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장인열전] 빛바랜 서화에 생명 불어넣는 홍종진 배첩장

김형우 2022. 8. 12.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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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기법으로 문화재 1천여 점에 배첩..1999년 무형문화재 지정
"대중화·후학양성에 노력할 것"..제자인 아들은 배첩 박사 취득

(청주=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아무리 예술·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서화(書畵)라도 세월을 견디지 못한다. 결국은 빛바래 망가지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작업을 하는 홍종진 배첩장 [촬영 천경환 기자]

이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전통 서화 처리기법인 배첩(褙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배첩은 쉽게 말해 그림이나 글을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감상할 수 있도록 꾸며 작품의 격을 한껏 끌어올리는 일을 말한다. 흔히 표구(表具)로도 알려져 있다.

배첩은 한자를 쪼개 풀이하면 등(背)에 옷(衣)을 입힌다(貼)는 뜻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간의 무게를 견디는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말로 의역할 수 있다.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내적 가치도 중시했던 옛 어른들의 지혜가 읽힌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많은 고서 등에는 배첩 기술이 들어 있다.

1377년 발간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약칭 직지)에도 배첩 장인들의 흔적이 녹아있다.

서적의 오른쪽 언저리에 5개의 구멍을 뚫고 붉은 색실로 묶어 오래 보관해도 원형이 쉽게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배첩 기술인 '오침안정법'이 직지에 사용됐다.

고려의 금속활자와 배첩 기술이 만나 탄생한 직지는 6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남아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으로 살아 숨 쉰다.

배첩 작업을 하는 홍종진 배첩장 [촬영 천경환 기자]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는 2004년 청주시의 지원으로 건립돼 배첩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는 전수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충북도 무형문화재 7호인 배첩장 기능보유자 홍종진(72) 선생이 과거와 미래를 잇는 전통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는 전수관을 찾은 기자에게 "누구나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려면 일단 옷을 깨끗이 입어야 해. 배첩은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도록 옷을 입혀주며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홍종진 배첩장 [촬영 천경환 기자]

전수관 2층 작업실에 들어서자 그가 혼신의 작업을 기울여 살려낸 작품들부터 작업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소중한 문화재를 다루는 작업이다 보니 도구들이 깔끔히 정리돼 있었다.

마치 새로 벗을 사귈 때 옷을 깨끗하고 말끔하게 정돈하는 것처럼 배첩은 고도의 정밀함과 깨끗함, 균일함을 갖춰야 한다는 철학이 배인 것이다.

배첩 도구를 살펴보는 홍종진 선생 [촬영 천경환 기자]

배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야가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작업이 낱장에 그려진 서화 뒷면에 풀로 종이를 덧대고 이후 비단 등을 사용, 보강해주거나 액자, 병풍 등을 꾸며 작품의 심미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서화는 오랜 세월을 버티는 강한 힘을 갖는다.

또 고서(古書)의 묵은 때를 지우거나 떨어져 나간 곳을 보수해 다시 가치를 높이는 작업도 배첩에 속한다.

배첩 도구를 살펴보는 홍종진 선생 [촬영 천경환 기자]

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배첩 재료다.

종이와 함께 가장 기본적인 재료인 풀을 만드는 데 10년을 투자할 정도로 모든 정력을 기울인다.

이를 보여주는 게 전수교육관 마당에 줄지어 선 수십 개의 장독이다. 이 장독 안에는 그가 보물처럼 생각하는 풀의 원료들이 있다.

그가 풀을 직접 제조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그는 물이 찬 장독에 직접 빻은 밀가루를 넣은 뒤 천천히 침전시키고 약초를 투입하는 과정을 반복해 얻은 분말만 작업에 사용한다.

그는 "이렇게 마련한 풀은 썩지 않고 배첩에 사용되는 종이 등의 재료들을 훼손하지 않는다"며 "쉽게 일할 수 있지만, 우리의 전통 가치를 원칙을 갖고 지키는 일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네스코 직지 상장을 살펴보는 홍종진 배첩장 [촬영 천경환 기자]

50년 넘게 이어진 배첩 장인의 길은 우연처럼 시작됐다.

1950년 충남 천안시 동면에서 태어난 그는 현재 전수관이 있는 청주와 인연이 없었다.

딱히 익힌 기술이 없어 먹고 살길을 걱정하던 차에 동네의 한 어른으로부터 "배첩 기술을 배우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동네 어른의 소개로 청주 상당구 문화동의 표구사에서 15살 때부터 일했다.

이곳에서 그의 스승인 고(故) 윤병의 선생을 만나 배첩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배첩 장인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그는 "5년 정도는 풀을 쑤고 칼을 가는 심부름만 하면서 작업 과정을 눈으로 익혔지만 의뢰받은 작품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유네스코 직지 상장을 만지는 홍종진 배첩장 [촬영 천경환 기자]

이후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일대 '표구골목'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았다.

10년여의 고생 끝에 남부럽지 않을 정도의 기술을 익혔다고 판단한 그는 1975년 6월 꿈에 그리던 표구사를 청주에 차렸다.

당시 배첩 최고 권위자이자 중요무형문화재(102호) 전수자였던 고(故) 김표영(2014년 작고) 선생을 만나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지역에서 배첩 장인으로 우뚝 선 그는 1999년 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지금껏 그의 손을 거쳐 간 대학과 박물관 소장의 문화재만 1천 개가 넘는다.

진천군 영수사의 영산회괘불탱(보물), 충남 예산 대련사 비로자나불 괘불도(보물) 등은 그의 손을 거쳐 본래의 모습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청주시가 직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해 제정한 직지상(격년제)의 상장 제작에도 손을 보태고 있다.

배첩 작업을 하는 홍종진 선생 [촬영 천경환 기자]

그는 충남 부여 전통문화교육원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의 장인 정신을 보고 자란 아들 홍순천(44) 박사가 제자(전승교육사)로서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걷는다.

홍 박사는 2020년 청주대에서 배첩을 주제로 국내 첫 박사학위를 받은 인재다.

홍 박사는 "배첩을 제대로 하려면 글과 그림 등을 다루는 기술의 측면도 중요하지만, 이론적인 내용도 무시할 수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배첩을 쉽게 설명하는 책을 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홍 장인은 "전통은 지켜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배첩을 대중화하면서 후학을 기르는 데 열중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vodcas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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