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강릉시민 축제,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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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남기고 싶은 이야기] 타이거 사람들 〈14〉강릉국제영화제
앞서 지난 6월 13일 오마이뉴스는 시 인수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폐지 사유로 ‘시민 호응도가 낮고’ ‘지난해 좌석점유율이 60%였다’는 점을 들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좌석점유율을 더 높이라는 요구는 이해할 수 없다. 김홍규 시장은 “(관내에 독립영화제인 정동진영화제가 있어) 강릉에는 국제영화제가 필요 없다”며 “선거 기간에 만난 모든 시민과 문화단체가 반대한다”라고도 했다. 더구나 임시총회도 열기 전에 파견 직원인 사무국장과 회계팀장을 7월 18일 자로 원대 복귀시키고, 이미 교부됐던 30억원의 올해 예산 중 24억4000만원과 사무실 임대보증금 6000만원까지 회수했다. 결국 ‘전임시장이 만든 것이라 폐지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강릉영화제 만족도 80%로 높아
2020년 1월 31일 오후 허 교수의 요청으로 영화제 준비팀을 만났다. 프로그래머인 정란기(이태리영화제 집행위원장)를 제외한 자문위원 김수련 작가, 임희 화가, 사무국장, 영화감독 등은 모두 초면이었다. 2월 25일엔 강릉 명주예술마당에서 열린 ‘강릉국제문학영화제 개최를 알리는 포럼’에 참석했다. 조직위원장인 김한근 시장, 고문인 전 국회의원 김홍신 작가, 배우 안성기 그리고 준비팀인 허성필·김수련·임선희 등이 참석했다. 안성기는 어릴 때 외가인 강릉에서 자란 이 지역의 ‘상징 인물’이어서 자문위원장을 맡았다. 4월 8일 한 차례 더 준비팀을 만났을 땐 프로그래머가 정란기에서 조명진으로 바뀌어 있었다.
8월 9일 김 시장이 전화해 냐게 조직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고, 8월 12일 오전 11시엔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의 집까지 찾아와 재차 요청했다. 11월 8일 개막일까지 불과 석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라 즉답은 피했지만 쉽게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강릉시는 국제영화제 입지 조건이 부산보다 나은 것 같았다. 명산과 바다가 있고, 도시 규모도 인구 20만 명으로 적절하다. 신사임당과 이율곡, 허난설헌과 허균이 태어나 활동한 문향이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제도 열린다. 카페 문화가 발달하고 동계올림픽을 열면서 숙박시설도 갖췄다. 의지와 열의도 대단하니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이튿날 시장에게 전화해 8월 14일 마포 서울사무실에서 점검회의를 열자고 제안하면서 사실상 수락했다. 회의에 가보니 조명진 프로그래머를 제외한 모든 스태프가 교체돼 있었다. 집행위원장은 아직 공석이었고, 사무국장은 시에서 파견된 이석제가 맡고 있었다. 허 교수는 ‘대외협력관’ 직책만 유지하고 있었다. 고 최인호 작가의 회고전과 칸영화제 독립영화부문인 ‘아시드 칸’ 상영작의 초청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8월 16일 처음 열린 평창국제남북평화영화제의 개막식에 갔다가 만난 김홍준 감독과 다음날 조찬을 하면서 집행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충무로뮤지컬영화제 집행위원장도 맡고 있어 ‘예술 감독’을 하겠다고 하면서 이를 수락했다. 조찬 뒤 강릉의 상영 장소들을 돌아보고 강릉아트센터를 개·폐막식장으로, CGV강릉과 독립영화상영관 ‘신영’을 주상영관으로 각각 정했다. 특히 전동스크린을 갖춘 ‘고래책방’은 영화제 때 문인들이 이곳에서 관객과 함께 영화를 보고 대화하면 좋을 것 같아 김선희 대표와 상의해 상영 장소로 확정했다.
영화 선정은 김 감독과 조명진 프로그래머에게 맡기고 나는 강릉 지역 여론형성과 협력체제 구축, 그리고 국내 문화인과 해외영화인 초청에 주력했다. 8월 20일 오후 강릉의 독립영화인 박광수(정동진영화제 집행위원장)·이마리오(강릉시네마테크)·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장)을 서울에서 만난 것을 시작으로 시의회·상공회의소·교육청·강릉단오제문화원·예총·노인회 등을 돌며 협조를 구했다. 박용재 북 콘서트, 문화제야행, 커피축제, 노인회연찬회 등 행사에 참석했다. 여성단체 간담회 때는 박정자·윤석화가 함께해 힘을 실어줬다.
‘21세기 국제영화제의 회고와 전망’을 주제로 세계영화제 수장들이 참석하는 ‘강릉포럼’을 창설해 도쿄·도쿄필름엑스·홍콩·마카오·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뉴욕(아시아)·콜롬비아·브졸·모스크바 등 주요 영화제의 회장 또는 집행위원장 12명이 모였다. 2018년 5월 6일 타계한 프랑스 영화인 피엘 리시앙의 추모행사도 마련해 그의 부인인 서영희(프랑스 거주), 인도네시아 국민배우 크리스틴 하킴, 칸영화제 감독주간 프로그래머인 벤자민 이요스와 영화인 이창동·전도연·양익준 등이 참가했다.
그해 11월 8일 강릉아트센터에서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가 열렸다. 개막 행사에는 강릉시향이 새로 작곡한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세계 최초의 여성감독 귀 브라세가 1912년 연출한 무성영화 ‘마지막 잎새’(오 헨리 원작)가 상영됐다. 14일까지 이레 동안 열린 1회 영화제에선 32개국 73편의 영화가 상영됐고, 14개국 37명의 해외인사가 참석했다. 효과 분석을 의뢰한 가톨릭관동대에 따르면 8만245명이 참여했고, 극장 관람인원은 2만2779명, 좌석점유율은 83.75%로 성공적이었다.
2020년 제2회 영화제는 코로나19로 칸영화제 등 수많은 국제영화제가 중단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가운데서도 열렸다. 기간을 열흘에서 사흘로 줄이고, 상영작도 개막영화인 ‘동백정원’(일본 우에다 요시히코(上田義彦) 감독) 등 경쟁부문 8편, 한국 신작 10편, 제작지원작 3편 등 25편으로 줄였다. 그 대신 ‘포스트 코비드19-뉴 노멀시대의 시네마’를 주제로 토론토영화제 명예회장 피어스 핸들링의 기조발제를 녹화 방영하고,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포함한 해외영화제 수장 10명의 영상 전화로 연결하고 부산·부천·전주 등 한국영화제 집행위원장 여섯 명이 토론하는 ‘강릉포럼’을 열었다. 28억원의 시 지원예산 중 15억원을 강릉시민을 위한 코로나 재난지원금으로 사용하도록 반납했다.
문화인·해외영화인 초청 주력
지난해 제3회 영화제도 코로나 상황 속에서 10월 22~31일 열흘간 강릉아트센터와 강릉대도호부 관아, 명주예술마당·CGV강릉·신영극장·고래책방·말글터문고·구슬샘문화창고 등에서 42개국 116편을 상영했다. 특히 강릉포럼은 ‘당신은 아직도 영화(관)를 믿는가’라는 주제로 로테르담영화제 반야 카르제르치치로 집행위원장의 기조 강연에 이어 브졸·우디네·피렌체·말레이시아·마카오·후쿠오카·콜롬비아·뉴욕 등 해외영화제 집행위원장 아홉 명이 강릉을 직접 찾아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강릉포럼’은 영화제 수장들이 모이는 대표적인 국제행사로 자리잡았다.
가톨릭관동대학교의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영화관람 인원 1만927명, 좌석점유율 61%, 영화제 만족도 79.9%으로 나타났다. 특히 관객 점유율이 1회 때 수도권 60.7%, 강릉지역 20.2%였던 것이, 3회 때는 수도권 31.8%, 강릉지역 50.2%로 역전되면서 영화제가 ‘강릉시민의 축제’로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했다.
강릉영화제는 올해 4회를 앞두고 지난 1월부터 팀장과 직원 거의 전부를 공채로 교체했다. 김 감독이 2월 24일 영상자료원장으로 옮겼지만, 4월에 ‘봄 영화사’ 오정완 대표를 신임 집행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이처럼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던 중 김홍규 신임시장의 영화제 폐지 통보를 받았다. 부임하자마자 뒷마무리만 하게 된 오정완 대표와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모든 직원께 죄송한 마음뿐이다. 당태종의 정관개요에 나오는 ‘창업도 어렵지만 수성이 더 어렵다’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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