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태초에 이 한 방울이 있었다" 인류를 키워온 '생명의 젖줄'

기자 입력 2022. 8. 12. 09:00 수정 2022. 8. 1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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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20세기 초 프랑스 낙농 공장의 모습. 와이즈맵 제공

■ 우유의 역사

마크 쿨란스키 지음│ 김정희 옮김│와이즈맵

우유 관련 신화·종교·경제 섭렵

수백명 인터뷰 한 ‘젖의 문명사’



중세 가톨릭 ‘젖은 피’라며 금지

콜레라 유행땐 ‘하얀 독약’오명

“우유의 역사는 곧 논쟁의 역사”

인류는 젖의 동물인 포유류에 속한다. 하지만 다른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모유를 오래 먹을 순 없다. 젖을 소화하려면 락타아제라는 호르몬이 필요한데 아기가 자라면 몸에서 락타아제 분비가 멈춘다. 그 덕분에 어머니는 아이를 두고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이유기가 지난 인간이 젖을 먹는 건 정상이 아니다.

독특하게도 인간은 나이 들어 젖을 먹는 유일한 동물이다. 가축 사육을 시작한 약 8000년 전 이후, 문화적 변동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인류는 평생 락타아제를 분비하는 능력을 얻었다. ‘생명의 음료’를 마시려고 몸을 진화시킨 것이다. 이로써 인류 문명은 소, 양, 염소, 말, 야크 등 젖의 역사와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게 됐다.

마크 쿨란스키의 ‘우유의 역사’는 목축의 시작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인간과 젖의 강렬한 상호작용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낸다. 원제는 ‘milk!’, 우유로 옮겼으나, 본래 ‘(동물의) 젖’을 뜻한다. ‘대구’ ‘소금’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저자는 신화와 역사, 문화와 경제, 음식과 산업 등 온갖 자료를 섭렵하고 전 세계 수백 명의 농부, 과학자, 요리사, 운동가 등을 인터뷰해 젖의 문명사로 우리를 이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의 신화에 따르면, 우루크 제사장 사마슈는 곡물의 여신 니사바에게 젖을 주지 말라고 동물들에게 말했다. 한 형제가 이를 눈치채고 사마슈를 붙잡아서 강물에 빠뜨렸다. 그러자 사마슈는 양으로, 소로, 영양으로 모습을 차례로 바꿨다. 이 신화는 인류가 목축을 통해 동물의 젖을 얻어내는 과정을 상징한다.

여러 문명에서 젖은 세상의 기원을 드러낸다. 서아프리카의 풀라니족은 세상이 커다란 젖 한 방울에서 시작됐다고 믿고, 히브리인은 신이 약속한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불렀다.

최초의 동물 젖은 우유가 아니라 양이나 염소나 낙타의 젖이었을 가망성이 높다. 사실 몇 세기 전만 해도 인류 다수는 우유를 즐기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 소젖을 먹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20세기까지 유제품 요리가 거의 존재하지 않을 정도였다. 희랍인은 우유를 야만의 음식으로 여겼다. 그들은 불가리아 땅에 살던 유목민 트라키아인을 ‘버터 먹는 놈들!’이라고 경멸조로 불렀다.

초기 교회에선 영성체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음료로 포도주 대신 양젖을 마실 정도로 젖을 신성시했다. 그러나 중세 가톨릭교회에선 우유 섭취를 금했다. 젖은 피가 가슴으로 이동하면서 하얗게 변한 것으로 께름칙하다는 핑계를 댔으나, 실은 개종한 북방 유목민들이 우유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우유 의례는 문명의 야만화를 뜻했다.

근대 초기, 인류가 널리 우유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우유 관련 논쟁이 치열해졌다. 위생과 안전 문제가 시작이었다. 콜레라 등 세균에 오염되거나 독성 있는 풀을 먹고 자란 소의 우유를 마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사람들은 이런 비위생적 우유를 ‘구정물 우유’ 또는 ‘하얀 독약’이라고 불렀다.

19세기 말, 파스퇴르가 저온 살균법을 찾아내 위생 문제는 일단락됐으나, 다시 영양 논쟁이 일었다. 살균 과정에서 인체에 유익한 세균도 죽인다면서 잘 관리한 생우유가 멸균 우유보다 몸에 좋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후에도 모유 수유 대 인공 수유, 항생제와 호르몬 과다 사용, 광우병, 유전자 변형, 거대 낙농 기업들의 추악한 탐욕 등 우유 관련 논쟁은 멈추지 않았다. 우유의 역사는 곧 논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젖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식품의 하나이기에, 인류사 곳곳엔 젖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 형제나 몽골제국을 창시한 칭기즈칸은 모두 늑대 젖을 물고 자랐다. 젖이 없었다면 세계사의 흐름이 변했을지 모른다. 거대 낙농기업 폴슨에 우유 납품을 거부한 인도 아난드 지방의 농민들이 승리하면서 영국의 인도 지배가 종언을 고하기도 했다.

문명의 유아기부터 인류는 젖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치즈와 버터, 요거트와 아이스크림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현대로 올수록 젖을 이용한 식품과 요리는 다양해지는 중이다. 저자가 수집해서 책 곳곳에 소개한 전 세계의 진귀한 유제품 요리법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472쪽, 1만9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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