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새의 눈' 아닌 '벌레의 눈'이 난제 푸는 열쇠
■ 매경·예스24 선정 '8월의 책'
팬데믹 시기, 수염의 유행은 반세기 전 아프리카에서 연구한 인류학자 빅터 터너의 '리미널리티(Liminality)' 이론을 증명해준다. 문지방을 넘는 전이 시점을 넘어서면 평소의 상징적 질서가 전복되고 정상이 아닌 상태가 나타난다는 이론이다. 전문직 남자들에게 수염은 정상이 아니므로 그들이 봉쇄령을 비정상으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풀스 골드' '사일로 이펙트'를 쓴 질리언 테트 파이낸셜타임스 편집국장의 신작이 나왔다. 1992년 저자는 소련 변방인 타지키스탄에서 1년째 틀어박혀 있었다. 산악지대에서 결혼 풍습이란 '낯선 것'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덕에 저자는 '인류학 시야'를 통해 2008년 금융위기와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 팬데믹, 디지털 경제까지 예견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때 인류학 시야가 빛을 발했다. 서구에선 공산주의 혁명 이후 타지키스탄 같은 이슬람 세력이 가장 먼저 저항할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마지막이었다. 두샨베의 파벌을 만나보면 분쟁의 원인은 이념이 아니었다. 양쪽은 모두 이슬람이었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획이 핵심이었다. 종교가 아닌 지역 간 갈등. 현지 학습 덕분에 그는 세상을 이해하는 통찰력이 통계와 빅데이터에서만 오지 않음을 깨달았다. '새의 눈'으로 조망하는 대신 '벌레의 눈'으로 아래에서 위를 보는 관점도 중요함을 배웠다.
기자 시절 저자가 외계어 같은 금융용어만 사용하며 버블에 대해서는 모두 입을 다문 상황에서 터진 금융위기를 타개해나간 일을 다루는 장은 압권이다. 2005년부터 자본시장팀장을 맡은 그는 부채조각을 모아놓은 상품인 CDO와 CDS가 걷잡을 수 없이 쌓여가는 상황을 경고하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원인은 '아비투스'의 문제였다. 금융인들은 '블룸버그 마을' 밖을 보지 못했다. 반면 그는 쉼 없이 외부인을 만나 모순의 실마리를 찾았다. 금융 사슬의 반대편에서 인간의 얼굴을 통해 현상을 이해하는 건 전형적인 인류학 시야다. 그의 비판적 기사에 런던 금융인들은 격하게 반발했고, 2007년 다보스포럼에선 기사를 흔들며 가짜뉴스라고 말하는 거물까지 나타났다. 심지어 앨런 그린스펀은 그를 만날 때마다 뜬금없이 좋은 인류학책이 없는지 묻곤 했다. 사실 그는 '문화'가 어떻게 경제 모형을 망쳤는지 알고 싶었던 것뿐이다. 버블 붕괴는 예측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인류학은 아마존 밀림만큼 아마존 창고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인류학 시야를 갖기 위해서는 이방인과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는 사고방식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 세상의 침묵을 경청하는 것. 통찰은 거기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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