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감독'이 뛰어든 '사나이 유니버스'..꽤 성공적 '헌트'

한겨레 입력 2022. 8. 12. 21:30 수정 2022. 8. 12.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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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
헌트
올여름 극장가 대작 영화 4파전
한국형 누아르 계승한 '헌트' 등
동시대 작품 자기참조 성격 띠어
팬덤 바탕 세계관 구축 경향도
영화 <헌트>.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2022년 여름 대작 영화는 4파전이 예상되었다. <외계+인 1부>를 시작으로 <한산> <비상선언>이 일주일의 시차를 두고 개봉했고, 그 마지막 작품인 <헌트>가 이번주부터 관객을 만나고 있다. 각기 다른 흥행 성적표를 쥐게 되겠지만, 네편의 영화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흥미로운 공통점이 보인다. 한국 영화로서 자기참조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이 영화들은 한국 영화의 자양분 안에서 한국 영화를 언급하고, 이를 노골적으로 계승하거나 시리즈로 이어가고 있다. 이때 그 참조 대상이란, 예컨대 한국 감독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김기영의 <하녀>(1960)와 같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 아니다. 완전히 동시대적인 작품들이다.

‘이순신 유니버스’와 익숙한 캐릭터성

이 중에서 최동훈의 <외계+인>과 김한민의 <한산>은 감독이 전작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시킨 케이스다. 여기에는 두 감독이 흥행사로서 가지고 있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외계+인>은 <전우치>(2009)를 직접적으로 인용한다. “도사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현대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펼쳐냈던 판타지물이, 마찬가지로 “도사란 무엇인가”를 읊조리는 청년을 모티프로 시간을 넘나드는 에스에프(SF) 재난물로 둔갑한 작품이 바로 <외계+인>이다.

<한산>은 한국 영화 최고의 흥행 기록을 자랑하는 <명량>(2014)의 후속작이다. 김한민은 <명량> 성공 이후 다큐멘터리 <명량: 회오리 바다를 향하여>(2015)를 기획, 공동연출했다. 여기에서 감독은 <명량>에 출연한 몇몇의 배우들과 함께 이순신의 궤적을 따라 여행한다. 그리고 2022년 <한산>을 지나 2023년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를 그리는 <노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로서 김한민의 ‘이순신 유니버스’가 완결될까? 그건 또 두고 봐야 할 일이겠다.

한편, <비상선언>이 참조하는 것은 한국의 대표 배우들이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이라는 화려한 출연진으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항공 재난물이라는 한국에서는 다소 낯선 장르의 위험을 상쇄하는 완충지대로 각 배우들이 오랜 작품 활동 안에서 구축해온 익숙한 캐릭터성에 기댄다.

덕분에 송강호의 얼굴을 한 소시민적 영웅-가장, 이병헌의 얼굴을 한 혼란에 빠진 (어른의 몸을 한) 소년, 김남길의 얼굴을 한 냉철한 엘리트는 일종의 배우-장르로서 <비상선언>에서 반복된다. 임시완의 캐릭터만이 ‘똘똘한 청년’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비틀며 다른 방향으로 변주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 <헌트>.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그렇다면 <헌트>는 어떨까? 이정재·정우성의 ‘아티스트스튜디오’와 한재덕의 ‘사나이픽처스’가 공동제작한 <헌트>는 감독 이정재의 영화인 만큼이나 사나이픽처스 세계관이 녹아든 영화다.

<헌트>는 <신세계>(2012), <무뢰한>(2014), <아수라>(2016), <공작>(2018) 등 한국형 누아르를 꾸준히 만들어온 사나이픽처스와 그 ‘사나이 중심적인 세계관’을 공유한다. 거기에 사나이픽처스의 시작을 가능하게 했던 <범죄와의 전쟁>(2011)의 흥행공식을 가져오는데, 20세기 후반 사나이들의 시공간으로 돌아가 향수의 전략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때 이 작품들을 <헌트>로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건 한국형 누아르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이정재, 정우성 두 주연 배우를 비롯해 황정민, 이성민, 주지훈, 김남길, 정만식 등 특별출연하는 ‘사나이 배우들’이다. 사나이픽처스 팬덤이 이 세계관 안에서 <헌트>를 즐기는 건 자연스럽다.

영화의 배경은 1983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1980년 광주에서 발포 명령을 내렸던 독재자 ‘베드로’가 통치하는 시대. 안기부는 ‘정권의 개’로서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다. 망명을 신청한 북한 고위 관리(황정민)가 폭로한 정보를 바탕으로 안기부 해외팀 차장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는 조직 내에 침투한 간첩 ‘동림’을 색출하기 위한 작전을 개시한다. 라이벌인 두 사람이 서로를 동림으로 지목하고 최고의 수사력(혹은 폭력)을 동원하게 되면서 꽁꽁 숨겨놓은 비밀들이 밝혀진다. 이와 함께 박평호와 김정도 두 사람 모두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이런 위기를 촉발한 존재가 <신세계>의 정청이고 <아수라>의 박성배인 황정민이라니, 절묘한 카메오 캐스팅이다.

물론 <헌트>는 사나이픽처스라는 맥락이 없어도 보는 재미가 충분한 웰메이드 한국형 누아르다. 영화는 1980년대 한반도를 살아가는 남자들의 혼란과 불안을 초래한 주범으로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국민을 학살한 독재자와 그의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한국 정치의 무능 및 세계 정치의 불의를 지목한다. 그리고 김정도의 분노와 염오(厭惡)는 배우 정우성의 스크린 밖 행보와 어우러져 진보가 상상해온 ‘진짜 보수’의 얼굴을 획득했다.

결국 한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베드로’에게 충분한 정치적 책임을 묻지 못하였으므로 “대통령을 제거하라”는 영화의 홍보문구는 앞으로도 여러차례 한국의 대중문화 상상력 속으로 틈입해 들어올지 모르겠다. 현실 정치가 이뤄주지 못한 대중의 꿈은 스크린에서 몇차례고 악몽으로 되풀이되기 마련이므로. 그런 의미에서 <헌트>는 매우 대중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작품이고, 더불어 세계적인 배우의 성공적인 감독 데뷔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팬덤이 쌓아 올리는 세계관

한국 상업영화가 감독, 배우, 제작사 등 다양한 방면으로 자기참조적이 되는 이유는 그만큼 한국 영화가 쌓아온 성취와 자신감 덕분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2010년대 이후 영화가 점차 보편적인 매체의 자리에서 벗어나 팬덤이 먹여 살리는 시장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경향은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이 확장되면서 완성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팬덤을 유혹하는 ‘유니버스/세계관’의 구축은 점점 더 중요해질 텐데, 과연 어떤 세계관들이 열리게 될지 궁금하다.

다만 오로지 ‘세계관’만이 남은 나태한 제작 관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건 그 세계관에 포함되지 못하는 존재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면서 한국 영화 다양성을 죽이는 일이 될 테니까 말이다.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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