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손절'할 수 없는 불면 버튼, 타깃 광고

한겨레 입력 2022. 8. 12. 21:30 수정 2022. 8. 1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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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강나연의 자는 것도 일이야]강나연의 자는 것도 일이야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좀 못난 대화를 했다. 의심과 불신으로 점철된 대화였다. 고등학교 동창이 페이스북으로 말을 걸더라. ‘우와, 반가워!’ 이런 마음이었는데 채팅이 쌓여갈수록 음험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 근황, 은사들 성함을 알아서 줄줄 읊는 이 친구는 뭐랄까, 내가 누구인지는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할 수 없었다.

걔는 지치지도 않고 내 번호를 물었다. 채팅을 끝내려고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우리, 친구 아이가’ 식으로 자길 의심하면 섭섭하다는 둥 소릴 해대니 내 마음도 갈팡질팡하더라. 믿자니 찝찝하고, 안 믿자니 미안하고. 진실은 끝내 미스터리로 남았다. 물론 잠도 설쳤고. 걔는 정녕 가짜였을까. 내 개인정보를 긁어모은 피싱범이란 말인가.

여기까진 그래도 애교 수준이다. 프라이버시 침해로 생겨난 불신의 늪은 끝없다. 발버둥 쳐봤자 빅브러더 앞마당이라는 사실이 불안을 부른다. 오늘도 내 페이스북에는 불면인의 검색 알고리즘에 맞춰 수면보조제 광고가 뜬다. 알약과 가루, 액체까지 물성도 다양하다. 다른 웹사이트에서 보는 디스플레이 광고와는 다르다. 거기엔 허술한 구석이 꽤 있다. 내가 ‘불면증’을 검색하는 것까진 파악했더라도, 이를테면 이런 똥볼을 차는 식이다. 숙면에 좋다는 타트체리 원액이 광고로 뜨는데, 어이쿠, 내가 엊그제 산 거랑 똑같은 거지.

페이스북이 주력하는 프로그래매틱 광고는 그 치밀함의 차원이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다르다. 나를 정밀타격한다. 수면보조제는 빙산의 일각이고, 꿀잠을 부르는 마약베개며, 텐셀모달 잠옷이며, 아사면 60수로 된 이불이며. 하나같이 결제를 보류했을 뿐 살까 말까 하는 아이템이다. 내 장바구니나 즐겨찾기를 봤거나, 링크를 클릭하는 순간 퍼진 내 쿠키를 봤거나, 뭐 그런 거겠지. 그뿐인가. 페이스북 피드나 쇼트폼 플랫폼 ‘릴스’는 또 얼마나 취향저격 콘텐츠를 띄워주는지.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다)답게 손석구에게 빠졌다가 강태오로 환승한 흐름 같은 거. 사람을 홀린다. 클릭질이 먼저고, 현타는 그다음이다. 이것들 날 꿰뚫고 있구나, 소오름! 이래봤자 때는 늦은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간파했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불쑥불쑥 유혹의 미끼를 던지는 광고나 콘텐츠를 보며 나는 제법 진지하게 염려한다. 퓰리처상을 받은 영국 저널리스트 제임스 볼이 쓴 <21세기 권력>을 보면 내가 링크를 클릭하고 웹페이지가 열리는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내 데이터, 즉 쿠키는 데이터관리플랫폼(DMP)을 비롯한 수천개 기업으로 전송된다. 그들은 그걸 ‘행동 타기팅’(웹사이트에서 유저가 한 행동을 종합해 유저를 파악하는 기법)으로 분석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낸다. 그렇게 알아낸 나라는 사람이 광고주가 원하는 잠재적 소비자라고 판단했기에 그런 타깃 광고를 쏘는 거고.

불쾌하고 꺼림칙하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내 생각과 행동을 꿰고 있으니 말이다. 21세기형 파놉티콘이 따로 없다. 나를 보는 시선은 내가 그걸 볼 수 없을 때 극도의 불안을 유발한다. 여기에 직업적 딜레마가 더해진다. 무슨 말이냐. 나는 온라인미디어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타깃에게 기사를 확산시킨 뒤 광고수익을 창출하는 게 일이다. 우리 회사는 페이스북 기사로 얻은 광고수익이 매출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데, 바로 거기에 들어가는 광고가 나를 소름과 불안으로 몰아넣는 프로그래매틱 광고다.

결국 나는 유저들의 데이터베이스가 자본이 된 시대에 누군가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광고로 돈을 버는 셈이다. 이용자로서는 마뜩잖은 그 광고를, 노동자로서 확산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나는 머리가 지끈지끈, 마음이 시끌시끌하다. 아아, 얄궂구나, 직장인의 운명이여. 그렇게 오늘도 잠을 청하다 말고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빠진다. 인터넷 노동자와 이용자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프라이버시 문제를 해결하면서 수익을 내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물론 잠은 저 멀리 달아나버린다. 그럴 때 내 손을 잡는 친숙하고 끈끈한 불면의 밤.

이런 고민을 토로하니 지인인 아르(R)선생 가라사대 “어차피 개인정보는 머지않아 똥이 된다, 모두가 모두를 불신하는 시대가 도래해 커뮤니케이션 한번 하려면 나라는 사람이 진짜 내가 맞는지, 서류를 떼다 바치든 홍채인증을 하든 생쇼를 해야 하는 날이 올 거다.” 동시에 덧붙이길, “뭔 걱정이야. 그런 시대에는 또 거기에 맞는 제도가 생긴다고. 애플처럼 한번씩 제동 걸어주는 데도 있을 거고. 제발 잠이나 주무셔!” 과연 앞서서 걱정하는 것과 거리가 먼데다 머리만 대면 쌔근쌔근 잘 자는 그다운 말이다.

기왕에 업무 때문에라도 페이스북을 멀리하진 못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놈의 맞춤형 광고를 내 몸에 좋은 사골로 우려내봐야지. 나는 불면을 극복할 때까지 페이스북이 추천한 무궁무진한 수면 제품을 사보리라. 그러려면 또 어째야 하냐. 콘텐츠와 광고, 수익의 상관관계를 계속 고민하는 수밖에. 아닌 게 아니라 돈이 있어야 마약베개든 작약베개든 사지 않겠소. 이 무슨 지독한 패러독스인지 모르겠소만.

와중에 전해진 희소식.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가 개인정보 강제제공 방침을 철회했답니다. 글로벌 갑질에 페북을 탈퇴하려던 분들, 이제 다시 페북의 농간에 놀아나봅시다. 막 그렇게 질색팔색하실 건 없고요. 우리 솔직해지자고요. 페북질 하다가 안 하면 섭해요, 안 해요?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

나를 감시하는 빅브러더가 불안해 잠이 안 오는 분들은 아이폰 업데이트가 답이다. 애플은 iOS 14.5부터 모든 개인정보 제공에 이용자 동의를 거치도록 하는 ‘옵트-인’ 방식을 도입했다. 나 같은 갤럭시 사용자들은 어쩌냐고? 어차피 털린 개인정보, 맞춤형 콘텐츠로 덕질이나 하자. 삶의 기쁨을 찾자. 손석구, 강태오 못 잃어.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씨네플레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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