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강천만'으로 돌아온 '상구당구' 강상구

김동찬 기자 2022. 8. 1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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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해설가 활약이 '드림투어' 우승의 디딤돌
프로당구 선수 강상구가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방송센터에 마련된 PBA 팀리그 경기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김동찬 기자] '상구당구'가 '강천만'으로 돌아왔다. 이번 2022-23시즌 프롬 PBA 드림투어 개막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강상구(46) 선수 이야기다. 상구당구는 레슨동영상 유튜버로 활약할 때 불리던 강상구의 별명이자 애칭이다. 상구당구 동영상들은 수백만 가까이 조회수를 기록하며 일약 그를 당구계 유명인으로 만들었다. 강상구는 2019년 PBA 출범과 동시에 프로무대 1부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2020-21 시즌 강등의 아픔을 겪으며 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2부에서 활동한 그는 이번 드림투어 개막전 우승을 거머쥐면서 우승상금 1000만원을 획득했다. 팬들은 그의 우승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강천만'이란 별명을 붙여 줬다. 1부투어 승격을 목전에 둔 강상구는 이제 제2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3부리그로 강등? 그래도 내가 상구당구인데!

1부에서 활약하다 2부로 강등된 강상구는 지난 시즌 드림투어 1~5차전까지 예선 탈락하며 3부리그 격인 챌린지투어로 밀릴 뻔했다. 그러다 마지막 6차전에서 16강에 진출하며 드림투어에 잔류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기사회생'의 순간이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말그대로 '똥줄 탄다'고 할까요? 사실 프로리그 왔을 때 언젠가는 드림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챌린지까지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근데 막상 챌린지로 떨어질 상황이 보이니까 '그래도 내가 상구당구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3부로 밀리면 레슨동영상을 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래서 마지막 6차대회에서 드림투어에 잔류하기 위해 악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승상금을 받고 주변에서 저를 강천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듣다 보니 별명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1부리그는 우승상금이 1억원인데 1부로 승격해서 우승한 후 '강억만'이란 별명도 얻고 싶습니다."

당구장은 과거 청소년들이 들어갈 수 없던 시설이었다. 1993년 청소년출입제한지역에서 해제되고 이듬해 체육시설업으로 변경되면서 강상구 역시 이시기부터 당구장을 출입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친구랑 우연히 당구장을 찾으면서 당구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당시엔 PC방도 없었고 청소년들이 딱히 즐길 만한 시설이 당구장뿐이기도 했고요. 4구를 쳤었는데 1년만에 당구지수를 300점으로 올릴 정도로 당구가 재밌었습니다. 졸업할 땐 400을 넘었고요. 3구를 접한 건 어느 날 선배가 제 눈앞에서 하이런 16점을 치는 장면을 직접 보고 나서부터였어요. 그때부터 3구에 매료됐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공으로 할 수 있는 건 다해봤어요. 심지어 축구부에 들어가서 축구공도 차봤는데 금방 싫증이 나더라고요. 하지만 당구는 지금까지도 정말 재밌어요."

프로당구 선수 강상구가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유일한 당구 스승은 정길복 선수

이후 방송 해설로 학습 효과 배가

강상구는 당구의 스승으로 정길복 선수 단 한사람을 꼽았다. 선수 데뷔전인 2001년 서울에 올라왔을 때 다양한 시스템과 당구 자료들을 건내 준 사람이 정길복 선수이기 때문이다.

"제가 당구를 하면서 누구한테 당구를 배운 적은 그때가 유일해요. 친구 소개로 당구장 일도 하고 당구도 배울 겸 서울로 올라왔었는데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고향인 대전이 너무 그리워 향수병에 시달려 한달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서울에서 짧은 기간동안 머무를 때 길복 형님이 수십 가지 시스템을 알려줬는데 대전에 와서 그 시스템을 엄청 연습했죠. 지금의 제 바탕이 되는 시스템은 당시 길복이 형님이 알려준 거나 다름없어요."

강상구는 2003년 대전당구연맹 회장의 눈에 띄면서 선수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생활체육 동호인으로 당구를 즐기던 그는 당시 CMB충청방송에서 열린 생활체육인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 대전당구연맹 회장이 그를 보고 스카우트 제의와 함께 연맹 선수로 등록시켰다.

"연맹 선수 등록과 함께 김치빌리아드 소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지금의 임종완 경기위원장님을 만나면서 월드컵 대회에도 다니게 된 거예요. 살면서 제가 당구 대회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갈 거라는 상상은 전혀 안 해봤거든요.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간다는 건 어떻게 보면 제 친구들이 농담 삼아 말한 것처럼 출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실제로 동창들도 제가 월드컵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많이 기뻐해 줬습니다."

강상구는 선수겸 방송 해설자로 6년동안 활약하고 있다. 처음 해설을 하기 시작한 배경은 경제적인 도움을 얻기 위한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해설 자체도 즐기고 있다. 특히 해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른 선수들의 자료를 공부하고,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분석하는 것이 일상화가 돼 스스로 공부의 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그는 특히 선수들의 스텐스나 스윙, 스트로크를 유심히 지켜보는 편이다. 그러다 보면 선수들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부분을 자신의 경기 모습과 대비시키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습득하는 과정을 갖는다. 해설을 준비하고 직접 하는 과정 자체가 엄청난 학습 효과로 이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당구 해설이 선수로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2016년 김치빌리아드 소속으로 있을 때 매일경제가 주최하는 직장 당구대회가 열렸어요. 그때 처음으로 저한테 해설 의뢰가 들어왔어요. 사실 프로리그가 생기기 전까진 당구만으론 생계를 꾸미기 어려웠잖아요. 처음 해설을 맡을 땐 경제적인 위안을 삼는 수단으로 생각한 것도 사실이예요. 그런데 1년 정도 하고 보니 저한테는 교육의 장으로 바뀐 거에요. 다양한 선수들의 경기를 보다보니 나름대로 눈이 높아졌고, 선수들의 마인드 컨트롤 방식도 보이기 시작하면서 멘탈 다루는 부분이 공부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 연습 노하우 중 하나가 해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프로당구 선수 강상구가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방송센터에 마련된 PBA 팀리그 경기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방송 해설을 적응하는 데도 제법 애를 먹었다. 일본식 당구용어를 표준화된 말로 설명하면서 우리말로 전환시키는 것도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장면마다 리듬을 끊기지 않도록 적절한 멘트를 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당구 관련 지식이 얕은 캐스터를 리드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해설 초기에는 많이 버벅거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다양한 스포츠 해설을 듣고 참조하면서 해격책을 찾아나섰다. 해설가와 캐스터가 주고받는 방식부터, 말의 앞부분과 끝맺음이 자연스러운 방법들을 익혀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설 실력을 쌓아올리자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정도 해설이 능숙해지니까 빌리어드TV에서 레슨동영상 제안이 들어왔어요. 2017년 당시엔 당구 레슨 동영상이 거의 없었거든요. '상구당구'가 그때 만들어진 채널 이름이자 제 별명이 됐습니다. 레슨이 지루하지 않도록 쉽고 재미있게 만들려고 노력했던 게 인기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당구 팬들 입장에서 보면 강상구는 무명 선수나 다름없었다. 상위권 성적을 내야 경기 장면이 방송을 탈 수 있지만 그의 성적이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구당구가 방송을 통해 인기를 끌면서 그도 덩달아 당구계의 유명 인사가 됐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진짜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보셨어요. 레슨 영상이 인기를 얻은 것은 좋은데 부담이 되는 순간도 있었어요. 제가 레슨한 어떤 패턴의 배치가 실제 시합에서 나왔는데 막상 치려고 하니 마지막 1점을 칠 때보다 더 떨리는 거예요. 공략에 실패했을 때 시청자들이 '자기가 가르친 배치도 실제 시합에서 못 치네'라고 비아냥거리는 장면이 떠올라 온 몸이 긴장을 하게 된 거죠.."

당구선수 아내도 LPBA 활약

두 아이도 원하면 선수 지원

강상구는 부부 당구선수로도 유명하다. 아내인 최혜정 선수의 성과 그의 성을 딴 '최강 당구스쿨'을 만들 정도로 당구에 대한 애정과 호흡이 잘 맞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들은 두 자녀에게도 당구의 꿈을 키워주고 있다.

"아내는 포켓볼을 치다가 만났는데 이야기도 잘 통하고, 좋아하는 음식까지 잘 맞더라고요. 제가 A형이고 아내가 B형이라 맞지 않을 수 있다고들 많이 그러시는데 오히려 서로 깍지가 껴지는 것처럼 잘 맞는 부분들이 많더라고요. 당구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9살 첫째와 6살 둘째가 있는데 요새 시합장을 같이 다니면서 당구도 조금씩 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당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하면 저희 부부는 적극 밀어주기로 이미 합의를 했어요."

당구로 만난 인연이었지만 결혼까지 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당시 당구 선수로만 활동해서는 수입도 변변치 못한 환경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특히 처가의 반대가 강했다. 딸을 둔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했을 것이다.

"지금은 제가 방송에서 해설하는 모습이 나오면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엄청 좋아하세요. 최근에는 빨리 1부에서 우승을 해서 상금 1억원을 타라고 하실 정도로 응원해 주십니다. 사실 주변에서는 2부리그에 머물면서 해설하는 게 수입이 더 좋을텐데 굳이 1부 올라갈 필요가 있느냐고도 해요. 아무래도 1부에 가면 지금처럼 해설을 병행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큐를 한 번 잡은 사람은 뭐랄까 특유의 중독성 때문에 큐를 놓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1부에 올라가면 당연히 해설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선수를 택할 겁니다. 지금 같으면 적어도 65세까지 선수로 뛸 자신이 있어요."

강상구 선수와 최혜정 선수의 웨딩사진, 그리고 그의 자녀 하엘과 요엘. 사진=선수 제공.

강상구는 다양한 배치별 상황을 머릿속으로 입력하는 방식에 중점을 두고 연습한다. 어려운 배치를 만나면 반드시 반복 연습을 통해 쳐보고 필요한 두께나 당점, 힘, 스트로크 방법들을 계속 주입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멘탈 관리에 더 집중하고 있다.

"암기식 연습 방법은 오래전부터 하던 제 노하우입니다. 그런데 최근 깨우친 게 심리적인 부분이 흔들리면 안되겠다 싶은 거죠. 그래서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솔직히 지난 시즌 5차대회까지 예선에서 탈락하고 6차에서도 잘못하면 3부 챌린지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불안하기보단 떨어지면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긍정적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성적도 잘 나왔다고 생각해요. 올해 개막전 우승도 할 수 있던 원동력은 멘탈 관리를 통한 심리적 안정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강상구의 긍정적 사고는 당구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도 묻어 나왔다. 그가 밝힌 당구의 매력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행복'이다.

"스포츠 중에 가장 안전한 스포츠를 당구라고 생각합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적절하게 트레이닝을 하면 크게 다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죠. 당구를 즐기면서 친다면 타 종목과 달리 오랜 기간 선수로도 활동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두 아이들이 당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선수로 활동한다면 어떨까 생각을 해봤어요. 만약 선수로 활동하면 부모와 자식이 시합에서 만날 수 있는 스포츠가 당구인거죠. 그런 식으로 당구와 관련해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참 행복합니다. 그래서 당구의 매력은 행복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네요."

"1부 우승과 팀 리그 참여가 목표"

1부 리그에 한발짝 다가선 강상구는 1억원 상금이 걸린 1부 개인전 우승과 함께 팀 리그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동안 혼자 준비하고 대회에 임했던 당구였지만 팀 체제라는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서다.

"솔직히 팀 리그에 들어가서도 팀워크가 무엇인지, 거기에 대한 부담감은 또 무엇인지를 직접 체험하고 느끼고 싶어요. 어찌보면 그 부분 또한 나의 발전이 될 수 있으니까요. 팀 리그를 보면 같은 팀 선수의 응원을 받아 패색이 짙던 선수가 다시 기운을 내거나 팀 승패에 따라 선수들이 함께 웃고 우는 모습들을 보면 너무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1부 우승이 목표이고, 또 하나의 목표는 팀 리그에 들어가는 겁니다."

프로당구 선수 강상구가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PBA가 처음 출범할 당시 강상구는 적극적으로 응원한 선수 중 한명이다. PBA 설립 공청회도 참석해 프로리그 창설에 대한 진정성을 직접 확인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PBA 설립 전부터 프로협회를 출범하려는 시도는 몇 번 있었습니다. 무산될 때마다 무척 아쉬웠는데 2019년에 PBA 설립 이야기가 나오자 너무 기뻤어요. 처음 만드는 게 어렵지 사실 한번 만들어지면 쉽게 없어질 수 없잖아요. 그래서 프로리그가 생기자마자 저는 고민하지 않고 트라이아웃을 신청했습니다."

그는 PBA의 미래와 사업적 전망에 대해서도 소신 있는 발언을 이어갔다.

"우리 때와 달리 요즘 학생들은 당구를 자주 접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PBA에서도 계획하고 있겠지만 초중고에 당구 조기 교육과 같은 사업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도 PBA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봐요. 미흡한 부분들도 있거든요. 하지만 분명한 건 더 잘 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당구 꿈나무 육성은 그래서 필요하고요."

해설자이자 선수 생활을 이어 가는 강상구에게는 주변의 도움 역시 고마울 따름이다. 가족의 응원은 물론 주변의 후원 때문에 현재의 자신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고리나 임정철 대표님, 프롬테이블 이태호 대표님, 당구한게임 조두현 대표님, 트윈볼코리아 박도준 대표님 그리고 항상 잘되길 바라고 응원해 주시는 저희 클럽 K.pro동호회원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또 가족처럼 지내며 서로 아끼는 당구선수 모임 'F-15' 형님, 동생들 너무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 하엘이, 요엘이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고 무엇보다 LPBA에서 활동하는 저의 아내는 저에게 있어 모든 것에 완전한 사람입니다. 고맙고 사랑합니다."

김동찬 기자

 

스포츠한국 김동찬 기자 dc007@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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