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폄하된 역사' 기생 탐구의 기록..신현규 교수의 『기생-문화컨텐츠 관점에서 본 권번 기생 연구』

홍윤표 입력 2022. 8. 12. 11:15 수정 2022. 9. 1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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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몇 해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추억 속에 얼마나 깊은 자욱을 남겼는가가 중요한 것이요, 그래서 죽음과 함께 비로소 삶이 시작된다는 의미심장한 말이 있는 것이다”

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의 손자인 북한 소설가 홍석중이 장편소설 『황진이』의 후기에 쓴 글이다. 이 소설은 조선의 명기(名妓) 황진이의 일대기를 새롭게 해석, 창작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홍석중은 황진이의 신분을 뛰어넘은 하층민과의 사랑을 절절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기생 연구의 권위자인 신현규 중앙대 교수가 펴낸 『기생-문화콘텐츠 관점에서 본 권번기생 연구』(연경문화사 발행)는 황진이의 시대를 훌쩍 건너 뛰어 ‘일제 강점기의 권번기생을 집중 탐구한’ 자신의 연구 발표 논문들을 엮어 집대성한 저서이다.

기생은 비록 천민층이었지만 신분의 제약과 억압 구조 속에서도 전통문화의 훌륭한 계승자였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치거나 의료에 종사한 의녀도 있었다. 우리 문학사에도 적지 않게 공헌했던 사실을 고증과 일화로 파헤쳐내 재조명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신현규 교수는 죽음에 묻혀 있던 기생의 삶에 숨결을 새롭게 불어넣어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킨다.

신현규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는 중앙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민속박물관대학(사), 에버에듀닷컴 등에서 ‘조선의 기생’을 특강 했던, 그야말로 우리나라 기생 연구의 맨 앞에 서 있는 학자다.

신 교수가 유난스레 기생 연구에 천착해온 까닭이 있다.

“어떻게 보면 근대에서 가장 해결해야 할 문제 중에 신분이나 여성, 젠더 등 분야에 기생 부분이 다 걸려 있다. 그런데도 기생이 멸시, 천시, 비하되면서 제대로 된 모습을 찾는 연구자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신 교수는 “이분들이 중요한 예술 활동을 담당했지만 기생 폄하의 틀에 갇혀 있어 나라도 연구해야겠다고 생각, 문화예술 전통의 계승자의 위치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기생 연구의 최전선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도 보면, 기생하셨던 분들이 몸 둘 바 모르고, 후회스러워한다. 자기 예술에 대한 자부심이 없어진 것이다. 사실 우리 전통 문화예술 활동 부분에서 기생을 빼면 많이 사라진다. 예전엔 북을 바닥에 놓고 쳤으나 기생들이 일제 강점기 살아남기 위해 개발한 것이 사고무나 부채춤이다. 그분들이 처음으로 먼저 현대화했다.”

신 교수는 일제 강점기에 세계적인 무용가였던 최승희도 우리 전통춤을 사사 받으면서 그 이름을 온 세계에 떨쳤으나 재창조의 원천인 기생들의 공헌은 사라지고, 흔히 매춘, 기생관광 오명으로만 남아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기생-문화컨텐츠 관점에서 본 권번 기생 연구』는 제1부 ‘일제 강점기의 근대적 기생, 즉 권번기생에 대한 개념 연구부터 기생들이 직접 제작한 콘텐츠(문학)에 대한 연구’, 제2부 ‘일제강점기 권번기생 문학 연구’-『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에 수록된 창가(唱歌)와 기녀 시조 문학의 전통성과 현대성 연구, 기생 잡지 『장한(長恨, 1927년)』에 수록된 시조를 중심으로 한 권번시조, 『조선미인보감』(1918년)과 『가곡보감』(1928년)을 중심으로 한 기생 ‘康春紅小傳’ 연구,- 제3부 ‘권번기생의 문화 콘텐츠 연구’-기생 ‘백운선’을 콘텐츠로 한 스토리텔링의 가능성 고찰, 『주간 아사히(週刊朝日)』(1934년)에 게재된 기생 왕수복 기사-, 제4부 ‘권번기생의 근대 서지 연구’- 권번기생 잡지 『장한(長恨)』 서지 고찰, 이방인이 쓴 『기생물어(妓生物語)』 서지 고찰- 등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부록으로 실어놓은 ‘일제강점기 기생관련 잡지 기사 목록’도 후학들이 살피기 편하게 체계화했다.

눈길을 끄는 것이 잡지 『장한(長恨, 1927년)』이다. 기생들이 잡지를 발간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선 놀랍다.

신 교수는 “2000년대 초부터 단편적으로 거명된 것으로 그 평가에 대한 부분이 요즘 재조명되고 있다”고 밝혔다.

기생 자료를 집중적으로 찾고 있는 신 교수는 “평양 기생학교 관련 한국과 일본에서 기사화된 것을 모으다 보니 1915년대 1920, 1930년대 이후 유명한 기생분들 일생을 탐구하게 됐다. 왕수복 같은, 인물과 인물사로 연결되고, 단편적이지만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면서 “서지를 통해서 기생 연구를 확대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기생잡지를 찾다 보니 운 좋게 ‘화장’ 같은 위생잡지도 발견했다”고 소개했다.

신 교수는 비단 기생 분야뿐만 아니라 『고려조문인졸기(卒記)』, 『조선조문인졸기』, 『문학의 이해』, 『한국문학의 흐름과 이해』, 『우리문화이야기』, 『글쓰는 절차와 방법』, 『중국간체자여행』 등이 다양하고 폭넓은 저술 활동을 해왔다. 기생 관련으로는 『꽃을 잡고: 일제 강점기 기생 인물· 생활사』 (2005), 『평양기생 왕수복』(2006), 『조선기생 선연동 연구』(2017)에 이어 이번에 『기생-문화컨텐츠 관점에서 본 권번 기생 연구』를 펴냈다.

그의 기생 탐구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기생은, 지우고 싶은 과거가 아니라 이 시대의 문화 컨텐츠로 되살려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게 신 교수의 소신이다.

[OSEN=홍윤표 선임기자]

『장한(長恨)』 잡지 이미지 제공=신현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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