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방콕'

김진 2022. 8. 1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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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어도 여행자들 마음 설레게 만드는 도시, 방콕. 3년이란 기다림 끝에 드디어 닿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방콕은 조화롭게 살아가는, 여전히 천사의 도시였음을.

●기본부터 다지기

방콕을 여행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기본 중의 기본은 왕궁을 돌아보는 것이다. 방콕의 왕궁을 정확히 묘사하자면, 왕궁(Grand Palace)과 왕실 전용 사원인 왓 프라깨우(Wat Phra Kaew)와 도서관, 체디(불탑) 같은 여러 건물이 함께 모여 있는 왕궁 구역이 있다.

왕궁에 갈 때 유의해야 할 점. 우선 긴팔 옷을 입어야 한다. 사원에 들어갈 때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지만, 뜨거운 햇빛을 가리기 위해서라도 긴팔이 유용하다. 금빛으로 둘러싸인 건물에 햇빛이 뜨겁게 반사돼 생각보다 훨씬 덥다. 당연하게도 낮 시간대를 피하는 것이 좋다. 시원한 물 한 병은 필수로 지참해야 한다. 땀이 줄줄 흐르는 데다가 안에 들어가면 마땅히 물을 살 곳이 없다. 카페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줄이 매우 길다. 입장까지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새파란 잔디가 싱그러운 왕실 공원과 매표소를 지나면 왕실의 사원인 왓 프라깨우가 화려한 자태를 드러낸다. 1782년 왕궁의 탄생과 함께 호국 사원으로 건축되었으며, 흔히 '에메랄드 사원'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인 곳에서 사원 안쪽을 들여다보니 초록색 에메랄드 불상이 영롱하게 빛난다. 원래 1434년 치앙라이에 있는 사원에서 발견된 이후 치앙마이와 라오스를 거쳐 1778년 왓 프라깨우로 돌아온 것이다. 태국의 왕만이 에메랄드 불상을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신비롭고 귀중한 불상으로 추앙받는다.

왕궁에서 유일하게 그늘이 되어 주는 회랑

왓 프라깨우를 둘러싼 회랑은 불볕더위에 지친 여행자들에게 그늘막이 되어 준다. 회랑 벽에 길게 이어지는 벽화는 힌두교 대서사시를 그림으로 담았다. 원래 인도의 장편 서사시였던 것을 태국 버전으로 각색한 것이다. 이것을 '라마끼안'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차크리 왕조의 왕을 지칭하는 '라마'가 시작됐다.

자세히 보면 형형색색 유리를 조각해 붙였다

거대한 꼬깔콘처럼 생긴 황금빛 거대 불탑, 프라 시 라타나 체디(Phra Si Ratana Chedi) 뒤편에 가면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각품이 하나 있다. 매우 정교하게 조각된 앙코르와트 모형이다. 태국과 그다지 좋지 않은 관계인 캄보디아의 문화유산이 왜 태국, 하필 왕궁 안에 있을까? 원래 앙코르와트는 태국의 영역에 속했는데,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둔 프랑스의 요구로 1907년 태국은 마지못해 앙코르와트를 캄보디아에 반환했다. 태국이 가장 번성했던 시절을 모형으로 만들어 앙코르와트가 원래 '태국의 것'이었음을 시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크메르 왕조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캄보디아인들이 조각품을 본다면 어떤 기분일지, 조금은 궁금해진다.

차크리 마하 쁘라삿. 서양 건축 양식 위에 태국 건축 양식을 얹어 '태국 모자를 쓴 서양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왕궁 코스를 둘러보고 출구로 나오기 직전엔 조금 다른 분위기의 화려한 건물이 눈길을 끈다. 태국 전통 양식과 유럽 양식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차끄리 마하 쁘라삿(Chakri Maha Prasat)은 유럽을 순방하고 온 라마 5세가 지었다. 유럽 건축 양식 위에 태국 양식이 올라가 있는 형태는 따로따로 지어 강제로 붙여 놓은 것처럼 부자연스럽다. 그나마 건물 앞에 시원하게 펼쳐진 잔디와 형형색색의 꽃들이 왕궁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실제로 현지 몇몇 이들은 이런 건축 양식을 달갑지 않게 바라본다고. 태국인이라면 마땅히 그런 생각을 가질 만도 하다.

방콕을 상징하는 차오프라야강과 왓 아룬

●다섯 민족, 하나의 커뮤니티

방콕을 가로지르는 차오프라야강 서쪽 지점에는 쿠디 친(Kudi Chin)이라는 커뮤니티가 있다. 쿠디 친은 가톨릭 신자인 포르투갈인과 무슬림, 중국인, 소수민족인 몬족과 태국인이 함께 어울려 사는 다문화 커뮤니티다. 18세기 버마가 태국을 침략했을 당시, 포르투갈인들은 태국인 편에 서서 버마인을 몰아내는 데 공을 세웠다. 포르투갈인들은 차오프라야강 일대의 땅을 하사받았고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산타크루즈 성당

르네상스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산타크루즈 성당에서 종이 울리면 마치 포르투갈의 어느 소도시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인근엔 중국풍의 사당과 태국 사원인 왓 칼라야나밋, 이슬람 사원인 쿠디 카오 모스크가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쿠디 친의 골목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앞집에서 '맛 좀 보세요!'라며 창문으로 음식을 건네줄 수 있을 정도다. 문화와 종교와 인종도 다른 이들이 200년 넘게 충돌 없이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모습에서는 따뜻한 유대감이 느껴진다.

반 쿠디친 박물관 루프톱에서 바라본 마을

쿠디 친 커뮤니티의 역사와 분위기를 한눈에 알아보려면 반 쿠디친 박물관에 가 보는 것이 좋다. 1층은 카페와 기념품숍, 2~3층은 초창기 포르투갈인들의 생활상을 담은 박물관으로 운영 중인데 입장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박물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엔 쿠디 친 커뮤니티가 자랑하는 유서 깊은 빵집, 타누싱하(Thanusingha) 베이커리 하우스가 있다. 아유타야 시대부터 무려 5세대에 걸쳐 포르투갈 빵의 영향을 받은 메뉴, '카놈 파랑 쿠디친(khanom farang kudichin)' 한 가지만 판다.

쿠디친 마을의 좁은 골목

"우리 조상 중에 포르투갈인이 있었어요. 태국에서는 단 세 곳만 이런 빵을 만들 수 있어요. 우리가 그중 하나죠." 그들은 빵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다. 오리알과 설탕, 밀가루 단 3가지 재료로만 만든다. 식감은 거칠고 풍미는 진하다. 왕실에 납품을 할 정도로 인정받는 빵이라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입맛은 개인의 영역이다.

방콕은 2008년부터 쿠디 친 커뮤니티를 문화 관광지로 조성해 보존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대손손 대물려 내려온 집들은 너무나도 초라하지만, 끊임없이 보살핀 덕에 낡았어도 아름답다. 길목이 좁아 차가 다니지 못한다. 작은 카트를 끄는 채소장수가 두 발로 골목을 누빈다. 방콕에서 잔잔한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방콕을 여행하는 몇 가지 방법

최근 '몰링(Maling)'이라는 소비 형태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몰링은 대형 복합쇼핑몰에서 외식이나 쇼핑, 영화감상 등의 여가활동을 동시에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방콕은 '몰링' 하기 최적의 여행지다.

방콕에서 몰링을 빼놓을 수 있을까? 이곳은 아이콘 시암

시암(Siam) 센트럴 월드와 시암 파라곤, 시암 센터, 시암 디스커버리, 시암 스퀘어 원, 마분콩(MBK)이 늘어서 있어서 작정하고 몰링에 빠져든다면 하루가 부족하다. 시암 디스커버리의 4층은 친환경을 주제로 태국 친환경 제품과 실용적인 생활용품 위주로 꾸며 놓아 가벼운 지갑으로도 기념품이 될 만한 것을 고르기 좋다.

방콕 예술문화센터

미술관 애호가라면 방콕 예술문화센터(BACC)로 향해 보자. 입장료가 무료며 시암역과 구름다리로 이어져 있어 이동도 편리하다. 태국이 워낙 종교와 왕족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나라이기 때문에 보수적인 느낌의 작품이 대다수지만, 센세이셔널한 주제의 전시도 자주 열린다. 이번엔 성소수자 아티스트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한데 모아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었다. 방콕 예술문화센터는 건물 자체도 색다른 볼거리다. 뉴욕 구겐하임처럼 나선형 계단으로 9층까지 이어지는데 온통 하얗다.

아리의 한 카페

카페만 찾아다니는 것도, 방콕 여행의 또 다른 묘미다. 아리(Ari)역 주변은 '방콕의 연남동'으로 불린다. 그러다 보니 별다른 여행 정보가 필요 없다. 골목골목 보물찾기를 하듯 탐방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카페에 들어가도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글·사진 김진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태국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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