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 어린 현대사 낯설게 재해석.."하나의 시선을 거부한다"

이한나 입력 2022. 8. 1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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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리히터 개인전 '나의 미치광이웃'
'반골' 獨 현대미술 대표 작가
신문·잡지의 사회적 이슈 소재
열감지 카메라처럼 환각적 표현
예리하고 위트 있는 작품 인기
9월 28일까지 스페이스K 서울
다니엘 리히터 `눈물과 침`(2021). [사진 제공 = 스페이스K서울]
단순하면서도 조화로운 색감이 화려한 나비 같다. 외계 생명체나 로봇 같은 존재가 서로 기대며 나아가는 것도 같다. 서양화에서는 흔치 않은 넓은 여백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걸까.

구상인지 추상인지도 모호한 이 대형 그림은 독일 화가 다니엘 리히터(60)의 신작 '눈물과 침'(2021)이다. 1916년 제작된 엽서의 흑백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부상당한 두 소년병이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으며 걷는 장면을 나이프, 오일스틱 등으로 발라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동시대 독일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그가 최근 20여 년간 대표 작품 25점을 모아 아시아 첫 개인전 '나의 미치광이웃(My Lunatic Neighbar)'을 마곡동 스페이스K서울에서 펼치고 있다. 전시 제목이 이상해 물어보니 작가가 영어 철자 'o'를 'a'로 바꿔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그럴싸하게 만든 것이다. 제목 작명부터 예술에 대한 자유로운 태도가 드러난다. 작가는 하나의 시선으로 어떤 장면이 규정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예술을 통해 어떤 틀을 넘어서길 바란다. 작가는 "단순히 다른 이들이 하지 말라고 하거나 규칙을 따르라고 해서 따를 필요는 없다"며 "그런 게 예술가의 방식"이라고 밝혔다.

그는 20대 때 사회운동과 음악에 빠져 펑크록 등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앨범 재킷이나 포스터를 제작하며 자유롭게 살았다. 29세 때 독일이 통일되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함부르크예술대학에 들어갔다. 1990년대 추상회화를 자유롭게 실험하던 그는 2000년 이후 사회적 이슈를 열감지 카메라 화면처럼 환각적이지만 거칠게 표현해 주목받았다. 신문이나 잡지, 영화, 광고, 책 등 우리 주변 이미지를 예리하지만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재해석했다.

대표작 '투아누스'(2000)는 커다란 나무 아래 사람들이 엉킨 모습이 축제 같다. 실은 마약중독자들이 검거되는 장면을 19세기 프랑스 회화 기법을 참조해 표현했다. 독일 통일 10주년에 맞춰 발표된 '피녹스'(2000)는 강렬한 색감으로 베를린장벽을 넘는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동시에 벌어진 미국대사관 폭탄 테러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처럼 견고한 사회구조가 균열되는 지점을 포착해 전쟁과 테러 등 갈등의 인간사가 반복된다는 메시지를 독특한 제목(불사조를 뜻하는 단어 철자를 바꿔 Phienox로 했다)과 함께 전달한다.

작가는 "전쟁과 축제, 테러와 놀이가 멀리서 보면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비극적 사건을 총천연색으로 표현해 색다른 해석을 열어준다.

이장욱 스페이스K서울 수석큐레이터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그것이 바로 현대적 역사화를 그리는 다니엘 리히터식 화법"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그러나 어느 경지에 도달하고도 반복하는 작업 방식이 지루하다며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2011년 낭만주의 화풍을 현대적으로 비틀어 표현한 작품들은 마치 만화의 한 장면 같다. 낭만주의 화면 구성을 차용하되 무슬림과 대면하는 카우보이 말보로맨이나 히잡 여인 앞에 당황한 배트맨이 등장한다. 2015년부터는 추상성을 더욱 강화한 '눈물과 침'풍의 회화에 전념하고 있다.

작가는 "예술은 흥미로울 뿐 아니라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논리·감정·클리셰 같은 것들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며 "예술의 주된 역할은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9월 28일까지.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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