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군 사령관 "푸이, 집정제 거부하면 적 간주" 최후통첩

2022. 8. 1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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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39〉

푸이는 가는 곳마다 여동생들을 데리고 다녔다. 만주국 군정 요원 오찬회에 참석한 푸이의 여동생 윈잉( 穎). [사진 김명호]
1932년 2월 중순, 관동군의 위성기구 ‘동북행정위원회’가 ‘만·몽(滿·蒙) 독립선언’과 공화국 수립을 의결했다. 뤼순(旅順)에서 만주국 황제에 추대될 날만 기다리던 푸이(溥儀·부의)에겐 청천벽력(靑天霹靂)이었다. 평소 만주에서 발흥한 청나라 황실의 정통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관동군 사령관에게 보낼 서신을 작성했다. 만주에 선보일 새로운 국가가 공화제가 아닌 제제(帝制)라야 하는 이유를 열거했다. “중국은 20여 년간 민주제도의 극심한 피해를 보았다. 사리사욕에 눈먼 소수의 투기꾼 외엔 공화제를 혐오한다. 만·몽은 고유의 습관을 간직한 곳이다. 전통적인 통치 방식이 아니면 복종을 끌어내기 힘들다. 청 제국은 200년간 중화(中華)의 역사를 장식했다. 베이징에 입성하기 전, 100년간은 만주의 역사를 새로 만들었다. 인민의 풍속과 습관을 지고의 보물로 받들며 백성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동방의 정신을 보존했다. 귀국과 우리의 황통을 공고히 하려면 왕정을 복고해야 한다. 몽골의 왕공(王公)들은 세습이 전통이다. 공화제 실시로 작호(爵號)가 소멸하면 통제가 불가능하다.”

정샤오쉬, 푸이 서신 빼고 선물만 전달

천장절 축하연에 참석한 푸이를 영접하는 관동군 사령관. [사진 김명호]
푸이는 서신을 측근 정샤오쉬(鄭孝胥·정효서)편에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郞)에게 전달했다. 선물도 황실 소장품 중에서 직접 골랐다. 훗날 밝혀진 일이지만 정은 이타가키에게 선물만 전달했다. 푸이의 의중과 서신 내용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큰소리만 쳤다. “황제는 백지나 마찬가지다. 관동군이 뭐를 그려도 상관없다. 직접 만나봐라.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 하면 듣기만 해라. 뒷일은 내가 책임진다.”

1932년 2월 23일, 뤼순의 숙친왕 관저에서 이타가키와 푸이의 회담이 열렸다. 말이 좋아 회담이지 통보나 마찬가지였다. “장쭤린(張作霖·장작림)과 장쉐량(張學良·장학량) 부자의 학정은 민심을 얻지 못했다. 보장받아 마땅한 일본의 정당한 권익도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은 왕도낙토(王道樂土)를 건설하려는 만주인들의 염원을 돕고자 한다. 새로운 국가의 국명은 만주국, 수도는 창춘(長春)으로 정했다. 이에 창춘을 신징(新京)으로 개명했다. 만주국의 중요 구성원은 만족(滿族), 한족(漢族), 몽골족(蒙古族), 일본족(日本族), 조선족(朝鮮族)이다. 일본인들은 수십 년간 만주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관리 등용에 다른 민족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푸이의 만주국 집정 취임을 앞두고 집안에서 일장기를 들고 있는 정샤오쉬. [사진 김명호]
이타가키가 만·몽인민선언서(滿蒙人民宣言書)와 집정즉위선언(執政卽位宣言), 만주국 국기를 푸이의 면전에 펼쳐놨다. 푸이는 청 제국이 아닌 만주국과 집정이라는 용어에 기분이 상했다. 손으로 선언문과 국기를 밀어내며 물었다. “청 제국이 아니란 말인가?” 이타가키는 침착했다. “대청제국의 복벽이 아닌, 동북행정위원회가 의결한 새로운 국가다. 이 위원회는 동북 인민을 대표한다. 만장일치로 각하를 새로운 국가의 원수, 집정에 추대했다.”

평소 선통제나 황제폐하라 부르던 일본인의 입에서 각하라는 말이 나오자 푸이는 당황했다. 논어의 한 구절 인용하며 낯선 칭호에 항의했다.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바르지 않고, 말이 바르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만주인이 바라는 것은 나 개인이 아닌 청 제국의 황제다. 관동군은 숙고하기 바란다.” 이타가키가 두 손 조아리며 말을 받았다. “만주인들이 각하를 추대한 이유는 민심이 각하에게 있기 때문이다. 관동군의 동의는 당연하다.” 푸이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일본도 천황제를 신봉하는 제국이다. 관동군이 공화제에 동의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타가키도 만만치 않았다. “공화제가 아닌 집정제다.” 푸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간 귀국의 성의와 도움에 감사를 표한다. 집정만은 받아들일 수 없다. 황제는 조상들이 내게 물려준 신성한 호칭이다. 집정 수락은 선조들에 대한 불충(不忠)이며 불효(不孝)다. 황제가 아니면 텐진(天津)으로 돌아가겠다.” 이타가키가 대안을 제시했다. “1년 후 헌법을 개정하고 의회에서 국가원수개정안을 통과시키면 된다.”

푸이 “과도기는 1년을 넘길 수 없다”

만주군 포병의 기동훈련. [사진 김명호]
푸이가 계속 물고 늘어졌다. “황제는 의회라는 잡배 집단이봉하는 자리가 아니다. 2000년간 이어온 존엄의 상징이다.” 3시간에 걸친 입씨름에 이타가키는 진이 빠졌다. “내일 다시 얘기하자”며 자리를 떴다.

이튿날 새벽, 이타가키가 푸이의 측근 한 사람을 불렀다. “군부의 결정은 바꿀 수 없다. 집정을 거부하면 적으로 대하겠다.” 보고를 받은 푸이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정샤오쉬의 아들이 푸이를 진정시켰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일본인의 수중에 있다. 일본과 결별하면 후사를 도모할 수 없다. 1년간 고통과 치욕을 삼키자. 1년 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퇴위를 선언하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푸이의 눈길이 정샤오쉬를 향했다. “이타가키를 만나라. 과도기는 1년을 넘길 수 없다.” 회담을 마치고 온 정샤오쉬의 보고는 간단했다. “이타가키가 동의했다. 오늘 밤 미래의 집정자를 위해 작은 연회를 준비했다며 참석을 간곡히 요청했다.”

그날 밤, 연회를 주관한 이타가키는 참석자 전원에게 일본 기녀(妓女)를 한 명씩 배정했다. 자신은 양옆에 기녀를 끼고 호기를 부렸다. 푸이 옆에 앉은 기녀는 말 없는 청년의 정체가 궁금했다. 어눌한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 “이 안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 너무 의젓하고 만면에 세월의 풍상이 가득하다. 원래 중국인이냐? 뭐 하는 사람이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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