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황해를 영구평화지대로 만들자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2022. 8. 1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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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자다 굉음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서 보니 서쪽 하늘로 전투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전쟁 위기를 느꼈기 때문일까. 무력충돌로 치닫을 태세의 중국과 대만·미국, 남과 북,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바라보며 평범한 시민의 무력감을 느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나라라며, 미국과는 군사동맹을 견고히 하고 중·일·러와는 친선을 유지하는 1동맹 3친선 체제를 주장했다. 그리고 “한반도는 4대국의 이해가 촘촘히 얽혀 있는, 기회이자 위기의 땅이다. 도랑에 든 소가 되어 휘파람을 불며 양쪽의 풀을 뜯어먹을 것인지, 열강의 쇠창살에 갇혀 그들의 먹이로 전락할 것인지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렸다. 나라를 책임진 사람들이나 외교관은 어느 누구보다 깨어 있어야 한다”(<김대중 자서전>)고 했다. 미군 문제의 관점은 달라도 역사를 관통하는 실용적인 평화관이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그렇다면 한 번도 평화로운 날이 없었던 동아시아에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오는 방안은 없을까. 지정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새 시대의 평화프로세스는 없는 것일까. 예전에는 유럽연합(EU)과 같은 동아시아경제공동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깊어진 갈등을 반영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면교사로 삼아 절망보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전쟁은 야만과 무(無) 이상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칸트는 <영구평화론>에서 약육강식의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제력을 가진 국가가 형성된 것처럼 국가 간에도 마침내 강제력을 지닌 국제국가의 탄생으로 전쟁을 극복하고 평화가 이뤄질 것으로 낙관했다. 실제로 국제연맹·국제연합 탄생의 기반이 되었다.

양자의 주장은 숱한 전쟁을 겪어온 한반도에는 복음과도 같다. 나는 언젠가는 실현될 것으로 확신하는 ‘황해의 영구평화지대’를 제안한다. 그 맹아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계승한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에서 나온 서해평화협력지대다. 송영길 전 인천시장은 인천·개성·해주를 잇는 삼각 경제클러스터를, 김연철 교수는 북방한계선(NLL) 프레임을 탈피하는 서해 해양평화공원을, 그리고 경기연구원은 서해경제공동특구를 제안했다. 2018년 두 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의 공동선언으로 실현될 듯했다. 정권이 바뀌고, 남북과 세계정세의 불안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희망의 불씨마저 꺼진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의 시민 그 누구도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암울할수록 평화의 희망을 키워가야 한다. 황해를 평화지대로 만들어야 한다. 핵심 도시인 서울, 평양, 베이징이 서로 2시간 이내의 비행거리에 있다. 세계 최고의 인구밀집도 위에 고도의 경제기반이 자리하고 있다. 국경만 없다면 하나의 호수를 둘러싼 이웃집이 나란히 붙어 있는 형국이다. 나아가 동중국해의 상하이와 대한해협의 후쿠오카를 시야에 넣는다면 오랜 역사 문화적 관계를 재건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 민중이 쌓아온 이야기는 끝이 없다. 정치·경제·군사학자들의 한계는 인간의 장기 지속적인 의식의 연대를 무시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현재의 갈등과 경쟁의 구도에 과도 몰입한다. 알고 보면 민중은 국경을 넘어 인간적 유대를 깊게 해 온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역사학계의 아날학파가 말하듯이 인간의 망탈리테(긴 시간에 걸쳐 형성된 집단의식)는 단기적인 정치경제사에 좌우되지 않는다.

유교의 성지인 산둥반도에서 공자의 고향 취푸, 도교의 성지 태산, 불교의 4대 성지 오대산·보타산·구화산·아미산으로 가는 길은 황해다. 상하이 아래 항구도시 닝포는 중국과 일본 간 문물교류로 유명했던 곳이다. 백제는 황해를 통해 일본에 불교를 비롯한 각종 문화를 전파했다.

동아시아의 신문물을 매개로 새 세상을 열고자 했던 신종교들이 발생한 호남지방은 민중에게 영혼의 출구였다. 9세기에 불법을 찾아 중국을 순례한 일본 승려 엔닌은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 당에서 신라인들의 편의를 위해 제공한 신라원(新羅院)의 신세를 지고, 무사히 여행한 것에 대해 장보고에게 장문의 편지로 감사를 전하고 있다.

김대중의 평화론을 빌린다면, 1차는 이러한 종교문화를 비롯한 인문적 연대, 2차는 경제적 연대, 그리고 마지막 3차는 동아시아의 영구평화로 가는 길이다. 그의 사유를 황해에 띄워 본다면 숨 막히는 현실에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어오지 않을까.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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