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사람 있다"는 차별의 말

한겨레 입력 2022. 8. 12. 19:05 수정 2022. 8. 12. 19:5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내가 주관하는 행사에 와서 독자들도 만나고 강연도 하기로 했던 미국 작가가 갑자기 참석을 취소했다.

취소의 사유는 작가에게 한국에 와서 주고받을 대담의 질문지를 미리 보냈는데, 질문들이 '인종주의적'이라는 것이었다.

유명한 문학상을 거푸 받은, 미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작가다.

인종차별을 받던 천재 음악가를 그린 영화, <그린북> 을 보고 나오던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무도 작가와 남자친구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

내가 주관하는 행사에 와서 독자들도 만나고 강연도 하기로 했던 미국 작가가 갑자기 참석을 취소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예약도 미리 받아두었던 터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취소의 사유는 작가에게 한국에 와서 주고받을 대담의 질문지를 미리 보냈는데, 질문들이 ‘인종주의적’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출간된 작가의 책을 다 읽은 대담자가 정성껏 준비한 질문이었는데 이런 반응이 와서 크게 놀랐다. 다시 질문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유명한 문학상을 거푸 받은, 미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작가다. 그는 흑인이지만, 흑인 문제에만 천착하는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받는 보편적인 차별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흑인이기 때문에 더 깊이 숨겨진 진실들을 밝히기도 한다. 질문을 고르면서 흑인으로서의 흑인들의 가난이나 상황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려 했던 것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번역하는 과정에서 서툴게 ‘인종적’인 냄새가 배어 있는 단어를 쓴 것은 아니었을까? 명백한 잘못이 무엇인지 찾기가 쉽지 않았다. 현대문학을 전공한 영문학자들에게도 조언을 구해보았지만 뾰족한 답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작가가 변덕을 부릴 핑계를 찾거나, 다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 아니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이건 답이 아니다. 고민을 계속했다. 알아야 다음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때 만난 만화가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이다. 어린이집 선생님인 작가가 흑인 남자친구와 만나면서 겪은 일들을 그렸다. 남자친구와 함께 길을 나서면 마주치는 사람들의 반응을 이렇게 분류했다. 빤히 보는 사람들/소리 지르는 사람들/길 가다가 멈춰 서는 사람들/“까만 사람 있어”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저기 좀 봐봐”라고 가리키는 사람들/“신기한 게 있어”라며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찡그리는 사람들/“저 여자는 이제 못 돌아오겠네”라고 낄낄대는 사람들.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이렇게 다양하고 세심하게 분류할 수 있는 까닭은 이런 반응들을 너무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남자친구와 카페에서 차를 마실 때,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 나오면 멈칫한다. 남자친구가 카페에 가면 갑자기 재즈나 팝송, 힙합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노래가 끝나고 한국 음악이 나오면 우연히 나온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남자친구를 의식해서 틀어준 것이리라. 이런 경우는, 카페 주인이 마음을 써준 것일까? 아니면 인종주의적인 편견을 드러낸 것일까? 살아가면서 한 곡의 노래에도 민감한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헤아리는 것이 좋을까? 부인의 벗은 사진을 보내면서 잠자리를 한번 해보라는 사람처럼 노골적인 편견과 선입관, 그리고 무례함을 드러낸 이야기를 들으면 처참한 심정이 된다. 하지만 이 만화의 백미는 충격적인 증언보다는 남자친구와 지내면서 건진, 생활 속에 숨어 있는 편견의 조각들에 있다.

인종차별을 받던 천재 음악가를 그린 영화, <그린북>을 보고 나오던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무도 작가와 남자친구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곰곰이 따져보면 많은 편견들은 경험 부족에서 온다. 망쳐버린 행사를 곱씹으면서 이 책을 통해 경험의 폭을 넓힌다.

만화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Copyright©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