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美반도체법에 골머리.. "中사업이 지뢰밭 됐다"

이벌찬 기자 2022. 8. 13.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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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시설투자 금지' 가드레일 조항에 비상
70조 달하는 美보조금 받으면 中에 첨단장비 투입할 수 없어
대만 TSMC·美 인텔 등도 타격.. 세부안 놓고 협상전 벌어질 듯
"정부, 적극적으로 대화 나서야"
SK하이닉스의 중국 장쑤성 우시(無錫) D램 공장에서 방진복을 입은 직원들이 손을 모으고 있다. 벽에는 ‘함께 일하고, 함께 밥 먹고, 함께 술 마신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최근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 통과 이후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공장 내 첨단 설비 도입과 증설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세계 대표 반도체 기업들이 지난 9일 미 반도체 지원법 통과로 비상이 걸렸다. 이번 법안에 포함된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이 세제 혜택 등 미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들의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시설 투자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법안 수혜 대상인 한국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대만의 TSMC·UMC 등의 중국 사업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이들 기업은 530억 달러(약 70조원) 규모의 미국 보조금을 마다할 수도 없기에 진퇴양난”이라고 했다.

미 반도체 지원법은 ‘중국 반도체 산업 견제’를 3대 목표 가운데 하나로 내건 법안이다. 수혜기업은 향후 10년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에서 28나노 미만 첨단 기술을 중국에서 신규 투자를 할 수 없도록 하고, 한국의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와 패키징(후공정)에 대한 중국 투자 규제는 미 상무부가 향후 별도 기준을 마련하도록 했다. 별도 기준은 최소 2년마다 새로 발표된다.

SK하이닉스 중국 우시 공장 직원들이 생산 라인에서 컴퓨터로 반도체 제조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SK하이닉스

블룸버그통신은 “인텔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가 ‘28나노’라는 기준을 제외하려고 로비를 벌였지만, 결국 이 조항이 법안에 포함됐다”고 했다. 미국은 지금껏 7나노 미만의 초미세 공정에서만 중국에 제재를 가했지만, 이번 법안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 발전을 전면 봉쇄한다는 구상이다.

일본 닛케이아시아는 2일 “반도체 지원법의 발효로 대중 투자를 확대하려던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손이 묶였고, 중국 사업은 ‘지뢰밭’이 됐다”고 했다.

◇'지뢰밭’이 된 중국 반도체 사업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파운드리를 주력으로 하는 대만 기업들이다. TSMC는 난징에, UMC는 샤먼에 28나노 미만의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TSMC의 난징 공장은 16·20나노 공정이 주력이며 작년부터 29억달러(약 3조 8000억원)를 투자해 라인 증설에 나서고 있다. UMC는 지난 5월 샤먼 공장의 반도체 생산량을 연내 16% 늘리겠다고 밝힌 상태다.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 조감도. 삼성은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약 40%를 이 공장에서 생산한다./삼성전자

세계 1·2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본토 공장들도 향후 상무부의 규제안에 따라 첨단 설비 도입과 증설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의 첨단 장비들을 지속적으로 교체하지 못하면 저사양 제품만 만들다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도체를 최종 가공하는 미국의 후공정(테스트·패키징) 기업들도 기술 도입에 제한이 생길 수 있다. 미국 인텔과 마이크론은 각각 청두와 시안에 후공정 공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 애플, HP·델(PC) 등 미국 완성품 업체들의 제조 공장이 밀집한 상황에서 전면적인 중국 내 반도체 투자 금지 조치 시행이 어렵다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삼성의 유일한 해외 메모리 반도체 생산 기지인 시안 공장에선 세계 낸드플래시의 15%(삼성 생산량의 40%)를 생산하고, SK하이닉스 우시 공장의 D램 생산량도 전 세계 생산량의 15%(하이닉스 생산량의 절반 수준)를 차지한다. 만약 이들 기업이 미국의 대중 제재로 중국 공장을 철수하거나 저사양 반도체만 생산하게 되면, 주고객인 애플 등 글로벌 IT기업들도 심각한 생산 차질을 빚게 된다.

◇세부 규제안 놓고 각국 협상전 예상

결국 미국·한국·대만은 자국 기업 이익을 사수하기 위해 반도체 지원법의 세부안을 놓고 치열한 협상전을 벌일 전망이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출범을 앞둔 ‘칩4′(Chip4·한·미·일·대만 반도체 협의체)에서도 치열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대표적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은 2일 보고서에서 “반도체 지원법은 허점(loophole)이 많은 법안”이라면서 “대중 투자 규제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미 상무부, 국가정보국, 국방부 등이 수혜 기업과 함께 위반 사실을 검토하도록 규정하여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고 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경제안보팀장(박사)은 “법안의 1차 세부 규제안(2년 뒤 발표)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나오도록 정부가 협상에 적극 임해야 한다”라고 했다.

중국이 반도체 지원법 수혜 기업들에 별도의 불이익을 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반도체 생산과 소재·장비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 보복 제재를 하기 힘든 여건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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