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도 치고 짝도 찾고".. '골프팅'에 빠진 2030세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배준용 기자 2022. 8. 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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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2030 골프 인구 급증
취미생활도 양극화되나

서울 마포구에 사는 대기업 사원 A(33)씨는 작년 말부터 시작한 골프에 흠뻑 빠져 있다. 주말에는 친구·지인과 야외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즐기고, 평일에는 퇴근 후 회사나 집 근처 스크린 골프장을 찾는다. 골프 덕에 얼마 전 새로운 연애도 시작했다. 친구 따라 라운딩을 갔다가 ‘자연스레’ 만난 남성과 서로 호감을 느껴 연인 사이로 발전했단다. A씨는 “소개팅은 어색해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를 했는데, 골프 덕분에 지금 남자친구와 자연스레 대화하며 친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 곱절로 늘어난 2030 골프 인구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2030 세대에게 골프가 보편적인 취미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레저백서 2022′ 에 따르면, 국내 골프 인구는 지난 2019년 470만명에서 지난해 564만명으로 늘었는데 이 중 약 22%인 115만명이 2030이다. 2019년 65만명으로 추산됐던 2030 골프 인구가 불과 2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2030 골프 인구가 급증한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코로나 사태다. 해외여행이 어려워지고 실내 모임마저도 금지되자 야외에서 즐기는 골프가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골프업계에서는 “스크린 골프장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요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대중제 골프장이 꾸준히 늘어 ‘상류층 문화’로 여겨지던 골프에 대한 젊은 층의 인식이 달라진 영향도 크다”고 분석한다.

특히 2030 여성들 사이에서 골프 인기가 뜨겁다. 골프 자체의 재미에 더해 화려한 골프 웨어를 입고 초록 잔디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게 유행이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골프장 방문 횟수는 2019년 평균 2.6회에서 지난해 16.3회로 6배 이상 늘었다. 국내 골프웨어 시장 규모도 2019년 4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5조6000억원으로 2년 새 21.7% 성장했다.

2030 골퍼들은 “골프가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고 커리어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A씨는 “골프를 하다 보니 종종 사회 각계의 명망 있는 분들과도 안면을 트게 됐다”고 했다. 3년 전 골프에 입문한 30대 대기업 직장인 B씨는 “직장 상사나 임원들과 골프를 통해 만나고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게 된 게 큰 장점”이라며 “능력을 인정받는데도 막상 골프를 하지 않아 ‘높은 분’들과 친해질 기회를 놓치는 다른 동료들을 보면서 내심 ‘골프를 일찍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골프도 즐기고 연애 상대도 찾는다?

최근에는 골프를 통해 연애할 상대를 찾는 ‘골프팅’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여러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나 카카오톡의 ‘오픈채팅’, 네이버 ‘밴드’ 등에서는 2030 골프 동호회를 모집하는 글이나 남녀 2명씩 ‘4인 골프 번개’를 찾는 글이 적지 않게 올라온다. ‘썸남(호감이 있는 남성)이 골프를 하는데 나도 골프를 배워야 하느냐’는 고민 상담 글이나 ‘취미로 같이 골프를 했으면 좋겠다’는 ‘셀프 소개팅’ 글도 적지 않다.

일부 골프 마니아들 사이에선 “공 치기도 바쁜데 눈 맞을 틈이 있느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온다. 골프업계 관계자들은 “소위 ‘골프팅’은 대부분 라운딩을 하고 난 뒤 뒤풀이 자리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2030 골퍼들은 “골프 하는 사람과 연애하는 건 긍정적”이라는 반응이다. 서울 여의도에서 일하는 구력 2년 차 20대 직장인 C씨는 “아무래도 골프를 한다면 자산이 꽤 있거나 학력과 연봉이 괜찮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며 “소개팅을 하면 상대방의 경제적 여건이나 배경을 주선자나 당사자에게 꼬치꼬치 캐묻는 게 피곤한 일인데, 골프를 통해 이성을 만나면 그럼 부담은 훨씬 줄어들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30대 직장인 D씨는 “친구 하나가 골프를 하면서 미모와 좋은 직업을 갖춘 여자친구가 생기니 다른 친구들도 하나둘 골프에 입문하더라”며 “적어도 제 주변에선 골프가 원하는 연애 상대를 찾는 좋은 매개체인 듯하다”고 했다.

◇ “2030 내 양극화, 갈수록 심해질 것”

2030세대의 골프 열풍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중장년층 이상 기성 골퍼들 사이에서는 “매너 없는 젊은 골퍼들이 늘었다”는 불평이 나온다. 구력 17년 차인 60대 골퍼 D씨는 “서른 살도 채 안 돼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라운딩하면서 아무 데나 침을 뱉거나 사진을 찍느라고 라운딩이 지체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했다. 최근 골프장 특수로 골프장 요금과 캐디 요금이 줄줄이 인상되는 것과 관련, “한 달에 2번 라운딩을 해도 최소 60만~100만원 정도 들어가는데 젊은 층이 어떻게 감당하는지 의아하다”는 말도 나온다. 경제적 부담에도 무리해서 골프에 입문한 일부 2030을 가리켜 ‘허세 인플레이션’이라는 말도 생겼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월세로 원룸에 사는 친구의 방에 골프채가 있는 것을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냉소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2030 세대의 골프 열풍은 한국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가 젊은 층에서도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부모에게 막대한 자산을 물려받았거나 전문직 또는 대기업 정규직으로 고연봉을 받는 이른바 ‘영 앤드 리치(Young & Rich)’ 계층과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저소득 청년층 간의 격차가 여가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이 2019~2020년 2030이 가구주인 가구의 자산 및 경상소득 변화를 분석한 결과, 소득 5분위 가구의 경우 자산은 평균 8억~8억7000만원, 경상소득은 9459만~9963만원으로 늘어난 반면 소득 1분위 가구의 경우 자산은 평균 2400만~2470만원, 경상소득은 3017만~3046만원으로 느는 데 그쳤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전문직이거나 대기업 정규직의 경우 연봉을 모아 부동산·가상화폐 투자 등 적극적인 재테크로 자산을 늘리는 반면, 비정규직 계층은 투자에 필요한 ‘시드 머니’를 모으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현실”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의 정규직 시간당 임금은 평균 3만2699원으로 상시 근로자 300인 미만 기업의 비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시간당 임금 1만4899원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채창균 한국노동경제학회장은 “양극화된 노동 시장을 개혁해야 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지만, 사회·정치적 여건상 쉽지 않아 보인다”며 “젊은 층 내 양극화도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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