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무단 입항해도 막을 방법 없다"..탁상행정 관련 기관 책임 미뤄

손연우 기자 2022. 8. 12.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국 관리소홀에 무단 입항→버젓이 수리 후 출항
"부산항만공사·부산해수청 소통 부재가 논란 키워"
부산 사하구 감천항 서방파제에 계류 중인 스톨트호.2022.8.11ⓒ 뉴스1 손연우 기자

(부산=뉴스1) 손연우 기자 = 최근 부산 사하구 감천항에 무단으로 입항한 '스톨트 그로인란드'호(케이맨제도 국적, 2만8881톤)와 관련해 관계 기관의 관리소홀 문제가 드러나자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톨트호는 2019년 9월 울산에서 대형 폭발·화재가 발생했던 선박이다. 사고 당시 선내에는 소량만 유출돼도 인체에 치명적인 스티렌모노머(SM)를 비롯해 수십 종의 유해 화학물질 2만3000톤가량이 실려 있었다. 선사는 이 물질들을 비롯해 사고 당시 발생한 폐기물 처리와 선박 수리를 위해 스톨트호를 2020년 5월 경남 통영으로 옮겼다.

통영에 머무르는 동안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며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그 사이 스톨트호는 네덜란드에 본사가 있는 'STOLT TANKER'사 소유였다가 수리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해 부산의 선박해체 기업 A사에 매각됐다. 내부 화학물질과 폐기물이 완전히 처리됐는지 여부는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다.

A사는 지난 5월4일 이 배를 감천항 선기조합조선소로 들여오기 위해 입항 허가 신청서를 부산항만공사에 제출했다. 하지만 BPA는 선기조합조선소의 계류 시설이 2만8881톤이나 되는 스톨트호를 수용할 수 없는 작은 규모라며 반려했다.

이에 A사는 허가 신청서를 낸 당일 무단으로 스톨트호의 감천항 입항을 강행했다. BPA는 이를 알고도 신고조차 하지 않다가 입항 23일 뒤인 5월27일 부산해경에 무단 입항으로 신고했다. 더욱이 BPA는 스톨트호가 감천항 서방파제에 계류할 수 있도록 시설 사용을 허가했는데, 당시 서방파제는 정밀 안전진단 중이었다. 공사 중으로 위험성이 있는 상태인 데도 접안까지 허락한 것이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은 스톨트호 무단입항 사실조차 모른 채 A사가 접수한 서류만 확인하고 스톨트호를 7월12일까지 수리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스톨트호 내부에 실려있던 인체 유해 물질과 폐기물 등이 안전하게 처리된 상태로 입항했는지 해상오염 위험은 없는지 등에 대해 사전에 따로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다.

부산해수청은 스톨트호 무단 입항 사실을 뒤늦게 알고 수리 허가를 취소했지만 수리는 이미 진행된 상태였다. A사는 현재까지도 해상크레인과 사다리를 동원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A사는 감천항에서 스톨트호를 해체한 뒤 고철 등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해체 시 해양오염 등을 이유로 지역민들의 반대가 드세지자 선박 수리 중 외국 선사에 매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톨트호는 이르면 이번 주말쯤 출항할 예정이다.

관계당국의 관리 허술로 버젓이 무단 입항한 뒤 선박수리까지 마치고 출항하게 된 상황이다. 해경이 현재 선박입출항법 및 항만법위반으로 조사하고 있지만 출항을 막을 수 없고 다만 A사 대표나 선사에 대해 벌금 등의 처벌이 내려질 것으로 전해졌다.

스톨트호에 사다리를 연결해 관계자들이 수리작업을 하고 있다.2022.8.11ⓒ 뉴스1 손연우 기자

문제는 현재 국내 주요 항만에 무단 입항을 시도하는 선박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는 것 외에는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스톨트호처럼 사고로 인해 운항능력을 상실한 특수 상황에 놓인 선박에 대한 후속 조치 매뉴얼도 없다. 관계기관 간 소통 부재가 이번 논란을 더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A사 대표 정모씨는 "스톨트호는 사고 이후 수리가 완료되지 않아 동력이 없는 상태였다.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다가 태풍 등 재해가 발생하거나 사고 위험성이 컸다. 무단으로라도 입항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선박업계 관계자 이모씨는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탁상행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관계기관이 업무 협의도 하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며 "감천항 일대만 해도 너무 많은 문제와 불법이 있지만 관련 기관들이 알고도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산항만공사 관계자는 "무단으로 들어온 선박에 대해 강제로 회항시킬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없다. 책임 기관이 어딘가에 대해서도 유관 기관들이 모여 대책회의 때 논의가 됐지만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부산해수청 관계자는 "하루에 선박 수리 신청이 20~30건씩 들어오는데 일일이 현장에 가서 살필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 선박수리는 며칠씩 늦어지면 안 되는 부분이다 보니 바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스톨트호의 무단입항 사실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박상익 전국해운노동조합협의회 법률재정팀장은 "관계 당국 간 유기적 협업이 이뤄지지 않으면 제도적 공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입출항 및 항만사용 등에 대한 업무 이원화 등을 모니터링해서 허점을 보완하는 컨트롤 타워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운전부자유선이나 사고 선박으로 인한 항만의 안전 및 통항선박의 안전에 위협이 있는 경우 항만안전 등에 대한 진단을 시행하고 그에 따라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그는 "위험을 방치한 선주에게는 징벌적 패널티를 부과하거나 무리하게 작업을 진행할 경우 구상권 등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syw5345@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