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산' 실제 배경은? 이순신의 얼이 서린 한산도 직접 가다 [통영 섬여행]

권오균 2022. 8. 1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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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는 임진왜란 때 병참기지화
난중일기 대부분을 제승당서 집필
수목과 바다 어우러진 풍경 빼어나
만지도와 연대도 아기자기한 섬마을
출렁다리 만들고 두 섬 이동 편리
미륵도 낙조 때 아름다운 일몰 맛집
유일하게 국립공원 해상탐방원 입지
한산도에서 앞 바다 쪽으로 조망한 풍경. 한산도에서는 바다가 잘 보이지만, 바깥에서는 한산도 방향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한산도는 바다를 지키는 천혜의 요새였다.

올여름 극장가에 대작이 몰려들었다. 1000만 관객을 노리는 4편의 영화 중 관객 동원력으로 1위를 차지한 영화는 ‘한산 : 용의 출현’이다. 최근 2주 연속 주말 관객 수 1위다. 2014년 전편인 '명량'은 1761만5686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우리나라 역사상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했다.

'한산'은 '명량'과 달리 바다에서 촬영한 장면이 단 1초도 없다.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에 설치한 세트장과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전투 신을 만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충무공 이순신의 얼이 서린 한산도로 발걸음이 향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K 여행기자의 숙명이랄까. 통영시로 섬 여행을 떠났다.

경남 통영시는 전남 신안군 다음으로 섬이 많은 지방자치단체다. 육지와 해양, 그리고 도서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매력이다. 국립공원 명품마을로 지정한 만지도와 출렁다리로 연결한 연대도, 한려해상국립공원 생태탐방원이 있는 노을 맛집 미륵도,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과 조선 수군의 얼이 서려 있는 한산도를 찾았다.

☞ 외세 침략 막은 군사기지 한산도, 풍경도 빼어나
한산도로 가는 요트.

한산도로 향하는 바다 위는 고요했다. 파고가 높지 않은 날 찾아서인지 살랑이는 물결은 보드라웠다. 이렇듯 한산해서 한산도인가 했는데, 한자 뜻을 풀어보니 한가할 한(閑)에 뫼 산(山)이다.

지금은 평화롭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바다는 달랐다. 조선을 침탈한 일본 수군은 남해와 서해를 돌아 한강으로 상륙하려고 했다. 명나라로 향하는 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를 막아선 전투가 한산도 해전이다. 일부 한국인은 '세계 4대 해전'이라고 추앙한다.

한산도 해전의 승리로 곧 무너질 듯 위태로웠던 조선은 죽다 살아났다. 한산도 해전을 이끈 이순신은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광화문에 있는 칼을 찬 이순신 동상도 그 뒤에 앉아있는 세종대왕보다 먼저 세워졌다. 소설 '칼의 노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영화 '명량'까지 모두 공전의 히트작이었다.

제승당.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의 모티브를 준 원작자는 바로 이순신이다. 전쟁 중에 담백한 문체로 자신의 상황을 일일이 기록으로 남겼다. 바로 난중일기다. 통영 한산도 제승당에서 주로 썼다. 무려 1491일분 중 1029일분을 제승당에서 작성했다. 제승당은 제어할 제(制), 이길 승(勝), 집 당(堂)으로 ‘승리를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1963년 사적 제113호로 지정했다.

제승당 옆 한산도 앞바다의 동향을 관찰하는 수로에는 학창시절 국어책에서 본 ‘한산도가’가 걸려있다.

수루에 걸린 한산도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 '한산도가', 이순신

충무사에는 이순신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원래 조그마한 사당이었는데, 헐고 1976년 본 사당을 지었다. 매년 봄, 가을로 통영 주민들이 제향을 올리고 있다.

한산정에서는 이순신이 부하 무사들과 함께 활쏘기를 연마했다. 활은 조선 수군의 가장 중요한 개인 휴대 무기였으며 이순신이 건강을 위해 체력을 단련하는 운동이기도 했다. 이순신은 평균 10순(1순 5발)을 쐈으며 20순, 30순을 쏘기도 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한산도 통제영을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 삼도 수군 통제영을 제승당에 설치한 이후로는 섬 전체가 병참기지가 됐다. 한산도 통제영은 오늘날로 치면 전시 해군 작전사령부였다. 그래서 아직도 대한민국 해군, 특히 해군사관학교 생도와 그 학교 출신들은 이순신을 장군으로 칭하지 않는다. 굳이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제독이라고 한다. 해군의 다짐에도 어김없이 첫 번째로 등장한다. “우리는 영예로운 충무공의 후예이다”라는 구호다.

한산도 통제영 가는 길.

역사적 의의 때문에 한산도를 찾았더라도, 거닐며 주위를 보면 전란의 한복판에 있던 장소라는 것이 무색하리만큼 절경이다. 한산도는 섬 전체가 200m 안팎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크고 작은 골짜기를 따라 마을이 분포한다. 최고봉은 섬의 남쪽에 있는 망산(望山:293.1m)이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체적으로 절벽이 발달했다. 이 아름다운 한산도를 거닐며 이순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산도가 한가로운 섬이 아니라, 섬에 큰 산이 있다는 데에서 한뫼(큰뫼)라고 부르다가 한산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한반도를 지키는 큰 산인 셈이다.

☞ 명품마을 만지도와 출렁다리로 연결한 연대도
만지도 풍경.

만지도와 연대도는 통영 연명항에서 배를 타고 15분만 이동하면 도착한다. 홍해랑호가 1시간 간격으로 출항한다. 달아항에서는 섬나들이호가 다른 섬들을 거쳐 30분 걸려 만지도에 도달한다. 만지도는 국립공원 명품마을 14호로 지정한 섬마을이다. 국립공원 명품마을은 현재까지 17곳으로, 아름다운 국립공원의 자연경관을 보존하면서도 농어촌 마을 공동체의 자생력을 키우려는 시도다. 만지도는 해안선 길이 2km에 불과한 작은섬으로 2021년 기준으로 24가구 35명이 거주한다. 통영시에서 남서쪽으로 15km, 산양읍 달아항에서 3.8km 떨어진 해상에 있다. 다른 섬보다 주민 정착이 늦어져 늦을 만(晩)자를 써서 만지도라 한다.

만지도와 연대도를 잇는 출렁다리.

2014년까지는 주로 만지도로만 사람들이 오갔지만 2015년 연대도와 만지도 두 섬을 있는 연도교가 생기면서 여행객을 연대도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또한, 출렁다리는 두 섬의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원래 연대도와 만지도는 짝궁으로 여겨졌다. 지명을 풀이할 때 연대도는 솔개, 저도는 닭, 만지도는 지네에 비유해 서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로 이루어져 있어 함께 공존하며 번성한다는 풍수적 해석이 있었다.

출렁다리.

만지도에서 출렁다리까지는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가는 길에 유심히 관찰해야 할 요소가 있다. 풍란이다. 풍란은 관상용 인기가 있어 무분별한 채취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했다. 2016년과 2017년 국립공원공단에서 복원을 위해 1500여 개체를 돌 틈과 수목에 이식하였다. 풍란은 향이 좋아 해무가 끼어 길을 찾기 힘들었을 때 풍란의 향기를 맡고 육지를 찾았다는 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만지도 풍경.

출렁다리는 길이 98m, 폭 2m로 현수교 형태다. 아주 긴 다리는 아니지만 바람이 거센 날에는 꽤 무섭다.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해 일명 ‘소원다리’라고도 불린다. 방문한 날에는 바람이 잔잔했다. 푸른 소나무가 우거진 길을 산책하듯 걷고, 투명한 바다와 몽돌이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상쾌해진다.

출렁다리를 넘어가면 연대도다. 연대도는 고려 말 조선 초 무렵 왜구 등 외적의 침입을 알렸던 봉화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섬 중앙 우뚝 솟은 곳에 연대를 설치했던 섬이라 연기 연(烟)자를 쓴 연대도라 칭하게 됐으며, 연대봉은 해발 220m이다. 연대도 숲길에 군락을 이룬 검은 수피의 소나무는 곰솔로 해안가에 많이 자생하고 있어 해송이라고도 불린다.

☞ 노을 맛집 미륵도서 도시락 먹으며 풍경 감상
미륵도에서 바라본 노을.
한려수도 생태탐방원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먹은 동백도시락.

미륵도는 섬이지만, 육지와 다리를 연결하고 있어 방문하기 편리하다. 통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어촌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낙조를 여유 있게 감상하고 싶어 국립공원 생태탐방원 중에 유일하게 바다에 있는 한려해상 생태탐방원에 여장을 풀었다. 한려해상 생태탐방원에는 2인실 캐빈과 4인실 숙소가 있다. 전 객실에 바다 방향이다. 매월 1일 다음 달 숙소를 예약할 수 있는데, 주말은 인기가 많아 ‘광클릭’을 해야만 겨우 방을 잡을 수 있다. 캐빈 같은 경우 자연 친화적이라 더욱 인기라고 한다. 간혹 지네가 출몰해 겁 많은 사람에게는 무리일 수 있다.

한려해상 생태탐방원 전경.
안개 낀 아침 풍경.

한려해상 생태탐방원에 숙소를 잡은 이유는 이곳이 노을 맛집이기 때문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는데, 탐방원에서 동백도시락을 신청해서 먹고 보는 일을 동시에 해결했다. 급할 것도 없었다. 도시락을 꼭꼭 씹어 먹으며 풍경을 관조했다. 해가 지면서 바다까지 서서히 붉은 빛이 번지면서 일렁였다. 감동이 2배였다. 풍경에 취해 잠들고 일어나 맞은 아침도 신비로웠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안개 때문에 몽환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권오균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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