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 시럽이 항상 팬케이크를 기다려야 한다고?

이용재 음식평론가 2022. 8.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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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이용재의 필름위의 만찬]
레인맨
영화 ‘레인맨’에서 레이먼드는 규칙에 따라 메이플 시럽을 곁들여 팬케이크를 먹는다. /myrecipes

요즘 장안의 화제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레인맨(1988)’이 떠오른다. 우영우 변호사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레인맨’의 레이먼드 배빗(더스틴 호프먼)은 실존 인물에 바탕을 두었다. 킴 피크와 폴 색터인데 전자는 기억력이 유달리 좋은 서번트(savant) 증후군의 자폐인으로 유명했다.

레이먼드 배빗은 보호 시설에서 사는 서번트 자폐인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 찰리(톰 크루즈)가 있지만 형의 존재를 모른다. 람보르기니를 병행 수입하는 찰리는 차의 상태 탓에 통관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아버지의 부고를 접한다. 10대 때부터 연락을 끊고 산 아버지이지만 빈티지 자동차와 장미 덩굴만을 자신에게 남겼다는 유언을 듣고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더군다나 집과 300만달러가 신탁에 맡겨져 누군지도 모를 이에게 상속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장본인을 찾아 나선다. 바로 존재를 몰랐던 형 레이먼드였다. 찰리의 어린 시절, 노래를 불러주었던 ‘레인맨’은 바로 레이먼드의 아기식 발음이었다.

안 풀리는 자동차 수입 탓에 망할 위기에 놓인 찰리는 재산을 노리고 형을 보호 시설에서 데리고 나온다. 하지만 생의 대부분을 시설에서 철저하게 규칙에 따라 살았던 형의 세상 나들이는 쉽지 않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채널의 텔레비전 쇼를 반드시 보아야만 하고, 속옷도 같은 마트에서 산 걸 입어야 한다. 음식 또한 우영우 변호사가 늘 먹는 김밥보다 더 많은 규칙이 존재한다. 간식으로는 치즈볼과 사과주스를 항상 먹어야 하며 매주 월요일 저녁은 페퍼로니 피자다. 팬케이크는 반드시 이쑤시개로 먹어야 하는데 메이플 시럽이 먼저 나와 있어야만 한다.

왜 메이플 시럽이 팬케이크를 기다려야만 하지? 그의 규칙이니 내가 간섭할 바는 아니지만 이것 만큼은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물론 미국의 팬케이크 프랜차이즈나 카페에서는 메이플 시럽을 소금이나 후추처럼 식탁에 늘 비치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게 꼭 더 낫거나 팬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갓 부쳐내 따끈한 팬케이크의 흥을 깬다.

메이플 시럽은 끓여 걸쭉하게 졸인 나무의 수액이다. 캐나다의 퀘백주, 미국의 버몬트주를 비롯한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에 서식하는 설탕 단풍나무(Acer Saccharum)를 비롯한 세 가지 품종의 수액만이 메이플 시럽이 될 수 있다. 메이플 시럽의 제철은 한겨울에서 초봄, 또는 2~4월의 3개월로 밤은 매우 춥되 낮은 따스한 시기다. 이 시기에 온도 변화를 통해 나무 내부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원료인 수액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뽑아낼 수 있다. 나무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관을 꽂아 모은 수액을 24시간 이내에 끓여 졸인다. 원래 당 함유량이 2~3퍼센트 수준인 수액을 66퍼센트에 이를 때까지 농축시키는데 결국 40리터의 수액을 가지고 단 1리터의 메이플 시럽을 만들 수 있다. 나무로 환산하자면 한 그루당 1년에 250밀리리터 꼴이다.

많이 졸여 꽤 걸쭉하므로, 신경을 좀 쓴다는 곳에서는 메이플 시럽을 먹을 만큼만 담아 따뜻하게 데워 팬케이크와 함께 낸다. 온도가 올라가면 메이플 시럽이 묽어져 팬케이크에 끼얹기도 쉽고 훨씬 더 잘 스며든다. 원래 색깔 등에 따라 등급도 나뉘고 가격대도 다양한데, 너무 구애받지 않고 1리터에 1만5000원 수준의 제품을 사면 두루 먹을 만하다. 메이플 시럽 100%인지만 확인하면 된다. 팬케이크에 끼얹을 때는 공기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30초에서 1분가량 데운다.

레이먼드가 비행기 탑승도, 고속도로 주행도 거부해 국도를 달려 오하이오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가는 동안 둘 사이는 한층 친밀해진다. 원래 찰리는 형을 이용해 먹을 계획이었고 실제로 그의 비상한 기억력을 활용해 카지노에서 떼돈을 번다. 그러나 같이 여행하며 혈육 및 형제애를 느끼게 되고, 정말 같이 살 가능성을 모색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만으로는 같이 살기가 어렵다는 현실을 결국 인식하고, 메이플 시럽이 먼저 기다리고 있는 카페에서 팬케이크를 나눠 먹고 형을 시설로 돌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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