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본초여담] 부인들은 〇〇 때문에 진찰을 어렵게 한다

정명진 2022. 8.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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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것을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의종금감의 분배장부맥도(왼쪽)와 동의보감의 관형찰색도

먼 옛날 고관대작의 부인이 병에 걸렸다. 부인은 불안하고 초조해하면서 밥도 잘 먹지 못했다. 심장은 시도 때도 없이 벌렁거리면서 간간이 가슴에 통증도 느꼈다. 입안에 음식이 들어가면 마치 모래를 씹는 듯했고, 심지어 입안과 혀까지 화끈거리는 증상도 생겼다. 벌써 이러한 증상은 반년이나 되었다.

당시 많은 의원들이 진찰에 나섰고 다양한 처방을 했지만, 치료는커녕 부작용에 시달렸고 병세는 점점 악화되었다. 치료를 실패한 의원들은 하나같이 “한 명의 부인을 치료하는 것은 열 명의 사내를 치료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요.”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당시 명의로 소문난 허의원이 있었다. 허의원은 환자들때문에 약방을 비울 수 없다는 이유로 왕진에 응하지 않았기에 부인은 아직까지 허의원의 진료는 받지 못한 터였다. 그래서 고관대작의 부인은 어쩔 수 없이 가마를 타고 허의원의 약방에 도착했다. 그런데 부인은 가마에 여전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허의원은 함께 온 여종에게 “마님을 가마에서 내리게 해서 약방으로 모셔 오게나”하고 일렀다. 그러자 여종은 지금까지 왕진을 왔던 모든 의원들은 대청마루에 앉아 비단장막을 사이게 두고 진찰을 했다고 하면서 가마의 문을 열어 줄 테니 직접 가서 진찰을 하도록 청했다. 허의원은 여종과 실랑이를 버릴 시간이 없기에 어떻게든지 병세를 알아내 보고자 가마에 다가섰다.

가마 입구에는 구슬로 엮어진 휘장이 쳐져 있었고, 안쪽에는 비단천이 드리워져 있어서 부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부인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일단 첫 번째 진료법인 망진(望診)이 불가능했다. 망진은 환자의 얼굴 형태와 혈색을 보고서 병세를 알아내는 방법이다. 허의원은 망진은 포기하고 문진(問診)을 했다. 문진(問診)이란 환자에게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 지를 물어 보는 진료 방법이었다.

허의원은 차분하게 몇 가지를 물어보기 시작했고, 부인은 자신의 병세를 말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짜증을 냈다.

“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은가? 그냥 진맥을 해서 내 병세를 알아내도록 하게나. 자네가 명의라면 진맥만을 통해서도 알아 맞힐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것이었다.

이러니 문진(聞診)도 되지 않았다. 문진(聞診)이란 환자로부터 아픈 부위나 아픈 증상을 들어서 아는 진료방법이다. 또한 가래소리, 기침소리 뿐만 아니라 땀냄새나 소변이나 구취 등 냄새를 맡아서 진료하는 방법이다. 문(聞) 자에는 ‘소리를 듣다’는 의미와 함께 ‘냄새를 맡는다’는 의미도 있었다.

허의원은 어쩔 수 없이 진맥만이라도 해 보고자 했다. “마님, 그럼 손목을 내밀어 보시지요”라고 청했다. 그런데 부인의 내민 손에는 비단이 감싸져 있었다. 심지어 비단은 손목까지 감싸져 있었다. 허의원은 비단천을 거두워 줄 것을 요청했으나 부인은 이마저 거절했다.

허의원은 깊은 한 숨을 쉬며 부인에게 고했다. “내 마님의 진료를 포기해야 하겠소. 지금 하인들을 데리고 당장 내 의원(醫院)에서 떠나시오.”라고 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서릿발같은 냉정함이 서려 있었다.

부인은 화들짝 놀랐다. “아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갑자기 왜 그러시는 것인가? 지금까지 나를 진찰하러 온 의원들은 얼굴을 보이지 않고 묻는 말에 입을 다물고 있어도 비단천 위에서 진맥도 잘만 하더구만, 자네는 그럴 만한 의술이 부족한 것인가?”라면서 되물었다.

허의원은 이어서 “모름지기 진찰에는 망문문절(望聞問切)이 있사옵니다. 이것을 사진(四診)이라고 하온데, 망진(望診), 듣는 문진(聞診), 묻는 문진(問診)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맥을 통한 절진(切診)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병세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마님은 이 4가지 진찰법 중 그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제아무리 신의(神醫)라 할지라도 마님의 병세를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진맥도 제대로 할 수 없거니와 항간에 궁궐에서는 어의들이 후궁을 진찰할 때 손목에 명주실을 묶어 진맥을 한다는 소문도 있지만 이 역시 더더욱 불가한 진찰방법입니다. 저는 더이상 마님을 변증(辨證)할 수 없으니 약방문(藥方文) 또한 낼 수 없습니다. 그만 되돌아가시지요.”
허의원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부인이 휘장 안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비쳤다. 허의원에게 진찰을 받지 못하면 자기만 손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인이 생각해도 허의원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그럼 내 휘장을 거두겠네.”라고 하면서 가마 문에 걸린 휘장을 걷어 올렸다. 그런데 부인의 얼굴에는 분칠이 가득해서 안색을 살필 수 없었다.

허의원은 “만약 제대로 진찰을 받고자 하시면 가마에서 나와서 얼굴의 분을 모두 지우시고 맨 얼굴로 진찰에 임해 주셔야 합니다. 요즘 보면 마님처럼 많은 양반가 부인들이 얼굴에 분칠을 짙게 하고 입술은 붉은 홍화로 물들이고 심지어 손톱에도 봉숭아 물을 들여놓아 정확한 진찰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진맥 또한 손목을 감싼 비단천을 거두어야 합니다.”
부인은 하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서 화장과 입술도 모두 지우고 진찰에 임했다. 사실 당시로써는 양반가 귀부인이 평민인 의원에게 화장을 지운 맨 얼굴을 내 보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허의원은 진찰을 시작했다. “마님의 안색과 입술이 창백하고 간간이 관골에 홍조를 띠고 동시에 혀까지 메마른 것을 보면 혈허(血虛) 증상에 허열(虛熱)이 동반되고 진액 또한 고갈되는 것입니다.” 허의원은 부인에게 “평소 불편해하는 증상은 어떠하십니까?”
부인은 “억울한 감정이 느껴지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잘 놀라고 누가 잡으러 오는 듯한 불안감이 있고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네. 또한 입안은 소태같네.”라고 답했다.

“언제부터 나타난 증상이신지요?”라는 질문에 부인은 “6개월 전쯤에 내 처소에 도둑이 들어 내가 아끼는 패물이 사라진 것을 알았는데, 그때부터 증상들이 시작된 것 같네. 도둑이 든 사실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네.”라고 답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허의원은 “그런 일이 있었군요. 패물은 다시 장만하시면 될 것이고, 이 사실은 사실대로 대감께도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님의 말씀과 증상들을 들어보니 심담(心膽)의 허겁증(虛怯症)입니다. 또한 촌구맥은 가늘면서 떠 있고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은 간화(肝火)입니다. 망문문절 사진을 종합해 보면 마님은 기울(氣鬱)로 인한 화병(火病)이 있는 듯합니다. 이에 온담탕(溫膽湯)에 향부자, 원육, 당귀, 시호를 가하여 처방하오니 잘 복용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허의원의 처방으로 인해 부인의 병세는 차도가 나기 시작했고 단 한제만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부인의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소문이 나자 치료에 실패했던 의원들이 허의원을 찾아 가르침을 청했다. 허의원은 이들에게 “의서에 보면 망진(望診)으로 병을 아는 의사를 신의(神醫)라고 하고, 문진(聞診)으로 병을 아는 의사를 성의(聖醫)라고 하고, 문진(問診)으로 병을 아는 의사를 공의(工醫)라고 하고, 진맥으로 병을 아는 의사를 교의(巧醫)라고 한다고 했소이다. 모름지기 의원이라면 신성공교(神聖工巧) 중 그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해서 진료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요.”
허의원은 이어서 “요즘의 많은 의원들은 환자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눈빛도 마주치지 않으며 또한 환자의 호소나 신음소리는 커녕 어떻게 불편하냐고 질문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소. 자신이 큰 약방에 머물고 명성이 있다고 여긴다면 이러한 폐단은 더욱 심해지지요. 환자들이 손목만을 내밀면서 자신의 병증을 맞춰 보라고 시험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 또한 진맥만으로도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다고 떠들어 대는 의원들에게 책임이 더 클 것이요. 망문문절을 소홀히 하고서 어찌 병자의 오장육부를 알 수 있겠소. 설령 우물 속을 보듯이 몸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계가 있다 할지라도 망문문절은 절대 버리면 안 될 것이요.”라고 당부했다.

허의원의 말에는 당시 의원들의 진료행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허의원의 말을 듣고 있던 의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후 양반가 부인들도 일부는 여전히 고집을 피우다가 병을 키우기도 했지만, 분칠을 지우고 적극적으로 진찰에 임한 부인들은 보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다. 병이 낫고 안 낫고는 의원이나 환자들 하기 나름이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경악전서> 諺云, 寧治十男子, 莫治一婦人, 此謂婦人之病不易治也. 何也. 不知婦人之病, 本與男子同, 而婦人之情, 則與男子異. 중략. 今富貴之家, 居奧室之中, 處帷幔之內, 復有以綿帕蒙其手者, 旣不能行望色之神, 又不能盡切脈之巧. 使脈有弗合, 未免多問, 問之覺繁, 必謂'醫學不精', 往往幷藥不信, 不知問亦非易. 其有善問者, 正非醫之善者不能也. 望,聞,問,切, 欲於四者去其三, 吾恐神醫不神矣. 世之通患, 若此最多, 此婦人之所以不易也, 故凡醫家病家, 皆當以此爲意.(세속에는 ‘남성 10명을 치료하는 것보다 여성 1명을 치료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여 여성의 병은 치료가 쉽지 않음을 말한다. 왜 그럴까. 여성의 병은 본래 남성과 같지만 여성의 정이 남성과 다름을 모르기 때문이다. 중략. 지금 부귀한 집안의 여성은 은밀한 방 속에 휘장을 치고 거처하고 손마저도 비단으로 감싸니 색의 신기를 관찰할 수 없고 맥의 제대로 짚을 수도 없다. 색을 맥과 합할 수가 없으니 문진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데, 지나치게 많이 묻는다고 느끼면 반드시 ‘의술이 정밀하지 못하다’고 하면서 약마저 믿지 않는데, 문진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른다. 잘 묻는 것도 의술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망문문절 4가지 중 3가지를 버린다면 신의라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세상의 보편적인 폐단 중 이런 경우가 가장 많기 때문에 여성의 병이 쉽지 않으니 의사와 환자 모두 이를 유념해야 한다.)
< 만병회춘> 一 常見今時之人, 每求醫治, 令患者臥於暗室帷帳之中, 并不告以所患, 止令切脈, 至於婦人多不之見, 豈能察其聲色? 更以錦帕之類護其手, 而醫者又不便褻於問, 縱使問之亦不說, 此非欲求愈病, 將以難醫. 殊不知古之神醫, 尚且以望聞問切, 四者缺一不可. 況今之醫未必如古之神, 安得以一切脈而洞知臟腑也耶?(요즘 사람들을 보면, 의사에게 치료를 청할 때마다 환자는 어두운 방의 휘장 속에 누워있게 하고 앓는 바를 전혀 알려주지 않으면서 단지 맥만 짚게 하며, 부인의 경우에는 대개 보지도 못하니, 어찌 그 음성과 안색을 살필 수 있겠는가? 또 비단 종류로 그 손을 감싸고 의사 또한 스스럼없이 묻지 못하며 설령 묻는다 해도 역시 말해주지 않으니 이는 병 고치기를 청하려는 것이 아니라 의사를 곤란하게 하려는 것이다. 옛날의 신의들조차 망문문절 네 가지에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지금의 의사가 반드시 옛날처럼 신묘하지는 못한데, 어떻게 한 번 맥을 짚어 장부를 훤히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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