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언니를 둔 탈출 전문견 고메리의 하루

정우열 입력 2022. 8. 12.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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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친구네 가게에서 수다를 떨 때였다.

G가 리드줄을 잡았다.

우리 뒷집 일락이도 매일 자기가 원하는 만큼 동네를 쏘다니다가 때 되면 집에 잘 돌아가서 잔다.

요즘도 가끔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판사 언니를 둔 탈출 전문견 고메리가 담을 넘고 있진 않은지 쳐다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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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의 오후] '짝이 되는 동무.' 반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고양이, 개, 식물 등 짝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들의 단상을 담았습니다.
탈출 전문견 ‘고메리’가 자기 집 앞에 멈춰 섰다. ⓒ정우열 제공

동네 친구네 가게에서 수다를 떨 때였다. 어어어? 밖으로 시선을 돌린 G가 홀린 듯 뛰쳐나갔다. 커다란 흰 개가 내리막길을 신나게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G가 막아서자 개는 순순히 멈췄다. G가 리드줄을 잡았다. 뒤따라 내려오던 아저씨에게 G가 말을 건넸다. 아저씨는 손사래를 친 다음 가던 길을 갔다. G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왜, 아저씨가 자기 개 아니래? 응, 모르는 개라네.

이런 경우 제주도 사람들에게 물으면 십중팔구, 까지는 자신이 없고 십중오륙은 개를 그냥 내버려두라고 말한다. 알아서 제집에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우리 뒷집 일락이도 매일 자기가 원하는 만큼 동네를 쏘다니다가 때 되면 집에 잘 돌아가서 잔다. 일락이 같은 개를 보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된다. 네가 이 동네에서 제일 행복한 생명체구나. 마음 같아서는 모든 개들이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도무지 의미 없어 보이는데 물어뜯으면 안 되는 물건들로 가득한 집안에 종일 갇혀 지내야 한다니, 그러다가 느려터진 발걸음에 맞춰 옹색한 산책을 하는 정도로 만족하며 살아가야 한다니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원통한 일이다. 하지만 친애하는 털북숭이 친구들이여, 슬프게도 더는 예전처럼 살아갈 수가 없노라.

줄을 붙잡고 얘가 가자는 대로 한번 따라가보면 어떨까요? 친구의 제안을 따른 것을 슬슬 후회하고 싶어졌다. 날은 진작 저물었고 개는 벌써 한 시간 넘게 탐색과 질주를 반복했다.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동물구조팀이죠? 제가 길에서 (또) 개를 주웠는데…. 통화를 마친 후 개에게 말했다. 아가, 보호소에서 일주일만 기다리고 있어. 아저씨가 좋은 임시 보호처 찾아서 꼭 데리러 갈게.

문득 개가 멈춰 섰다. 커다란 이층집 대문 앞이었다. 여기니? 여기가 너희 집이야? 개가 문 앞에 앉았다. 집 안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초인종을 여러 번 눌렀지만 응답이 없었다. 전화가 걸려왔다. 동물구조팀입니다. 근처에 왔는데 어디 계세요? 마음이 급해졌다. 개가 멈춰 선 이층집 아래에는 폐업한 지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횟집 간판이 걸려 있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간판에 쓰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 저희는 작년에 이사했는데요. 혹시 예전에 하시던 가게 건물 주인이 그 위 이층집에 사는 분일까요? 네, 맞아요. 이층집 주인 전화번호를 받아서 또 전화를 걸었다. 어어, 하얀 개? 빨간 줄? 우리 개 맞는데. 집에 집사람이 있을 건데? 부우우웅 끼익. 안녕하세요, 동물구조팀입니다. 유기견 신고하셨죠? 아 네, 하긴 했는데, 개가 여기가 자기 집이라고 말하는 거 같아요. 2층에서 불이 켜졌다. 개가 꼬리를 하도 세차게 흔든 나머지 엉덩이까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메께라, 짜이 어느제 또 담 넘어시냐! 어디 강 와시냐!?

개의 이름은 메리라고 했다. 성은 고씨, 고메리. 나이는 방년 아홉 살. 자꾸 담 넘어 집을 나가서 긴 줄로 묶어놨는데, 그래도 가끔 어떻게든 줄을 끊고 탈출을 감행한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차로 한 시간 거리인 제주시 이도동에서 발견된 적도 있는데 그때 개를 방치했다는 사유로 벌금 30만원을 물었다고 했다. 또 벌금 물어요? 동물구조팀이 신상정보를 묻자 메리 보호자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이번엔 저희가 데려가기 전에 이분이 집 찾아주셔서 벌금은 안 내셔요. 아이고, 고마워요, 고마워요. 우리 딸이 제주법원 판사인데…. 메리 보호자는 한사코 자신의 전화번호를 내게 알려주며 밥을 살 테니 꼭 연락하라고 했다. 요즘도 가끔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판사 언니를 둔 탈출 전문견 고메리가 담을 넘고 있진 않은지 쳐다보곤 한다.

정우열(만화가·일러스트레이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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