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과 중생 품어안은 신들의 세계..경주 낭산을 아시나요

노형석 2022. 8. 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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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기획전 '낭산'
황복사터 황금불상·귀신문양 기와
사천왕사터 녹유신장상 등 한자리
진평왕릉·선덕여왕릉 명복 비는
사찰의 걸작 공예품들도 나와
낭산의 사천왕사 터와 전 황복사 터의 연못 터 등에서 나온 괴수 혹은 용 무늬 기와들. 정교한 조형성과 만듦새로 미뤄 사찰의 격이 최상급이었음을 보여준다. 학계에서는 무늬의 실체를 놓고 귀면(귀신)으로 보이는 괴수 무늬설과 용 무늬설이 엇갈린다.

신라 고도 경주에는 무슨 산들이 있을까? 이런 질문에 으레 떠올리는 것이 불상이 널린 불국토 남산과 석굴암·불국사가 자리한 토함산이다. 반면, 두 산 못지않게 역사적 가치가 지대한 산이 시내에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바로 시내 국립경주박물관 동쪽 배반동에 있는 해발 108m의 낭산이다.

흔히 동서 폭이 좁고 남북으로 죽 뻗은 산세가 이리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이리 낭(狼)을 써서 이름 붙였다고 알려져 있는 이 작은 산은 알면 알수록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신라인들이 가장 신성시했던 토착신앙의 성지로 신들이 거니는 숲인 신유림으로 불렸고, ‘나를 도리천에 장사 지내라’고 유언한 선덕여왕의 능이 있는 곳이며, 신라 최고의 조각가 양지 스님이 당대 세계 최고의 사실주의 조각인 신장상(神將像)의 벽전을 만들어 설치한 사천왕사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이뿐 아니라 발굴하면 할수록 수수께끼가 더욱 무성해지는 신라 왕들의 추모사찰 전(傳) 황복사 터의 자취가 있는 역사의 무대다.

전 황복사 터 석탑의 사리장엄구 안에서 나온, 서 있는 불상. 함께 나온 순금제 불좌상과 더불어 8세기 초 신라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6월 중순부터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낭산, 도리천 가는 길’은 경주 남산과 더불어 신라인들에게 최고의 성지이자 길지로 받아들여졌던 도심 인근의 낭산 유적들의 조사 성과와 유물들을 한자리에 펼쳐놓은 소중한 자리다. 국내 문화재계 초미의 관심사인 산 북쪽 황복사 터의 황금불상과 신라 비석 조각, 목간, 귀신 문양 기와를 비롯해 산 남쪽 능지탑 안에 있다가 흩어졌던 소조불상 파편 유물, 산 서쪽에 있는 사천왕사 터의 저 유명한 녹유신장상과 금속제 유물들이 모두 한자리에 망라되는 초유의 기획전이다.

1970년대 낭산 능지탑을 발굴할 당시 나온 통일신라시대 거대 소조불상의 발 부분 조각. 신체 근육의 활력과 부분적 특징을 정확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모두 5개 주제로 구성된 전시장의 서두 ‘낭산으로의 초대’는 경주 분지에서 낭산의 위치와 낭산에 분포한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1부 ‘신들이 노닐던 세계’에서는 사천왕사와 전 황복사 터 등 낭산의 사찰에서 여러 모양의 불교적 도상인 신장상이 만들어진 배경을 소개한다. 토착 신앙의 성지였던 낭산이 신장상 조성 등을 통해 불교라는 종교 사상의 공간으로 탈바꿈했지만, 신성한 성지란 인식과 국가를 지켜준다는 상징성이 유지되어왔음을 사천왕사 터 출토품인 양지 스님의 신장상과 최근 출토된 황복사 터, 금당 터의 신장상, 능지탑의 십이지신상 등을 통해 알려준다.

낭산 능지탑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불상의 머리편. 펑퍼짐한 면상에 거칠고 소탈하게 눈, 코, 입 등을 표현했다. 낭산이 세월이 갈수록 왕실귀족에서 민중의 기원처로 품이 넓어졌음을 일러주는 유믈이다.

2부 ‘왕들이 잠든 세상’은 진평왕릉과 선덕여왕릉이 낭산 일원에 들어서면서 낭산 일대가 신라 왕들의 안식처로 자리매김한 역사를 왕의 명복을 비는 사찰의 건립 내력과 걸작 공예품들을 통해 보여주는 영역이다. 특히 1942년 전 황복사 삼층석탑에서 수습된 사리장엄구가 이런 역사적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전시의 고갱이라고 할 수 있다. 국보로 지정된 금제 불상 2구를 비롯한 사리장엄구가 1942년 첫 발굴로 세상에 나온 지 80년 만에 처음 한자리에 모여 최근 절터에서 나온 작은 미니불상들과 함께 선보이고 있다.

낭산 능지탑에서 출토된 불상의 머리들. 고려시대 작품으로 펑퍼짐한 면상에 거칠고 소탈하게 눈, 코, 입 등을 표현한 점에서 낭산이 세월이 갈수록 왕실귀족에서 민중의 기원처로 품이 넓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3부 ‘소망과 포용의 공간’에서는 낭산이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넘어 세월이 흐르면서 평민들의 소망을 비는 중생 공간으로 더욱 품이 넓어졌음을 드러낸다. 국립경주박물관과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이 소장한 능지탑 발굴품이 단연 돋보인다. 능지탑의 원형을 짐작게 하는 벽전(甓塼)과 상륜부 장식도 처음 공개한다. 일제강점기에 낭산 서쪽 자락에서 발견되었다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진 십일면관음보살상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약사불 좌상이 해방 이후 처음 만나 함께 전시되는 것도 뜻깊은 일인데, 현실의 고뇌를 벗어나길 염원하던 신라인들의 마음 자체를 형상화한 듯하다.

지난 6월15일 ‘낭산, 도리천 가는 길’전 개막식이 열린 뒤 조계종 종정인 성파 대종사와 최응천 문화재청장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들이 보고 있는 유물은 전시의 핵심인 전 황복사 터 석탑 사리장엄구의 순금제 불좌상이다.

그동안 일반 대중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던 경주 낭산과 그 문화유산의 역사성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지대한 전시다. 낭산 일대를 조사·연구해온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재)성림문화재연구원이 힘을 합쳐 공동으로 개최한다는 점도 특기할 만한다. 새달 12일까지.

경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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