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있는 보수는 '닥치고 지지' 하지 않는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2022. 8. 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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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서민의 문파타파]
위기속 '취임 100일' 尹대통령
보수의 가치 지켜야 하는 이유
일러스트=유현호

“일주일 동안 스물네 명의 국무위원들과 대통령실 인사들이 그야말로 맹폭을 했습니다. 그중의 압권은 행안부 장관이십니다.”

지난 7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강경 대응 기조를 개탄하는 것으로 국회 대정부 질문을 시작했다. 대우조선 사태 당시 이 장관이 경찰특공대 투입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파업 참가자들을 압박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로부터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이탄희는 이 장관을 ‘그야말로 맹폭’했다. 공권력 투입 없이 파업이 종결됐으니 칭찬해 줄 만도 하지만, 이 의원은 가차 없었다. 박범계 의원의 전매특허인 ‘몇 초간 째려보기’를 선보이기도 했고,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임금 상황을 얘기할 때는 감정이 격해진 듯한 목소리로 보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질의를 마친 뒤 인터넷에선 이탄희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조목조목 옳은 말씀!” “국민 위해 열일하시네요. 고맙습니다.” 과거 이탄희에게 “공익 제보를 의원 자리와 엿 바꿔 먹는 분”이라 비판했던 진중권 교수마저 논평으로 칭찬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탄희 의원의 대정부 질문이 정말 그렇게 훌륭했던가? 노사관계 전문가인 박사영 노무사의 말을 들어보자. “대우조선(원청)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우조선과 거래하는 여러 업체 (하청업체)들이 문제인 거죠.” 그러니까 대우조선 사태는 하청업체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원청과 임금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에 불만을 품은 게 그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건 하청업체 내에서 풀어야 할 문제지, 원청에 요구할 사항은 아니었다. 대우조선이 하청 노동자들을 지휘·감독했다면 비슷한 대우를 해달라는 게 말이 되지만, 그런 증거는 아직 나온 게 없다. 결정적으로 하청 노동자들은 배가 드나드는 도크를 점거함으로써, “파업 시 사업장을 점거하면 안 된다”는 합법 파업의 필요조건을 어겼다. 다들 알다시피 파업은 노동자의 신성한 권리로, 국가는 노동자에게 파업할 권리를 주고, 이로 인해 기업이 손해를 보더라도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묻지 않는다. 그런데 불법 파업은 다르다. 이 경우 국가가 공권력으로 진압할 수도 있고, 파업 기간 동안 회사가 입은 손해마저 노동자들에게 배상하도록 할 수 있다. 대우조선 사태 당시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관련 분야 장관들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탄희 의원은 파업의 불법성엔 눈을 감은 채 “왜 노동자를 윽박질렀냐”며 이 장관을 윽박질렀다. 특히 “이것이 불법 점거라고, 수사·재판도 안 해보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셨습니까?”라는 질문은 압권이었다. 어떤 행위가 범죄인지 아닌지를 재판을 통해 확인받으려면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사람을 칼로 찌르는 걸 본다면,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사람을 찌르는 행위가 범죄라는 건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행범도 재판을 받겠지만, 이건 형량의 문제일 뿐, 범죄 여부를 따지기 위함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파업 현장에서 도크를 점거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굳이 재판을 통해 불법 파업 여부를 물어볼 필요는 없다. 이 당연한 얘기를 이해하지 못하다니, 그가 판사 출신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이 의원은 시종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이상민 장관은 이탄희 의원의 이런 감성팔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원청 노동자들의 불법엔 왜 눈을 감았느냐”는 질문에 “그럼 네가 고발하면 될 것 아니냐”고 호통치는 대신 “몰랐다”며 궁색한 답변을 했고, 이 의원이 하청 노동자들의 적은 월급을 이 장관의 책임인 양 몰아붙였을 때도 “문재인 정권 내내 최저 수준이었는데, 왜 윤석열 정권 들어 갑자기 불만을 갖게 됐느냐”, “너네 집권했을 땐 도대체 뭘 한 거냐?”라고 반격하지 못했다.

결국 노사는 임금 4.5% 인상, 노조 전임자 인정, 조합원 고용 승계 등에 잠정 합의했고, 손해배상 소송 취하 문제는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 이전 정권 때 그랬던 것처럼, 현 정부도 불법 파업에 굴복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은 폭우 속에도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하고, 소주를 운반하던 민노총 화물차주들은 별 상관없는 하이트진로 맥주공장에 쳐들어가 시위를 하고 있다. 이 광경을 보며 보수 유권자들은 물을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원칙은 어디 갔느냐고.

김혜경 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사건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은 김모 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재명 의원은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며, “무당의 나라가 되니 이런 일이 생긴다”고 역공을 폈다. 그 지지자들은 이 논리로 인터넷을 도배했다. 그런데 법카 유용 당시 김씨의 개인카드가 이용됐으며, 김씨가 경선 기간 중 김혜경 씨 차를 운전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이재명은, 없는 인연을 억지로 만들려는 음해와 왜곡이라고 말했다. 그 지지자들은 이 논리로 인터넷을 도배했다. 하지만 이재명 측이 선관위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경선 당시 김씨에게 1580만원이 지급됐으며 사유는 ‘배우자 차량 운전’이었다. 이런 팩트는 이재명에게 털끝만큼도 타격을 주지 못했고, 현재 진행 중인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서 이재명의 득표율은 75%에 달한다. 심지어 기소돼도 당대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당헌을 개정 중이라니, 이런 무지성 지지가 어디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좌파 정치인으로 사는 건 이리도 쉽다. 하지만 보수는 그 반대다. 유권자들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지하던 정치인이 보수의 가치에서 벗어난 일을 하면, 그들은 미련 없이 지지를 거둔다. 민노총의 불법 파업에 굴복하고, 자격 없는 이를 여성 할당이랍시고 교육부 장관에 임명해 놓고 ‘전 정권에서 이런 훌륭한 장관 봤느냐’고 칭찬한다면, 그리고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면담 요청을 ‘휴가 중’이라는 황당한 이유로 거절해 버린다면, 보수 유권자들이 현 대통령을 지지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좌파를 포용해 지지율을 올리려는 전략도 물론 필요하지만, 윤 대통령이 잘하길 오매불망 바라는 보수 유권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정책이 더 먼저여야 한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아직 4년 9개월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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