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직전까지 월간산에 엽서보낸 열성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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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운동 불모지였던 대전·충남에서 등산 붐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받는 원로산악인 김기왕 전前 대전산악연맹 회장이 지난 6월 12일 작고했다.
김 전 회장은 1960년대 충남산악회와 충남산악연맹 창립에 기여했고, '등산'이란 개념 자체를 낯설어했던 시민들과 함께 산에 오르며 등산의 묘미를 널리 전파하는 데 힘썼던 산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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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운동 불모지였던 대전·충남에서 등산 붐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받는 원로산악인 김기왕 전前 대전산악연맹 회장이 지난 6월 12일 작고했다. 김 전 회장은 1960년대 충남산악회와 충남산악연맹 창립에 기여했고, '등산'이란 개념 자체를 낯설어했던 시민들과 함께 산에 오르며 등산의 묘미를 널리 전파하는 데 힘썼던 산악인이다.
김 회장이 처음 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경복중학교(현 경복고) 시절이다. 산악회 선배들을 따라 훈련도 없이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 도봉산의 선인봉과 만장대에 무작정 붙었다. 장비라고는 자일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유등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졸업 후 경찰에 몸담게 된 그는 지리산 자락에 배치돼 도보등산의 묘미를 깨닫게 된다. 노고단과 반야봉, 고리봉과 만복대 등 지리산 서부 지역을 원없이 누볐다. 이 지역서 1년간 근무한 후 대전으로 배치됐는데 이번엔 또 계룡산과 대둔산 자락이었다. 산이 그를 불렀다.
김 회장은 대전에서 홀로 계룡산을 다니며 같은 취향을 가진 동료를 찾던 중 경복중 동창인 강석붕, 이동주 등과 의기투합해 1965년 2월 21일 충남산악회를 창립한다. 창립 후 첫 사업은 시민안내등반. 계룡산 삼불봉에서 창립등반 겸 첫 시민안내등반을 시작한 이래로 식장산 독수리봉, 흑룡산 도덕봉, 계룡산, 대둔산 등지에서 시민과 함께 산에 올랐다. 당시만 해도 교통이 불편해 제3관구사령부의 협조로 군 트럭을 얻어 타고 등산을 했다.
이외에도 전문 등산인 양성을 위한 등산대회를 개최하고, 계룡산악제를 열어 음악감상회, 집중식 등반, 산상 세미나, 산악상 시상 등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특히 전국 15대 명산 순례를 기획해 대전 지역 내 등산 인구 저변확대와 활성화에 큰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전산악연맹과 충남산악연맹이 분리된 1995년에는 대전산악연맹 회장으로 당선돼 지역 산악계를 이끌었다.
또한 김 회장은 산악운동에 있어 산서를 중요시 했다. 그는 1952년 대전의 한 시장에서 구입한 일본의 산서에서 마터호른과 같은 외국의 산과 등반 전문 지식을 보고선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등산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창립 직후 <야호>라는 제호로 산악회지를 발간해 외국 등산전문서적에 있는 등산 관련 지식을 배포하기도 했다. 그는 임종 직전까지도 월간<山>에 매달 독자엽서를 보내는 열성 독자였다.
연고지 산악인들에게 수십 년 넘게 존경 받은 인물이기에 추모 행렬도 이어졌다. 이동주 대전산악연맹 고문은 "통솔력이 좋고, 책임감이 투철한 참 훌륭한 인물이었다"며 "주말이 보장되지 않는 경찰이면서도 틈만 나면 산에 왔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김기왕 회장이 대전산악연맹 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전무이사로 그를 도왔던 대한산악연맹 손중호 현 회장은 "김기왕 선배님은 고위경찰 출신이라 그런지 공명정대하고, 후배들을 엄격한 사랑으로 이끌어주셨던 선배님이셨다"고 추모의 말을 전했다.
월간산 2022년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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