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를 제거하고 싶었던 일제 밀정 동원 암살 공작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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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9월18일, 일제는 만주 류탸오후에서 만철선로를 폭파하는 자작극을 통해 만주사태를 촉발한 데 이어 이듬해 1월28일 상하이마저 침략했다.
중국인들이 일제 침략에 거세게 반발하는 가운데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던 김구 역시 이봉창, 윤봉길 등을 앞세워 일제에 대한 의열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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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암살자들/윤대원/태학사/1만9500원
일제는 이에 중국으로 밀정이나 무정부주의자를 동원해 의열 투쟁을 주도하는 김구를 제거하기 위한 작업을 시도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1931년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까지 김구의 의열투쟁과 함께 일제가 김구를 제거하기 위해 시도한 세 차례 암살 사건을 분석한다.
일제의 김구 암살 첫 시도는 1935년 1월 조선총독부 상하이 파견원 나카노 가츠지가 밀정 오대근에게 김구 암살을 지시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중국인 공작원을 대동한 오대근은 김구를 찾아 나섰다가 행방불명되고 만다.
한 달 뒤인 2월 나카노의 후임으로 부임한 히토스키 도헤이는 이중첩자 위혜림을 통해 무정부주의자 정화암에게 김구를 암살하도록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일제는 1938년 독립운동가 출신 이운환과 박창세 등을 사주해 김구를 암살하도록 사주한다. 결국 김구는 5월 7일 창사의 조선혁명당 당사인 남목청에 갔다가 이운환에게 총격을 입었지만 다행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특히 김구에 대한 2차 암살 시도에 연루된 밀정 위혜림의 행보는 사뭇 충격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은행 은행원 시절 일제 밀정이 된 위혜림은 1935년 2월 제2차 김구 암살에 ‘임창영’이라는 이름으로 관여했고, 해방 뒤에는 이승만의 도쿄주재 사설 기관 경무대에서 일했으며, 나중에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와 함께 일본에서 재일교포의 북송 공작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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