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볕을 쬐다'..생명의 온기가 필요한 이유

한겨레 2022. 8. 1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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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산책에서 돌아오다가 탈탈거리는 유모차를 만났습니다.

사람의 볕을 쬐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못되기에 시골의 노인들은 개나 고양이 같은 생명의 온기라도 쬐려고 짐승 몇 마리씩은 키웁니다.

사람뿐 아니라 지구별 위의 어떤 생명도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햇볕을 쬐지 못하면 살 수 없듯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의 온기를 쬐어야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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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고진하목사의 불편당 일기]

원주 불편당에서 고진하 목사 겸 시인이 아내 권포근 야생초 요리가와 함께하고 있다. 조현 기자

새벽 산책에서 돌아오다가 탈탈거리는 유모차를 만났습니다. 아기를 태우지 않은 유모차. 가까이 다가가 보니 충주댁 할머니의 유모차였습니다. 허리가 좋지 않은 할머니는 늘 유모차에 의지해 마을 길을 다닙니다. “어디 가시려고요?” “운동 삼아 둘레길 좀 걷다가 이제 경로당으로 가고 있쥬.”

할머니는 경로당으로 일찍 출근하는 셈. 마을에 혼자 사는 노인들은 경로당에 모여 밥도 같이 해먹고, 화투도 치면서, 혼자 살아가는 외로움을 달랩니다. 지난 5월 중순경엔 날씨가 아침저녁으로 초겨울처럼 쌀쌀했는데, 노인들이 경로당 계단에 앉아 있었지요. “아니, 왜 이렇게 계단에 처량하게들 앉아계셔요?”라고 묻자 한 할머니가 대꾸했습니다. “햇살이 좋잖아유. 여름 볕은 귀찮은 남 같지만 오늘 볕은 친손주 살결 같은 걸유.” 문득 나는 유홍준의 ‘사람을 쬐다’란 시가 떠올랐습니다.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시골 노인들의 삶은 매우 외롭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 하는데 사람을 쬐지 못하니까요. 내가 사는 마을의 노인들도 자식들이 있지만 다 도시에 나가 살고, 명절 때나 되어야 얼굴을 볼 수 있는 형편이죠. 하지만 어찌 이런 촌로들만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고 하겠습니까. 혼밥이나 혼술 같은 말이 유행하는데, 젊은이들 가운데도 혼자 살아가는 이가 많습니다. 오늘날 부득이하여 독거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수행자가 아니면 독거는 바람직한 삶의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검버섯이 피고 저승꽃이 핀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육체의 늙음을 암시하는 것이지만, 생명의 온기로부터의 단절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의 자살, 노인들의 고독사 같은 것들은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요.

픽사베이

‘인기척 없는 독거/ 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시멘트 마당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나 긁어보다가 만다/ 냄새가 난다, 삭아/ 허름한 대문간에/ 다 늙은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유홍준의 시 ‘사람을 쬐다’)

사람의 볕을 쬐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못되기에 시골의 노인들은 개나 고양이 같은 생명의 온기라도 쬐려고 짐승 몇 마리씩은 키웁니다. 오늘날 젊은이나 늙은이나,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그것 역시 생명의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 때문이 아닐까요.

사람은 혼자가 아닙니다. 사람뿐 아니라 지구별 위의 어떤 생명도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햇볕을 쬐지 못하면 살 수 없듯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의 온기를 쬐어야 살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는’ 궁핍한 시절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글 고진하 목사(시인 ·원주 불편당 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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