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으로부터 해방 꿈꾸던 인류.. '가짜 노동' 늪에 갇히다

정진수 입력 2022. 8. 1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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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재택근무를 경험한 노동자들이 '일상회복' 이후 회사로 돌아온 이후 떨치지 못한 질문이 하나 있다.

지금도 많은 노동자가 시간만 잡아먹는 의미 없는 회의와 산더미 같은 참조 이메일로 인해 노동의 늪에서 허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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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노동/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옌센/이수영 옮김/자음과모음/1만6800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재택근무를 경험한 노동자들이 ‘일상회복’ 이후 회사로 돌아온 이후 떨치지 못한 질문이 하나 있다. “재택근무를 할 때 2∼3시간이면 끝내던 일을, 회사에서 몇배의 시간을 더 들이고도 왜 끝내지 못할까”란 의문이다. 이런 궁금증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던 모양이다.

덴마크 인류학자, 철학자인 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옌센은 그 원인을 ‘가짜 노동(Pseudo work)’에서 찾았다.
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옌센/이수영 옮김/자음과모음/1만6800원
저자들이 지적하는 가짜 노동에는 성과와 상관없는 일, 보여주기 식의 일,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위한 일, 단지 바빠 보이기 위한 무의미한 일이 모두 포함된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자 인간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었다. 1930년대,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강연하며 “100년 이내에 평균 노동시간이 주 15시간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했고,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미래 도시 모형을 선보이며 오전 10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주 3일 근무라는 ‘파라다이스’를 그렸다. 미국 상원도 1960년대 2000년까지 주 14시간 노동이 실현 가능하리란 예측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꿈꾸던 미래는 오지 않았다. 1870년대 평균 70시간 언저리였던 평균 노동시간이 2000년에는 40시간가량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여기서 더 진행되지 않았다. 계산기가 암산을 대체하고, 인터넷 발달로 도서관, 은행, 증권사를 오가는 시간을 절약했음에도, 도대체 왜 그럴까.

지금도 많은 노동자가 시간만 잡아먹는 의미 없는 회의와 산더미 같은 참조 이메일로 인해 노동의 늪에서 허덕인다. ‘생산 공정 합리화와 관리 감독’이라는 미명 아래 더 많은 관리자가 기용되면서 ‘가짜 노동’은 늘어나고 있다. 감시가 주 업무인 관리자 수도 늘고, 이를 위해 감시 카메라도 활용된다. 관리자가 효율적인 감시를 하면 노동자 수를 줄일 거라 믿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들 관리자에게 직원의 수는 ‘지위의 상징’이다. 노동자들도 덩달아 의미 없는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게 된다. 업무시간에 개인 용도의 ‘쇼핑’을 하는 경우도 있고, 포르노를 보다 해고되기도 한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따분해 죽을 정도로 적게 일한다”며 고용주를 상대로 한 소송이 종종 발생한다. 극단적 지루함으로 인한 스트레스인 ‘보어아웃(Boreout) 증후군’이다.

저자는 우리가 무의미하게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가짜 노동에서 벗어난다면 15시간 노동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듣는 회의, 프로젝터가 꺼지자마자 잊힐 프레젠테이션, 어차피 일이 잘못되는 걸 막지 못하는 감시나 관리 따위만 포기해도 인간의 휴식시간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휴식을 통해 “가짜 노동이 삶을 장악하기 이전에 하던 일을 하라고 격려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 이른바 ‘자발적’ 일을 하고 호기심과 욕망에서 나온 활동을 추구하자. 안락과 수동성에 대한 필요에 쫓기지 말자”고 말한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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