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21세기 그로테스크 회화 두 거장이 만난다

김슬기 입력 2022. 8. 12. 16:57 수정 2022. 8. 1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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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베이컨, 아드리안 게니
5800억 규모 대표작 대거 상륙
9월 3~5일 서울 분더샵 청담
프랜시스 베이컨(왼), 아드리안 게니.
화폭을 마주하자마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주는 그림이 있다. 20세기엔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 21세기에는 아드리안 게니(45)의 그림이 대표적이다. 쌍둥이처럼 닮은 데다, 미술품 경매시장 기록을 매번 깨트려온 두 거장의 미술관 수준의 걸작이 하나의 전시를 통해 마주한다. 인간을 고깃덩이처럼 그리는 그로테스크 회화 거장의 2인전 'Flesh and Soul: Bacon/Ghenie'가 프리즈 위크인 9월 3~5일 분더샵 청담에서 열린다.

한국 첫 전시에는 두 거장의 작품 16점이 걸린다. 가치로 환산하면 총 4억4000만달러(약 5800억원). 가히 20세기와 21세기의 가장 비싼 작가의 대표작이 대거 상륙한다.

베이컨과 게니는 전쟁과 독재라는 폭력이 낳은 예술가다. 관객의 시선을 어두운 심연으로 이끌고 가면서도 동시에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이들의 작품은 너무 강력한 나머지 카메라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해버린다.

◆ 베이컨이 천착했던 '교황'
"위대한 작품은 관객의 신경계에 바로 충격을 주어야지 뇌를 통해서 길게 불평을 하면서 이야기를 전해선 안 된다."

데이비드 실베스터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베이컨의 철학은 유명하다. 그는 고깃덩이가 된 육체라는 강렬하고 직관적인 이미지로 관람객의 시각을 강타하는 작가다. 질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베이컨의 회화를 두고 "그림에서 보이는 긴장감이 시각에 충격을 주어 눈으로 만지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베이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수천만 명의 죽음, 핵폭탄 투하, 홀로코스트 등으로 세계가 뿌리째 흔들리는 가운데 자신의 예술적 돌파구를 마련했다. 삶의 훈장과 같은 폭력, 갈등, 그리고 격동의 시간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베이컨은 이렇게 설명한다. "내 작품은 폭력적이지 않다. 폭력적인 것은 삶이다."

베이컨의 작품은 전 세계 대표 미술관에 소장돼 있으며 수준 높은 미술 컬렉터들에게는 일생의 수집 대상이다. 삼면화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은 2013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1억4240만달러(약 1858억원)에 팔리며 당시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운 바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 `초상화를 위한 습작 II`. [사진 제공 = 크리스티]
베이컨은 삶과 죽음, 신성함과 불경함,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끊임없는 이중성을 화폭 위에 펼쳐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베이컨의 가장 유명한 연작 중 하나인 교황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교황 초상화는 베이컨 영감의 원천이자 그의 경력 20년 동안 반복적으로 다루어진 주제였다. 이번 전시에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1650)을 음울하지만 매력적으로 재해석한 '초상화를 위한 습작 II'(1953)와 '교황을 위한 습작 I'(1961)이 소개된다.
◆ '초현대미술 제왕' 아드리안 게니
게니는 1974년생 이후 작가 중 가장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 '초현대미술의 제왕'이다. 2016년 '니켈로데온(Nickelodeon)'이 710만파운드(약 112억원)에 크리스티에서 낙찰되면서 30대의 나이에 100억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게니는 24년 동안 군림했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독재 치하의 루마니아에서 태어났다. 정치적 격변은 젊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이들의 슬픔과 좌절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는 앞 세대의 베이컨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트라우마를 화폭에 담지만 집단의 고통, 선과 악의 세력에 주목한다. 게니는 전통적인 기법을 사용하기보다는 물감을 붓거나, 뿌리거나, 팔레트 나이프로 긁어내는 방식을 통해 거칠고 들쭉날쭉한 질감의 캔버스를 구성해 마치 영화같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분위기를 표현한다.

게니의 특징 중 하나는 역사 속 인물들과 마주하는 것이다. 작품 주제로 이오시프 스탈린, 빈센트 반 고흐, 차우셰스쿠, 나치 내과의사 요제프 멩겔레 등을 반복적으로 그렸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부스 전체를 찰스 다윈을 주제로 휘감기도 했다. 역사적 인물은 관객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입구가 된다.

동시에 게니는 반 고흐, 피카소, 베이컨 등 전 세대 작가로부터 이어진 전통을 이어받고 재해석한다. "나는 초상화의 해체를 추구한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를 정말로 급진적으로 해낸 사람은 피카소와 베이컨이다."

아드리안 게니 `눈꺼풀이 없는 눈`. [사진 제공 = 크리스티]
이번에 걸리는 반 고흐의 자화상을 재해석한 '눈꺼풀이 없는 눈(Lidless Eye·2015)'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폭력과 억압, 문화적 폭정을 상징한다. 반 고흐는 나치 치하에서 '퇴폐적인 예술'로 지목되어 압수의 대상이었다.

'컬렉터 3(The Collector 3·2008)'는 극적인 긴장감으로 한 편의 심리극을 보는 듯한 걸작이다. 주인공은 독일의 군인이자 정치가인 헤르만 괴링. 악명 높은 나치 군대 지도자로, 본인의 직위를 앞세워 2000점 이상의 예술품을 약탈한 인물이다.

한 세대라는 간극이 있지만, 두 작가는 역동적 화법뿐 아니라 인간의 조건과 가장 어두운 측면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걸작들을 병치함으로써 두 작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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