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83m까지 내려가니, 못생긴 마음이 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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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오디세이] 프리다이빙 대모 김선영씨
김선영 씨는 국내 프리다이빙의 1세대 선구자다. 삶의 의미와 자유를 찾아 안정된 직장(음악 교사)에 사표를 던지고 프리다이빙을 쫓아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요가와 명상을 만났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담은 책 『삶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정신세계사)도 펴냈다.
2017년 4월 인터뷰 이후 5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낭랑한 소프라노 톤 목소리는 여전했으나 그는 훨씬 건강하고 안정돼 보였다.
Q : 5년 만의 재회입니다. 그 동안 무슨 일을 하셨는지요?
저희가 만났을 때가 세계여행 1년 차였는데요. 이후 여러 바다를 돌아다니고 대회에도 출전했죠. 4년쯤 됐을 때 한 곳에 정착하고 싶더라고요. 1년 내내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곳, 요가와 명상도 하는 평화로운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시선을 좁히다 보니 이집트 시나이반도에서 홍해에 면한 다합이란 곳에 꽂혔어요. 해변에서 50m만 수영해 나가면 직벽으로 100m 이상 떨어지는 블루홀이 있어서 프리다이빙의 성지로 불립니다. 그 곳이 저의 놀이터가 되었죠.”
기록 욕심 앞서면 불행한 다이버 돼
Q : 다이빙 최고 기록도 바뀌었나요?
A : “그럼요. 5년 전 공식 최고 기록이 65m(비공식은 71m)였는데 어느새 83m에 가 있네요. 지난해 온두라스에서 열린 캐러비언컵 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세운 기록인데 AIDA(세계프리다이빙협회)에서 공식 인증했어요. 제가 월드 클래스에 비하면 베이비 수준인데 코로나 영향으로 그분들이 많이 못 나와서 운 좋게 1등을 한 겁니다. ‘평소 훈련한 만큼만 편하게 하자’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Q : 83m 내려가니까 뭐가 있던가요.
“바다가 있었어요(웃음).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은 똑같은데, 자신과 더 깊이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기록은 단숨에 깨지는 게 아니고, 기록을 세우기 위해 테크닉을 연마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바다랑 점점 더 깊은 교감을 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서 편안해질수록 바다가 자신을 더 열어주는 것 같습니다.”
Q : 바닷속에 있으면 마냥 편안합니까.
“그럼요. 이젠 편안함을 넘어 경이로워지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도 인간이 어떻게 공기통이나 장비 없이 숨 한 번으로 그렇게 내려가는지 참 신기하거든요. 근데 내려갈수록 더 몸에 힘이 빠지고 ‘내려놓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83m 내려갔다 올라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2분 23초였어요.”
A : “네. 지금은 6분 정도 참을 수 있어요. 명상 수련을 하고 나서는 숨을 참고 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편안해요. 명상을 하면 몸 안의 감각들을 바라볼 수 있는데 힘이 들어간 걸 알아차리고 그곳에 힘을 빼 줍니다. 그러면 시간이 더 늘어나죠.”
Q : 김정아 선수가 김선영 선수의 최고기록을 하나씩 깨고 있는데요.
A : “뿌듯하고 기쁘죠. 제가 국내 프리다이빙의 대모(大母)같은 역할인데, 저를 넘어서는 선수가 나온다는 거잖아요. 김정아 선수가 며칠 전 국제대회에서는 95m까지 내려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사실 국제대회 나가면 한국 선수는 저 혼자일 때가 많아서 외롭기도 했거든요. 일본 선수 여러 명이 출전해서 서로 응원하고 코치도 해 주는 모습이 부러웠는데, 이젠 우리도 그렇게 되겠구나 싶어요.”
Q : 잠수 중에 블랙 아웃(기절)이 온 적도 있었다면서요.
A : “내려가는 중에는 거의 없고, 올라오다가 당하는 경우가 있어요. 당시 저는 초보였고, 대회가 2시간 연기돼 당(糖)도 떨어졌고, 해파리에게 쏘이는 등 악재가 겹쳤어요. 무엇보다 기록에 욕심을 낸 게 화근이었죠. 18m 남기고 블랙 아웃을 당했는데 물속에서 선수를 지켜보는 안전요원 덕에 목숨을 건졌죠. 그 후 더 경각심을 갖고 안전하게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제2의 삶을 살고 있어요.”
Q : 초보자에게 안전 팁을 주신다면?
A : “프리다이빙에서 제일 중요한 룰은 ‘Never Freedive Alone’, 절대 혼자 하지 말라는 겁니다. 좀 더 깊이 내려가려고 웨이트(납덩이)를 차면 위험도는 배가 됩니다. 가끔 낚싯줄에 걸리는 사고도 일어나죠. 본인의 한계를 넘어가는 ‘빅 점프’는 지양해야 합니다. 사람 몸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1시간 전후가 다르니까 ‘이 정도는 언제든 할 수 있어’라는 자만은 절대 금물입니다.”
Q : 국내와 해외에서 추천할 만한 다이빙 포인트는?
A : “전 9~10월쯤 제주도 서귀포 문섬 바다가 참 따뜻하고 예뻤던 기억이 납니다. 해외에는 바하마의 롱아일랜드에 딘스 블루홀이 있어요. 해변에서 10m만 가면 200m가 넘는 싱크홀이 나타나는데 물 속에서 모래가 떨어지는 게 마치 심령술사가 연기를 풀어놓은 것처럼 신비롭고 미스터리했어요.”
프리다이빙 철칙 ‘절대 혼자 하지 말라’
Q : 프리다이빙도 올림픽 종목이 될 수 있을까요?
A : “조짐이 보입니다. 프리다이빙 강국인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이미 국가대표팀을 만들어 코치와 함께 움직이고 있어요. 다만 메이저 국제기구 간에 룰 조율이 먼저 이뤄져야 하고, 선수 안전과 대회 중계를 위해 질 높은 카메라가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 제 폴란드 친구가 수중 로봇에 관심이 많아서 중계용 로봇을 만들었어요. 지금은 100m가 넘는 깊이의 다이빙 영상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김선영 씨는 이집트 다합에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프리다이빙을 배우기 위해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 묵는 숙소다. 그는 “어느 순간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기 시작했어요. 근데 우연히 여기서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이 생기고, 아침에 밥 차려서 같이 먹고 하면서 처음으로 식구가 생긴 느낌이 들었어요”라며 웃었다.
그는 다합에서 프리다이빙과 요가를 가르친다. 바닷가 일몰과 함께하는 명상 모임도 이끌고 있다. 그는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에고, 욕심, 내 못생긴 마음을 만났어요. 프리다이빙·요가·명상은 ‘몸을 통해 마음을 만난다’는 공통점이 있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복한 프리다이버가 되기 위한 팁’을 툭 던졌다.
“가장 먼저,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프리다이빙을 왜 배우고 싶었는지’를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숨을 참고 내 몸을 바라보고 바다와 만나는 그 시간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바다를 무슨 전쟁터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 욕심이 날 때는 ‘바다가 좋아서, 예쁜 물고기 보고 싶어서, 거북이 보면 따라가고 싶어서 프리다이빙을 배웠는데 어느덧 만족을 못하는, 불행해지는 다이빙을 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려야 해요.”
■ 고통받는 사람들, 용기 내서 행복해지도록 도와주고 싶어
「 지난 8일 저녁, 서울 마포구 양화진 앞 ‘수수책방’에서 김선영 씨의 북 토크가 열렸다. 『삶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을 펴낸 정신세계사가 독자 20명만을 초대한 자리였다.
기록적인 폭우를 뚫고 찾아온 열혈 독자들을 위해 김 작가는 기타를 잡고 ‘걱정말아요 그대’를 나즈막히 불러줬다. 책 소개와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질문 중에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게 많았다. 김 작가는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 뭘까? 그게 없어도 살 수 있을까? 그럼 샴푸·치약 같은 생필품이 없다면? 같은 질문을 던져보세요. 덜 쓰면 덜 필요하고, 그럼 덜 벌어도 됩니다”고 말했다.
지금 행복한 이유를 묻자 “그걸 알려면 다합에 오세요. 다합에서는 대화의 내용이 달라요. ‘오늘 다이빙 어땠어요? 고래 봤어요? 난 거북이 봤어요’ 같은 얘기만 해요. 서울에 오니 ‘주식이 올랐네, 비트코인이 떨어졌네’ 얘기만 들렸어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김 작가는 “삶이 뜻대로 안 돼 고통 받는 사람들이 용기 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고, 그걸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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