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 사냥은 끝나지 않았다[곽명동의 씨네톡]

2022. 8. 1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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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망명을 신청한 북한 고위 관리를 통해 핵무기 정보를 입수하려는 안기부 해외팀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김정도(정우성)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 ‘동림’ 색출 작전을 시작한다. 동림으로 의심되는 스파이에게 일급 기밀사항들이 유출되어 위기를 맞게 되자 박평호와 김정도는 날 선 대립과 경쟁을 벌이며 상대를 용의선상에 올려두고 조사에 박차를 가한다. 찾아내지 못하면 스파이로 지목이 될 위기의 상황, 서로를 향해 맹렬한 추적을 펼치던 박평호와 김정도‘는 감춰진 실체에 다가서게 되고, 마침내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게 된다.

이정재 감독의 ‘헌트’는 한국 첩보 액션 스릴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다. 촘촘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각본은 수준급이고, 이정재와 정우성 두 배우의 심리전 역시 빈 틈 없이 팽팽하다. ‘누가 동림인가’를 놓고 벌이는 국내팀과 해외팀의 일촉즉발 대결은 다이너마이트를 매설해 놓은 듯 언제 터질지 몰라 관객의 심장을 조여온다. 흡사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기차가 서로 피하지 않는 충돌 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황을 2시간 동안 힘차게 끌고가는 느낌이다. 극 초반부 워싱턴 총격신부터 마지막 방콕 폭파신에 이르기까지 20분 마다 설계된 다양한 액션신도 긴장의 끈을 조이며 몰입도를 높인다.

무엇보다 ‘헌트’는 한국 현대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한 뛰어난 팩션으로 오래도록 회자될 것이다. 이철희 장영자 어음사기, 이웅평 귀순, 아웅산 폭탄 테러 등 1980년대 초반 벌어진 사건을 그럴듯하게 연결시켜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담아내 역사의 한 복판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픔에서 비롯된 죄책감과 책임감을 영화의 동력으로 삼은 점도 돋보인다. 한국, 북한, 일본, 미국이 얽혀있는 국제 관계의 배경도 적절하게 담아냄으로써 헌트(사냥)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입체적으로 조망했다.

시드니 폴락 감독은 영화를 지탱하는 것을 골격이라고 했다. 골격이 없다면 작품은 무너진다. 그는 “골격은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헌트’의 골격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 한국사회 갈등의 진원지는 어디인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외양으로 드러나는 것은 스피디하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동림을 찾아내는 과정의 서스펜스, 격렬하고 파워풀한 액션신이지만, 이 영화의 골격은 왜 이 사회가 대립하고 있는가에 대한 묵직한 성찰이다. 박평호와 김정도는 각자의 신념에 투철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 신념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잘못된 신념으로 일어나는 파국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내가 옳다면 그 외의 것은 모두 부수적이라는 그릇된 신념으로 무장한 개인 혹은 집단이 역사를 비극의 낭떠러지로 밀어넣는다. 우리는 왜곡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채 누군가를 사냥하고 다닌다. 역으로 그 자신 또한 누군가의 표적이 된다. 상대에 대한 적대감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를수록,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분열된다. 그렇게 갈라진 역사의 굴곡에서 마주하는 것은 슬픔의 감정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총성이 마음 아프게 귓가를 울리는 이유다. 2022년, 지금도 한국 어딘가에서 잘못된 신념을 믿는 자들의 사냥이 벌어지고 있다. 과연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있는가. 이정재 감독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다.

[사진 = 메가박스]-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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