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무대서 성공하려면, 백스테이지서 최선의 준비 필수

2022. 8. 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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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E SOCIETY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 내부의 레스토랑‘모던(The Modern)’. 주방을 갤러리와 같은 공간으로 바꾸고 그 안에 4인석 셰프테이블을 설치했다. [사진 박진배]
“모터사이클을 꾸준히 관리하고 수리하지 않으면 여행을 계속할 수 없다.”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Robert Maynard Pirsig)의 철학서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에서 강조하는 단순한 진리다. 우리가 손님으로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경험을 생각해보자. 보통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시간에 맞추어 도착, 안내를 받고, 음식을 주문해서 먹고 계산하고 나온다.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다이닝 홀이다.

하지만 주방에서 일하는 셰프의 입장은 다르다. 오전에 식재료가 뒷문으로 배달되면 포장을 뜯고, 분류해서 정리한 후, 씻고 썰고 조리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 음식을 접시에 담아 손님에게 내보낸다. 하루 종일 머무는 공간은 레스토랑 뒤편의 주방이다. 외식산업에서는 레스토랑의 홀을 FOH(Front of the House), 주방을 BOH(Back of the House)로 나누고, 직원 채용이나 업무도 분류해서 한다.

레스토랑 ‘오픈키친’ 경계 허물어

캘리포니아 코스타 메사의 세게스트롬 공연센터(Segerstrom Center for the Arts). 무대에 올라가면 오케스트라와 객석을 바라보며 공연자의 시선을 경험할 수 있다. [사진 박진배]
199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오픈키친’은 이 경계를 살짝 허물었다. 전통적으로 ‘관계자외 출입금지(Employees Only)’인 주방의 일부를 개방하고, 손님들이 완성된 요리뿐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까지도 구경하도록 만든 것이다. 물론 철저한 위생과 깨끗한 관리, 조리를 하는 진지한 태도와 자신감이 필수 요건이다. 이는 식재료를 예쁘게 진열하는 ‘디스플레이 키친’이나 공연무대와 같이 꾸미는 ‘쇼 키친’으로 진화했다. 근래에는 여기서 더 발전해서 주방 내부에 특별한 손님을 위한 ‘셰프테이블(Chef’s Table)’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내부의 ‘모던(The Modern)’은 2017년 여름, 레스토랑의 문을 닫고 40억원의 비용을 들여 주방을 리모델링했다. 주방을 갤러리와 같은 공간으로 바꾸고 그 안에 4인석 셰프테이블을 설치, VIP 고객을 유치하고 있다. 단골 고객들에게는 식사 후 주방 투어를 시켜준다. 이런 디자인은 레스토랑의 뒤편, 백스테이지(Backstage)를 궁금해 하는 손님들의 요구에 부응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손님들은 조리과정을 지켜봄으로서 직원들의 노고를 이해하고, 제공되는 음식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스위스 쉐네그(Schönegg) 호텔 주인. 주인은 주방이라는 백스테이지의 구성과 조직, 운영을 바탕으로 손님을 위해서 매일 공연의 무대를 만드는 사람이다. [사진 박진배]
레스토랑에는 손님과 직원 이외에 또 다른 존재가 있다. 주방과 홀을 모두 책임지는 경영자, 또는 주인이다. 주인은 주방이라는 백스테이지의 구성과 조직, 운영을 기반으로 손님을 위해서 매일 공연무대를 만드는 사람이다. 주인에게는 주방과 홀, 두 공간의 삶이 동시에, 실시간으로 존재한다. 실제로 우리 대부분의 인생은 그러하다.

뉴욕 링컨센터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는 발레와 오페라 공연으로 사용되는 극장이다. 여기서는 기부자나 정기회원들에게 백스테이지를 관람시켜준다. 무대장치를 위한 기계들, 세트의 수납공간, 의상실 등을 둘러보고 무대에 올라가서 오케스트라와 객석을 바라보며 공연자의 시선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세트, 조명, 음향, 의상, 분장 등 공연에 필요한 요소를 점검하고 준비하는 스태프들의 노력을 이해하게 된다. 마치 주방을 관람하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당연히 공연에 대한 만족도도 증가한다.

백스테이지의 생활과 문화는 단순하지 않다. 인간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늘 긴장과 갈등이 존재한다. [사진 박진배]
백스테이지의 백미는 ‘그린 룸(Green Room)’이라고 불리는 공간이다. 공연자들이 무대로 나가기 전 생각을 다듬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대기실이다. 셰익스피어 시절부터 존재해 왔던 방인데, 이름이 ‘그린’으로 붙여진 것에는 여러 설이 있다. 무대에서 사용하는 녹색의 화분들을 수납하던 곳이라던가, 공연 전 배우가 긴장으로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또는 별도의 대기실이 없는 야외무대에서 배우들이 녹색 포도 넝쿨 속에서 대기하던 전통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그것이다. 유래가 어찌되었건 그린의 색채는 긴장되는 마음의 평온함을 가져오는 색이라고 인지돼 있다(요즈음은 꼭 녹색으로 칠하지 않는다). 공연 전의 그린 룸에서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연습을 반복하는 공연자의 집중된 에너지가 느껴진다. 동시에 옷핀 하나만 떨어져도 들릴 것 같은 극도의 긴장과 고요함이 공존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공연의 서막이다.

백스테이지의 문화는 단순하지 않다. 인간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늘 긴장과 갈등이 존재한다. 서로 질책하는 경우도 생기고, 싫어하는 사람들과도 어쩔 수 없이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 무대에서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실제로는 이혼 소송 중인 부부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늘 서로를 격려하고 도와준다. 순간순간 상대방을 높여주고, 공연의 질과 에너지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모두가 최선을 다한다. 많은 소설과 영화들이 이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아티스트(Artist)’, ‘블랙 스완(Black Swan)’, ‘비는 사랑을 타고’ 등의 영화는 백스테이지의 과정과 내용을 성공적으로 심어놓은 대표작들이다. 리플레이스먼트(The Replacements), 머니볼(Moneyball), 록키, 제리 맥과이어 등 스포츠 영화들의 주제도 대부분 백스테이지 이야기다.

인생이란 무대엔 특수효과 없어

영국 뷰리우(Beaulieu)의 자동차박물관. 차량을 꾸준히 관리하고 수리하지 않으면 여행을 계속할 수 없다. [사진 박진배]
스포츠에는 다른 공연들과 다르게 두 단계의 백스테이지가 존재한다. 라커룸과 벤치다. 라커룸은 첫 번째 백스테이지다. 서로 장난도 치고 말다툼도 하며 기쁨·분노·희열 등 온갖 감정의 순간이 교차되는 장소다. 물론 경기 당일의 중요한 작전지시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두 번째 백스테이지는 벤치다. 벤치는 약간, 무대의 성격을 갖는다. 마치 레스토랑의 오픈키친과 같다. 이곳에서는 비난과 갈등보다는 서로간의 격려와 응원으로 경기의 좋은 분위기를 만든다. 작전타임에 감독들의 지시를 중계하는 카메라도 가능하면 그런 그림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것이 백스테이지와 무대의 차이다.

레스토랑의 주방이나 스포츠 경기의 벤치, 공연장의 백스테이지를 관찰해보면 하나의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서 맡은 역할과 동선을 분, 초 단위로 점검하는 스태프들의 노고를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의 인생에는 무대와 백스테이지가 동시에 존재한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프론트스테이지(Frontstage)’와 ‘백스테이지’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프론트스테이지는 일상의 패턴과 친숙한 법칙, 타인의 시선이 있는 곳으로, 사회적인 세팅과 약속을 의미한다. 그래서 기대되는 기준이 존재하고, 사람들도 대부분 이에 따라 행동한다. 반면에 백스테이지는 개인적으로 머물고 존재하는 공간이다. 옷도 편하게 입고 말투도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보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가까워지는 곳이다. 무엇보다 프론트스테이지로 나가기 위한 준비의 장소다. 직장과 가정이 그 쉬운 예다.

몬트리올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본사의 의상실. 하나의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서 맡은 역할을 점검하는 과정은 백스테이지의 일상이다. [사진 박진배]
레스토랑에 ‘미장 플라스(Mise en Place)’라는 용어가 있다. 필요한 집기와 식재료들이 제자리에 정리돼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를 뜻한다. 책임자는 영업시작을 ‘집이 열렸다(La maison est ouverte)’는 표현으로 알린다. 연극에서도 공연 전 관객이 입장하기 시작하면 무대 뒤편에서 같은 표현으로 신호를 한다. 공연자는 백스테이지의 그린 룸을 나와서 무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비스듬한 사선(斜線)의 각도에서 객석을 힐끔 쳐다본다. 정연하게 앉아있는 관객들의 진지한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첫발을 딛는 순간 조명이 비추고 시선은 일제히 나에게 꽂힌다. 이제 그동안의 오랜 연습으로 압축된 동작을 표현하는 시간이다.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무대가 앞에 있다. 오늘 공연의 성공은 그동안 쉬지 않고 반복했던 백스테이지의 리허설만이 보장해줄 것이다.

인생이라는 무대에는 특수효과나 컴퓨터그래픽이 없다. 진실을 보고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백스테이지에서의 최선이 필수다. 그리고 그것을 은유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연세대, 미국 프랫대학원에서 공부했다. OB 씨그램 스쿨과 뉴욕의 도쿄 스시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공간미식가』, 『천 번의 아침식사』 등을 쓰고, 서울의 ‘르 클럽 드 뱅’, ‘민가다헌’을 디자인했다. 뉴욕에서 ‘프레임 카페’와 한식 비스트로 ‘곳간’을 창업,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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