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목욕탕과 광복절
주2회 모여 해운대의 노래방에서 일본 노래를 부르는 모임이 부산에 있다고 합니다. 회원의 절반이 70~80대 고령자랍니다. 일제강점기 태어나 일본어를 ‘주입(注入)’ 받고 자란 세대. 30~40대 일본인들도 잘 모르는 오래된 엔카를 주로 부른답니다. 모임에서 가수 후지야마 이치로의 ‘그림자를 사모하여’를 부른 89세의 은퇴한 대학교수는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일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어릴 때 10년 동안 일본어만 쓰며 생활했어요. 일본말과 그 시절이 한데 뭉쳐 있으니 떼려야 뗄 수도 없어요. 좋다, 싫다, 뭐 그런 감정이 아닙니다. 단지 가둬두고 봉인한 그 시절을 때때로 풀어주고 싶을 따름이에요. 그게 나에게는 노래입니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와 일러스트레이터 카나이 마키가 함께 쓴 ‘전쟁과 목욕탕’(이유출판)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목욕탕 마니아인 이들은 한국과 태국, 일본 각지의 목욕탕을 탐방하며 일제가 남긴 2차대전의 상흔을 마주합니다. 정글 속 노천탕으로 유명한 태국의 힌다드 온천에서 애초에 그 온천이 태국을 병참기지로 삼으려 한 일본군이 자신들을 위해 정비한 휴식 공간이라는 사실을 상기합니다. 부산 동래의 온천탕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 75세 할머니로부터 “일본인에게는 이름을 가르쳐주기 싫다”는 말을 듣고 전범국 국민으로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죠.
전쟁을 반성하기 위해 택한 장소가 왜 하필 목욕탕이었을까요? 저자들은 목욕탕을 ‘궁극의 비무장지대’라 부릅니다. 일본군도, 식민지 조선인도 탕에 들어갈 때만은 똑같이 ‘벌거벗은 인간’. ‘사람이 소중하다’ 생각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저자들의 말에 고개 끄덕이며 책장을 넘기는 주말, 모레는 광복절입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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