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붐'에서 '임윤찬 신드롬'까지.. '국뽕' 넘은 韓流 많이 컸네

김동규 서울대 신경외과학 명예교수 '마음 놓고 뀌는 방귀' 저자 2022. 8. 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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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김동규의 나는 꼰대로소이다]
아나운서 불타는 애국심 중계
그래도 행복했던 라디오 시절
일러스트=한상엽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등 주요 경기의 라디오 중계방송을 놓치지 않았다. 해외 경기의 TV 생중계는 꿈도 못 꾸던 중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비중 있는 시합이 있는 날이면 만사 제쳐두고 라디오에 귀를 쫑긋했다.

구기 종목, 유도, 레슬링 등 실시간 점수가 드러나는 경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대체로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권투는 상황 파악을 오직 중계자의 입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라디오의 한계였다. 아닌 게 아니라 아나운서의 불타는 애국심(?) 덕분에 김칫국부터 마시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

권투가 우리의 메달밭이었다. 마지막 공이 울리며 치열했던 경기가 끝났다. 아나운서가 고국의 동포에게 기뻐하라며 목이 메었다. 금메달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우리 선수가 용케 한 대도 맞지 않고 시종일관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조화 속인지 심판은 상대방의 손을 올렸다. 아나운서는 편파적인 판정 탓이라며 흥분했다. 어린 마음도 분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해도 해도 너무하네. 작고 힘없는 나라라고 대놓고 무시해도 되는 거야?”

며칠 후 TV에서 경기를 녹화 방영했다. “어럽쇼, 우리 선수가 혼쭐이 나네.” 밀리거나, 후하게 봐도 백중세였다. 허풍이 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당시 인기 아나운서 중 이모(李某)씨의 뻥튀기가 유별났다. 그래도 그가 뭇사람의 사랑을 받은 까닭은 흰소리인 줄 알지만 잠시나마 통쾌했기 때문 아닐까.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이 미미하던 지난날의 자화상이다.

1990년대 초반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30여 년 전인 그때만 해도 작은 도시를 걷다 보면 동양인을 힐끗힐끗 훔쳐보는 현지인들이 꽤 있었다. 어떤 이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국적을 묻기도 했다.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 한국인이라 하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대부분 한국이라는 나라는 알고 있었다. 서울 올림픽 덕이다. 외국에서 한국인이라 하면 한국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는 앞선 세대의 서러움에 비하면 놀랄 만한 발전이다.

독일의 지도교수가 ‘붐 차’(차범근)의 근황을 물었을 때 내색은 안 했지만 으쓱했던 기억이 있다. 외국 공항에서 태극 문양이 선명한 비행기를 발견하곤 넋 놓고 바라보면서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60줄에 들어 여유가 좀 생기고 동남아시아의 오지(奧地) 마을 여행을 즐겼다. 발전기를 돌려 겨우 전기를 쓰는 그림 같은 다랑이논 마을에 들렀다. 소수 민족 아낙네들이 먼지가 뽀얀 브라운관 TV로 우리 드라마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얼기설기 엮은 판잣집 벽에 한국 ‘아이돌 스타’의 빛바랜 포스터도 여러 장 보였다. 말로만 듣던 한류의 위세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감개무량했다. “아! 매스컴에서 한류 한류 하더니 이 정도였구나.”

혜성처럼 등장한 ‘강남 스타일’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뛰어난 우리나라 대중 예술인이 많았지만 ‘싸이’만큼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가수는 흔치 않았다. 기록적인 동영상 조회 수와 함께 지구촌 방방곡곡의 남녀노소가 양 손목을 포개고 ‘말춤’을 춰댔다.

일부 국민 사이에 우쭐하는 마음이 생겼나 보다. 외국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다짜고짜 ‘강남 스타일’을 아느냐고 묻는 ‘국뽕’(맹목적으로 자국을 찬양하는 행태)이 나타났다. 점잖은 외국인에게 뻐기듯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얼굴이 화끈했다.

툭하면 정부까지 나서서 K를 들먹이며 우리가 최고라며 국민을 부추기기도 했다. K팝을 비롯한 여러 K컬처 분야에서 근간에 우리가 이룬 성과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잘난 척하며 떠벌리는 건 스스로 품격을 떨어트리는 처사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다. 난데없이 ‘국까’(자국을 혐오하거나 비난하는 행위)가 등장했다. 조국(祖國)을 비하하다니 옛날 같으면 경을 칠 일이다. 하지만 코로나 감염증에 대한 K방역에 전 세계가 부러워한다는 따위의 낯뜨거운 주장에 적지 않은 국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잠도 잊은 채 꼭두새벽에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가능성이 없진 않았지만 정말로 현실이 될 줄이야. 손흥민 선수가 경기 막판에 두 골을 몰아쳐 ‘영국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동양 선수로는 최초라는데 일본과 중국에서 부럽다며 더 난리다. 공항에서 ‘골든 부트’를 들고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앳된 소년 같았다. 말과 몸가짐에서 겸손이 느껴졌고 마지막 경기에서 팀 동료들이 왜 그를 도우려 그토록 애썼는지 알 것 같았다. 실력 있고 심성 바른 손 선수를 모두가 사랑한 결과 아닐까.

뒤미처 프랑스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박찬욱과 송강호가 ‘칸 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능청맞게 영어로 술술 유머를 풀어내는 윤여정에 버금가는, 시상식에서 그들의 의연한 태도가 자연스럽다. 귀국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서로 공(功)을 미루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의 눈에도 임윤찬의 신들린 듯한 피아노 연주가 멋지다.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17세 홍안의 청년 정신세계는 더 인상적이다. “커리어에 대한 야망은 전혀 없고 콩쿠르 우승과 상관없이 공부할 것이 많다. 상을 탔다고 실력이 달라지나? 나는 산에 들어가 피아노만 치고 싶은 사람이다.”

우리나라가 ‘국뽕’과 ‘국까’를 넘어 성숙한 문화 선진국으로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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