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첫 특별사면, 구부러진 '공정'과 '법치'

유정인 기자 2022. 8. 1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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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8·15 광복절을 앞둔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1693명에 대한 특별사면·복권을 단행한다고 밝혔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와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정치인은 모두 제외했다. 지지율 위기 속에 정치인 사면에 따른 논란을 차단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사법적 단죄에서 조기 해방되면서 윤 대통령이 내건 공정·상식·법치는 훼손이 불가피하게 됐다.

정부는 광복절인 오는 15일자로 1693명에 대한 특별사면·복권을 단행한다고 이날 밝혔다. 대상자 명단은 윤 대통령 주재로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됐다. 특별사면은 헌법 제79조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한으로 재판을 거쳐 형을 선고받은 특정인의 형 집행을 면제하거나 선고 효력을 없애주는 행위다.

이번 특별사면은 윤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사면권 행사라는 점에서 주목받아 왔다. 그간 대통령의 특별사면 권한을 둘러싸고 공정성 논란이 이어져 온 데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이 공정·상식·법치를 정치적 화두로 강조한 만큼 그 기준을 따져볼 시험대로 여겨졌다.

윤 대통령의 선택은 ‘경제인 사면, 정치인 배제’로 명확했다. 윤 대통령은 임시 국무회의에서 “사면의 대상과 범위는 어려운 경제를 극복하기 위해 각계의 의견을 넓게 수렴해서 신중하게 결정했다”면서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 기자들과의 문답에서도 “이번 사면은 무엇보다 민생과 경제회복에 중점을 뒀다”고 했다.

이에 따라 재벌 총수들이 “경제 활성화를 통한 경제위기 극복”을 이유로 줄줄이 사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복역하다 지난 해 가석방된 이재용 부회장이 복권돼 취업 제한 족쇄를 벗었다. 역시 국정농단 사건과 업무상 배임으로 집행유예 기간 중이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특별사면 및 복권됐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등도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이 부회장 복권으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국정농단 사건 연루자들이 또 다시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사법부 결정의 예외가 됐다. 촛불 정부를 내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를 사면·복권하고,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이던 윤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복권 조치하며 경영일선 복귀의 길을 열어줬다. 각각 “국민 통합”과 “경제 회복”을 이유로 들었지만 공정과 법치의 가치에 부합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이 대거 빠지게 된 데는 최근의 대통령 지지율 위기가 영향을 미쳤다. 정치인 사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새로운 불씨를 만들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씨와 김 전 지사 등 여야 정치인 중 일부만 포함할 경우 정치권에서 논란이 불거지며 혼란상이 이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에 정치인 사면 배제에 대한 질문에 “전세계적으로 경제 불안과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이 민생이고 민생은 경제가 활발히 돌아갈 때 숨통이 트이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방점을 둔 것”이라고 간접적으로 답했다.

당초 대통령실 내부에선 대통합을 명분으로 여·야 정치권 인물들을 사면에 대거 포함하는 안이 거론돼 왔다. 윤 대통령도 지난 6월 9일 출근길 문답에서 “이십 몇 년을 수감생활하게 하는 건 안 맞지 않나. 과거의 전례를 비춰서라도”라며 이명박씨 사면을 시사했다. 6·1 지방선거 여권 대승과 맞물려 윤 대통령 지지율이 50%를 넘던 시점으로, 일부 부정적 여론을 감안하고라도 이씨를 사면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국정 지지율 데드크로스(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넘는 현상) 이후엔 이씨 사면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출근길에서 기자들이 이씨 사면에 부정적 여론도 적지 않다고 하자 “모든 국정이라고 하는 것은 목표와 헌법 가치 그런 것에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정서가 다 함께 고려돼야 하지 않겠냐”라고 했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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