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루시가 되지 않는 법
자기 하는일에서 행복 찾아야
나나 크와메 아제-브레냐, <쇼핑몰에서>(‘프라이데이 블랙’에 수록, 민은영 옮김, 엘리)

나는 옷가게에서 일한다. 요즘은 매니저가 제품 유실 방지에 힘쓰고 있어서 4등분으로 접혀 산처럼 쌓인 청바지의 숫자를 세어야 한다. 어제는 1598장, 오늘은 1595장. 일자리는 구하기 힘들고, 희망이라도 붙잡듯 집에 있는 천사 같은 딸을 생각하며 청바지의 수를 센다. “청바지를 하나하나 만지며 세다 보면 빳빳한 푸른 데님이 내 손가락의 수분을 빨아들이는 느낌이 든다.” 나는 옷을 팔고 쇼핑몰에서 각종 상품을 파는 일은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직업이라고 여긴다. 이 일로 집세를 내고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또 어떤 친절한 손님들에게는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주었을 때 자신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간혹 느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곳에서는 행복이 모든 사람에게 돌아갈 만큼 충분하지 않으므로 움켜잡아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간절하게.
그런 하루가 있다. 자꾸만 루시의 이름을 동사와 명사로 유난히 바꾸어보고 싶은 날. 내가 일하는 옷가게의 최고 판매원은 나에게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 최고 판매원은 될 수 없으며 루시 같은 사람은 얼마 안 있으면 또 나오게 된다고. 대략 육 개월에 한 번씩. 이 단편소설을 읽고 나면 몇 가지 인상적이며 슬픈 편린들이 남는데 그중 하나가 루시가 그런 일을 하기 전까지 이웃했던 그녀의 이름을 몰랐다는 것, 그리고 주인공인 나의 이름은 한 번도 호명되지 않아 독자가 알 수 없지만 루시 같은 일을 결정한 직원들의 이름은 작가의 의지인 듯, 분명한 이름으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그날 쇼핑몰에서는 반값 행사가 진행돼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루시가 떨어졌을 때, 그녀의 몸 위로 노란 방수포가 덮일 때도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거나 전화기를 꺼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으면 나는 몇 시간이나마 쇼핑몰이 문을 닫을 거라고 여겼다. 촛불을 켠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도록. 그러나 아니었다. 반값 할인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내가 청바지의 총계를 내며 “루시가 되지 않는 법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조금 전에 붉은 셔츠를 찾아준 할머니 손님이 내 등을 톡톡 두드리며 정직하고 환한 미소를 띠며 고맙다고 말한다. 나는 그 미소와 집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가족을 떠올린다. 오늘은 루시 생각을 그만해도 좋을 듯하다.
하루 동안 눈에 띄는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 이 짧은 단편소설을 나는 몇 번이고 읽었다. 주인공인 내가, 작가가 말하는 이 문장을 잊지 않기 위해서. “중요한 점은 이런 보잘것없는 일로 밥벌이를 하더라도 누군가를 진짜로 도울 방법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결국 루시가 되고 만다.” 누군가를 진짜로 도울 방법. 궁핍해진 마음과 밖의 이웃을 돌아보며 이것에 대해 생각한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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