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화석 박물관'..  '섬 속의 섬' 비양도서 느림의 여유 즐겨요

김영헌 2022. 8. 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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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그 섬에 가다 : 제주 비양도
제주 세계지질공원 대표 명소
대형 화산탄과 '애기업은 돌'
수만년 전 화산활동 작품 즐비
제주 유명 관광지와 달리 한적
비양봉 오르면 절경 파노라마
불청객 해양쓰레기로 골머리도
편집자주
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도항선에서 바라본 비양도 전경. 김영헌 기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생활에 지칠 때 가끔 머릿속에선 ‘섬’이 떠오른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맘 편히 쉴 수 있는 곳. 자동차도 없고 24시 편의점도 없지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곳. ‘빠름’보다는 ‘느림’이 더 익숙한 제주 비양도가 그런 섬이다.

지난 8일 찾은 비양도는 제주 본섬과 지척에 있다. 비양도는 제주시 한림항에서 5㎞ 정도 떨어진 섬으로, 배로 15분이면 도착한다. 비양도에 가려면 한림항 도선대합실에서 미리 매표를 해야 한다. 비양도행 도항선은 2척으로, 오전 9시부터 2∼3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4회씩 왕복 운항한다. 이날 첫 도항선에는 관광객과 낚시꾼 20여 명이 전부였다. 한 해 1,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제주를 찾지만, 비양도를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실제 지난해 비양도를 찾은 관광객은 11만여 명에 불과했다. 역설적이지만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제주의 유명 관광지와 달리, 비양도에선 한적하게 섬 자체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하늘에서 본 비양도 전경. 독자 제공

중국 쪽에서 날아온 산봉우리 하나가 지금의 자리에 떨어졌다는 전설 때문에 '날아온 섬'이라는 이름이 붙은 '비양도(飛揚島)'는 0.59㎢의 아담한 크기에, 해안선 길이도 3.15㎞에 불과하다. 책자마다 비양도는 '천년의 섬'이라고 소개돼 있는데,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 때문이다. 기록에는 '고종 5년(1002년) 산이 바다 한가운데서 솟아나왔는데, 산꼭대기에 4개의 구멍이 뚫려 붉은 물이 솟다가 닷새 만에 그쳤다'고 적혀 있다. 이 기록 때문에 비양도는 1,000년 전에 분출한 화산섬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용암의 나이를 분석한 결과 2만7,0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정도면 ‘살아 있는 화석 박물관’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비양도가 제주도 세계지질공원 대표명소 13곳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비양도 선착장에 도착한 배에서 내리자마자 “비양도 해설 듣고 가세요”라는 말이 들려왔다. 선착장 한쪽에 설치된 비양도 탐방안내도 앞에 선 진성희 지질공원해설사가 10여 분간 비양도에 대해 설명했다. 볼거리와 먹거리, 화장실 위치 등등 다양했다. 비양도 주민인 진 해설사는 “짧지만 설명을 듣고 나면 비양도가 완전히 달라 보이기 때문에 배에서 내린 후에 꼭 설명 듣기를 추천한다”며 “비양도는 그냥 둘러보면 밋밋한 작은 섬이지만, 조금만 알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번 새롭게 변하는 매력적인 섬”이라고 자랑했다.

제주 비양도 내 코끼리 바위를 구경하고 있는 관광객들. 김영헌 기자

섬 한바퀴를 일주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시멘트 포장길을 느릿하게 걸으면서 섬 주변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 풍경을 보고, 해설사가 자랑하던 섬의 속살들을 하나씩 들여다봤다. 해설사 말대로 비양도 해안은 수천~수만 년 전 화산활동이 만든 작품들이 즐비했다. 대형 화산탄과 '애기업은 돌'이 대표적 지질명소다. 특히 화산탄은 10톤 규모의 초거대 크기로, 직경이 5m에 달한다. 현재까지 제주에서 발견된 화산탄 중에서 가장 크다.

화산탄 분포지 인근 해안에는 독특한 모양의 바위 20여 개가 분포돼 있다. 바위들은 굴뚝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용암이 흐르는 동안 바닥의 물을 만나 소규모 폭발로 이어지면서 용암이 뿜어져 나가 만들어진 것으로 ‘용암굴뚝’(호니토, hornito)으로 불린다.

비양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관 중 하나가 염습지인 펄렁못이다. 용암 대지로 이뤄진 바닥으로 바닷물이 스며들어 형성된 펄렁못 습지는 조수운동과 반대로 밀물에는 수위가 줄어들고, 썰물에는 높아진다. 이외에도 지금은 사라진 비양봉의 또 다른 분화구가 파도에 침식돼 코끼리 모양으로 남은 ‘코끼리 바위’, 용암이 천천히 흐르면서 만든 볼록한 용암지형인 ‘아아용암’, 점성이 낮아 기왓장처럼 차곡차곡 누적된 구조와 용암이 식으면서 만든 수직 주상절리구조인 ‘파호이호이 용암해안’ 등도 눈길을 끈다.

제주 비양도 비양봉 정상에서 바라본 제주 본섬 전경. 김영헌 기자

비양도 섬 한가운데를 차지한 비양봉도 올랐다. 나무계단과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30여 분 만에 해발 114m의 비양봉 정상에 도착한다. 꼭대기에는 약간 허름해 보이는 새하얀 등대가 서 있었다. 등대를 등지고 한라산을 찾아 남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제주 본섬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구름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한라산 정상과 본섬의 풍경이 눈에 가득 찼다. 고개를 돌리면 바다 위에 줄지어진 해상 풍력발전기들이 서 있었고, 섬 북쪽에는 남쪽의 옥색 바다와 달리 짙은 남색 바다가 펼쳐졌다.

이날 비양도를 다시 찾아왔다는 관광객 유지민(25)씨는 “지난해 5월 비양도에 왔다가 너무 좋아, 친구와 함께 다시 오게 됐다”며 “비양도는 다른 관광지처럼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하고 싶은 대로 느릿느릿 움직이다가 쉬고 싶을 때 아무 데서나 쉴 수 있어 좋다. 다소 불편한 점도 있지만, 그것도 비양도의 매력 중 하나”라고 말했다.

비양도. 그래픽=김문중 기자

섬 일주를 마치고 선착장 주변 조그만 식당에 들어가 비양도의 대표 먹거리인 ‘보말(조개류인 고둥을 뜻하는 제주어)죽’을 주문했다. 비양도 해녀들이 직접 잡은 보말로 만들었다고 식당주인이 한마디 거들었다. 식당 메뉴판에 적힌 소라물회, 전복죽, 성게비빔밥 등도 모두 해녀들이 비양도 바다에서 물질(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캐는 작업)로 잡은 싱싱한 ‘비양도산 해산물’로 요리한다고 한다.

제주 비양도 내 펄렁못 습지 전경. 김영헌 기자

비양도 주민들 대부분은 어업에 종사한다. 현재 비양도에는 82가구 159명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섬에 거주하는 주민은 50여 명으로 이들 중 38명이 해녀다. 아이들은 없고 대부분 60대 이상이다. 젊은 사람들은 본섬으로 떠났고, 주소지만 남겨둔 여느 어촌마을과 비슷한 풍경이다.

제주 비양도 해변에 밀려온 해양쓰레기를 수거하는 봉사단체 회원들. 김영헌 기자

비양도의 거주 환경은 아직도 그리 좋지 않다. 비양도는 물이 없는 섬이다. 오로지 빗물에만 의존해 살았다. 빗물도 금세 밑으로 빠지는 화산토인지라 본섬에서 가져온 질흙을 다져서 빗물을 모았다. 그러다 1965년에 해저파이프를 연결, 식수 공급이 가능해졌다.

전기는 아직도 섬에 설치된 경유를 이용한 자가발전기로 공급하고 있다. 그래서 본섬에서 전기를 직접 공급받는 게 주민들 숙원 사업이다. 비양도의 최대 골칫거리는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해양쓰레기다. 주민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다. 한 해 수백 톤씩 비양도 해변에 밀려온다. 중국어와 영어가 적힌 플라스틱 제품들은 물론 어선에서 버린 폐그물 등 온갖 쓰레기가 해안 곳곳에 숨어 있다. 봉사단체들과 주민들이 수거작업을 벌이지만 한계가 있다.

윤성민 비양리장은 “비양도의 지금 모습을 최대한 지키면서 관광객들이 섬에 머물 동안 크게 불편하지 않도록 편의시설 등을 확충하고 있다”며 “개발과 보전의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비양도만의 매력을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협재해변에서 바라본 비양도 전경. 김영헌 기자

비양도는

위치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비양도

인구 82가구, 159명

산업구조 어업 90%, 서비스업 등 기타 10%

주요 특산품 보말, 소라, 전복, 꽃멸치

제주=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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