에 발만 구르고 있다. 특히 대목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불안 심리는 더 커지고 있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채소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중부지방 폭우가 소강상태였던 지난 10일 농산물유통정보 시스템(KAMIS)에 따르면 오이 가격은 10킬로그램(㎏)당 당일 기준 3만7250원을 기록하며 호우 발생 전인 지난 8일보다 무려 약 42% 상승했다.

파 가격도 ㎏당 3132원을 기록하며 6일 전인 지난 4일에 비해 약 20.9% 올랐다. 특히 지난 3월부터 발생했던 산불로 큰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번 폭우로 산사태 등의 피해를 입은 무와 배추 등 고랭지 채소의 가격도 올랐다. 무 20㎏의 가격은 2만9700원으로, 지난 8일에 비해 약 20% 올랐다. 배추는 10㎏ 기준으로 불과 한 달 만에 약 70%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과일의 경우 비교적 남부 지방에서 재배되고 있어 아직 폭우로 인한 피해 상황은 채소류에 비해 심각하진 않다. 하지만 평년대비 가격은 이미 상당히 오른 상태다.

사과의 경우 제수·선물용 후지 10㎏의 가격은 5만9640원으로, 평년 대비 40% 올랐다. 신고 배 또한 7만5040원으로 평년 대비 20.5% 올랐으며, 포도도 평년 대비 49% 급등했다. 가공품 또한 마찬가지로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식용유, 밀가루, 부침가루 등 7월 가공식품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기대비 8.2% 상승하는 등 2011년 12월 이후 11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농작물 가격이 치솟은 이유는 올해 이상 기후로 인해 농작물 재배 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지난 봄부터 이어져 온 가뭄은 불과 2개월 전까지 기승을 부렸으며, 지난 3월부터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불이 농민들의 속을 태웠다. 이후 여름에 들어서자마자 역대급 폭염이 한반도를 덮쳤고, 지난 8일부터는 늦은 장마로 인해 곳곳에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일부 농민들은 이번 폭우로 아예 농사를 포기하기도 했다.

강원도 태백에서 고랭지 배추를 재배하고 있는 고랭지채소강원도연합회 정덕규 회장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인근 몇몇 배추 농가는 산사태로 인해 재배하던 작물의 절반 가까이를 잃었다”며 “올해는 더 이상 피해를 볼 배추도 남지 않아 농사 자체를 포기한 농민들도 다수”라고 한숨을 쉬었다.

정 회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비료값이 오르고, 인건비에 농자재값까지 안 오른 것이 없는데 날씨까지 안 좋아 수확량이 최소 40%가 줄었다. 무름병 등 바이러스와 병충해까지 창궐해 수확량 전망은 더욱 비관적”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추석 대목을 앞두고 기대감을 키웠던 자영업자들은 허탈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 한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정모(64)씨와 아들 박모(32)씨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 연휴 때 손님들이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도 안 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추석 때 찾은 손님들에게 명절용 반찬과 후식으로 사과 한 접시씩이라도 내줬었는데, 이제는 그것 조차 힘들어졌다”고 했다.

수확을 포기한 충북 보은군 보은읍 소재 배추밭 모습 /뉴스1

소비자들도 ‘밥상 물가’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주부 강모(35)씨는 “그동안 코로나19로 명절 때 가족들이 모이지 못해서 올 추석 때 온 가족을 집으로 초대했는데, 음식을 마련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내색은 안하고 있지만, 가족들이 과일이라도 조금 들고 와 부담을 덜었으면 하는 마음이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추석 성수품 평균 가격을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11일 진행된 제5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정부는 배추는 정부비축 6000톤 등 총 8만3600톤을 시중에 투입할 예정이며, 무는 7만2000톤을 공급해 농산물 수급 안정 의지를 보였다. 또한 시중 물가 안정을 위해 할인쿠폰도 추석 성수기 기준 최대인 65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휴가 끝난 뒤, 농산물 가격이 재차 치솟을 것으로 전망돼 그 전에 물가를 잡아도 효과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호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채소의 경우 이번 폭우로 병충해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고, 과일 농사도 일조량이 부족해 추석 이후에도 작황이 안 좋을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에서 비축 물량을 푼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단기적으로 물가를 잡는데 급급해 하는 것보다 계약 재배 방식 등 장기적인 대책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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