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아저씨' 英 작가 레이먼드 브릭스 별세

이태훈 기자 입력 2022. 8. 12. 07:00 수정 2022. 8. 1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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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언론 "약한 존재에 주목, 풍성한 삶 살았다"
9일(현지시각) 별세한 작가 레이먼드 브릭스의 생전 모습.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대표작 '눈사람 아저씨' 캐릭터와 함께 서 있다. /AP연합뉴스

그림책 ‘눈사람 아저씨’(1978)로 가장 잘 알려진 영국의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레이먼드 브릭스(88)가 9일(현지시각) 별세했다.

그의 가족은 영국 언론에 “그는 풍성하고 온전한 삶을 살았다”며 “그의 책을 사랑했던 세계의 수백만 사람들이 슬퍼할 것을 안다. 그의 작업실 벽에는 팬들, 특히 어린이들이 그의 책을 보고 그린 뒤 보내온 그림들이 보물처럼 걸려 있다”고 했다. 가족은 브릭스가 “일간지 가디언이 그를 가리켜 ‘우상파괴적 국보(iconoclastic national treasure)’라고 했던 말을 좋아했다”고도 했다. 텔레그래프는 “가슴 저미는 책들을 통해 인생의 약자(underdog)들을, 또 희망, 꿈, 현실 사이의 긴장을 그려냈던 작가”라고 했다.

1934년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열다섯살 때 일반 학교를 그만두고 “만화를 그리고 싶어” 윔블던 아트 칼리지에 입학했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슬레이드 예술대학을 다녔다. 1966년 전래 동요 모음집 ‘마더 구스의 보물단지’ 일러스트로 영국의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 케이트 그리너웨이 메달을 받았고, 1973년 ‘산타 할아버지’로 다시 한번 이 상을 받았다. 2017년에는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다.

1978년 출간된 ‘눈사람 아저씨’는 전 세계에서 550만 부 넘게 팔렸다. 둥글둥글 귀여운 파스텔톤의 그림은 같은 제목의 1982년작 애니메이션을 통해 더 유명해졌다. 하지만 브릭스는 상업적으로 달콤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싫어했고, 그게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눈사람 아저씨’는 전세계 방송이 성탄절 시즌마다 단골 손님처럼 내보내는 어린이용 영화가 됐지만, 정작 생전의 그는 “내게 이상적인 크리스마스란 방공호에 들어가 모든 소음이 사라질 때까지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자료=각 출판사

브릭스의 작품은 자주 신랄하고 거침없었다. 우유 배달부 일을 했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린 ‘산타 할아버지’ 속 남자는 끝없이 돌아오는 크리스마스가 즐겁기보다 권태롭고 이곳저곳 아픈 몸이 힘겹다. ‘바람이 불 때에’의 노부부는 핵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뒤에도 어리석은 정부 지시를 그대로 따르며 죽어간다. 어두운 터널 속에 살며 사람들을 놀래키는 ‘괴물딱지 곰팡씨’의 주인공 녹색 괴물은 ‘정말 삶엔 이것 뿐인거냐’며 존재의 덧없음을 한탄한다.

영국인들 특유의 냉소적 풍자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2012년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내게 해피엔딩은 없다. 눈사람은 녹을 것이고, 내 부모는 돌아가셨고, 동물은 죽으며 꽃은 시든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특별히 우울해 할 것도 없다. 그게 인생의 진실이니까.”

2017년 2월 9일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열린 북트러스트 평생 공로상 축하연에 참석한 생전의 레이먼드 브릭스. /로이터 연합뉴스

브릭스의 책을 펴낸 펭귄 랜덤하우스의 프란체스카 다우 편집주간은 텔레그래프에 “그의 책들은 놀라운 언어와 일러스트의 간결함으로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근원적 질문을 제기한 걸작이었다”고 했다. 그는 또 “브릭스는 놀라운 관찰자이자 신나는 이야기꾼이었고, 어른이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방식보단 인생에 대해 더 솔직했다. 친절함과 진실성, 너그러움이 그의 모든 책을 관통해 흐른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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