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담대한 계획'의 반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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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저녁 캄보디아 프놈펜 CICC 행사장.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 환영 만찬 자리에서 한국 취재진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 대표인 안광일 주아세안 대표부 대사 겸 주인도네시아 대사였다.
북한이 최선희 외무상 대신 파견한 안 대사가 한국의 박진 외교부 장관과 조우하는 모습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에 온통 관심이 쏠렸다.
안 대사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하고 나오다 한국 취재진과 마주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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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대사 왔대요?”
정말 재밌는 상황은 그다음에 나왔다. 안 대사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하고 나오다 한국 취재진과 마주친 자리였다. 박 장관과의 대화에 대해 묻자 그는 “만난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사진이 나왔다. 어떤 대화를 나눴나’라고 재차 질문하자 “아무 말도 안 했고 만날 생각도 없다”고 강하게 선을 그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말 이후에 들었던 가장 신박한 발언이었다. 안 대사는 박 장관과 찍힌 사진과 대화내용이 밝혀지면서 평양으로부터 한소리를 듣고 이 같은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북한 지도부는 “연일 남조선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는데, 접점 줄이라고 하지 않았슴메”라며 그를 추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전문가들은 현시점에서 북한의 최대 현안은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대미(對美) 줄다리기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의 여건 조성은 사실상 안중에 없고, 대남전략은 ‘강대강’ 일변도로 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정부의 외교·안보 부처는 북한이 더는 핵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준의 경제협력 및 안전보장안을 담는 방안인 ‘담대한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오는 15일 취임 후 첫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북·외교·안보 정책의 큰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담대한 계획을 언급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자신들의 핵 보유를 체제 안전이나 경제 지원과 맞바꿀 성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근 만난 한 북한전문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생각 자체가 없는데, 담대한 계획이라는 대북전략은 전제부터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현 정권은 문재인정부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북관계 개선을 외쳤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였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담대한 계획도 공허한 외침이 될지 모를 일이다. 더욱 현실성 있는 전제 속에 더 촘촘한 대북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 대사의 신박했던 유체이탈 화법이 나온 배경을 윤 정부는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야 할 것이다.
김선영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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