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주의 경계..'벌레의 눈'으로 보라

장혜수 입력 2022. 8. 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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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는 착각
알고 있다는 착각
질리언 테트 지음
문희경 옮김
어크로스

1990년 여름, 영국 케임브리지대 사회인류학과 박사과정의 질리언 테트는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를 찾았다. 당시는 구소련이 무너지기 전이라서 엄밀히 말해 이곳도 소련의 두샨베였다. 방문 목적은 ‘타지키스탄에 이슬람과 공산주의 사이의 충돌이 있느냐’라는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테트는 인류학의 연구방법론 중 하나인 ‘참여 관찰’을 통해 현지의 결혼 풍습을 연구함으로써 답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

1년간의 현지 연구를 통해 ‘중요한 개념을 발견했다’고 자신한 테트는 논문을 쓰려고 영국에 돌아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표현을 빌리면 ‘세상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소련이 붕괴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현재의 인류학’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가 돼버렸다고 생각했다. 새 길을 모색했고, 그렇게 해서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에 취직해 저널리스트가 됐다.

‘킷캣’은 처음 일본에선 연말연시 규슈에서만 잘 팔리는 독특한 현상이 나타났다. [EPA=연합뉴스]
그 테트가 이 책의 저자다. 인류학 박사이자 파이낸셜 타임스 US 편집국장인 그가 인류학(Anthopology)의 시각(Vision)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래서 책의 원제도 ‘Anthro-Vision’이다. 인류학의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게 어떤 걸까. 우선 책에 나온 사례 하나를 소개하자.

초콜릿 웨하스 ‘킷캣(Kitkat)’은 1930년대 영국 라운트리 제과에서 처음 만들었다. 업체는 판매 타깃을 공장노동자로 정했다. 그리고 “잠깐 쉬세요, 킷캣과 함께”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소박한 한 끼” 등의 문구로 광고해 인기를 끌었다. 20세기 후반 킷캣은 전 세계로 퍼졌다. 그중 한 곳인 일본에서 판매는 부진했는데 특이한 현상이 포착됐다. 연말·연초가 되면 규슈 지방에서만 판매가 급증했다. 조사 결과 킷캣(일본 발음 킷토캇토)이 규슈 방언으로 ‘반드시 이긴다’는 뜻의 키토카츠(きっと勝つ)와 비슷하게 들린 것. 수험생 선물용으로 많이 팔렸던 거다.

그때까지 일본에서도 “잠깐 쉬세요”로 판촉했던 킷캣은 문구를 “반드시 벚꽃이 필 거야”(꼭 합격할 거야)로 바꿨다. 킷캣은 이제 일본인은 물론, 일본을 찾은 외국 관광객이 사가는 기념품이 됐다. 저자는 이 책에 유사한 여러 사례를 소개하며 “서로 연결된 세계에서는 문화 차이로 인해 함정이 생기기도 하지만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저자는 문화적 변이와 유동성의 사례를 통해 ‘인류학의 시각’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책은 크게 3부,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 부와 각 장에는 ‘인류학의 시각’을 보여줄 수 있는 에피소드가 킷캣 사례 외에도 여러 개 수록돼 있다. 저자는 책에서 수차례 ‘새의 눈으로 조망하는 대신 벌레의 눈으로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새의 눈은 위에서 조망하거나 빅데이터로 바라보는 관점이고, 벌레의 눈은 아래에서 위를 보고 이런 관점을 결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저자는 현실을 오판하는 엘리트주의의 맹점도 경계한다. ‘새의 눈이 아닌 벌레의 눈으로 보라’는 얘기와 일맥상통하는데, 책에 대표적 사례로 드는 게 2016년의 브렉시트 투표와 미국 대선이다. 특히 미국 대선은 트럼프의 우스꽝스러운 메시지를 엘리트층이 비웃을 때 지지자들은 이를 트럼프가 엘리트가 아니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환호했다는 거다. 저자는 이를 극복할 수단으로 역시 인류학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일견 저자의 얘기가 ‘인류학 만능주의’로 들릴 수 있지만,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눈과 귀를 좀 더 열자’는 거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책 번역본 제목이기도 한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문송’(문과라서 죄송)한 처지에 있다면 이 책이 인문사회과학을 통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데 작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겠다.

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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