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대장 내시경 검사

2022. 8. 12.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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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을 만나면 나오는 비슷한 걱정 가운데 하나는 부모님의 건강이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나는 장인·장모님이 걱정의 축이다.

사위의 발령으로 3년쯤 뉴욕에 가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딸아이는 혼자 있는 나를 걱정한다.

나는 검사를 앞두고 걱정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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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을 만나면 나오는 비슷한 걱정 가운데 하나는 부모님의 건강이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나는 장인·장모님이 걱정의 축이다.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장인과 뇌경색 병력이 있는 장모님의 병원 일정이 만만치 않다. 딸들이 순번을 정해 잘 감당해도 가끔 사위 차례가 돌아온다. 자식의 도리로 기꺼이 나서는데도, 그분들은 사위의 등장이 고마우면서도 영 미안하신 모양이다. 애써 사위는 자식 아니냐며 농담 반으로 섭섭한 티를 내면 더 미안해하시니 그것도 참 쉽지 않다.

김훈 작가의 단편소설 <대장 내시경 검사>의 주인공은 3년에 한번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는다. 70세 이상의 고령자는 수면 내시경을 받으려면 보호자가 동행해야 한다. 두 아이 챙기며 직장 다니는 딸아이는 부탁하면 오겠지만 번거로움이 크고, 5년 전에 이혼한 전처를 부르자니 면목 없고, 동네 노인들끼리 품앗이도 한다지만 그만큼 어울림도, 주변머리도 없다. 결국 집에 일주일에 한번 청소하러 오는 도우미 여인에게 부탁했다. 사모님이 하는 일 아니냐며 쑥스러워하는 여인에게 일당을 얹어주고 승낙을 얻었다.

3년 전 검사에서 용종을 제법 잘라낸 뒤로 큰 병이 있을까 싶어 검사를 기다리는 보름 정도는 일상의 감정조차 사뭇 다르다. 사위의 발령으로 3년쯤 뉴욕에 가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딸아이는 혼자 있는 나를 걱정한다. 이혼하면서 아내에게 재산을 나눠주느라 안 팔리는 집 대신 대출을 받아 그 이자 갚기도 점점 버겁다. 그나마 가끔 전처 소식을 전하는 딸아이가 여행 간 엄마 대신 화분에 물 주러 간다는 걸 보면 나보다 잘사는지 싶다.

미국으로 이민 간 옛사랑이 40년 만에 예전 직장으로 편지를 보냈다. 장성한 아들의 취직을 부탁하는 그녀의 편지는 안 그래도 좁은 마음에 짐을 하나 더 얹는다. 대출 이자가 버거워 부동산에 집을 내놓은 지 오래인데 팔려면 집값을 내리라는 말만 거듭한다. 옛 애인의 편지가 마음에 밟혀 그 아들을 만나보니 염치없이 어디 내놓을 만큼 간절하지도, 유능하지도 않다. 그때 옛사랑의 유방암 투병 소식이 묻어온다. 나는 검사를 앞두고 걱정만 늘어간다.

결혼식 주례를 서주신 은사님의 부고에 장례식장을 찾았다가 전처의 뒷모습을 본다. 취업 알선 이력서를 전 직장에 보냈다가 어렵다는 답을 받는다. 집값을 얼마나 내리겠느냐는 부동산의 독촉 전화를 받는다. 대장 내시경 검사 이후에 할 일을 정리하는 주인공을 보며 구순을 바라보는 장인·장모님의 미안한 마음을 이해한다. 건강검진 결과를 기다릴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뇌경색과 어머니의 간암이 내게도 전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내 모습이 겹친다.

일상이 주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는 건강한 몸을 방해한다. 마음을 다잡아야 몸이 건강하다 하니,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따라서 금방 무너지기 마련이다. 지금 부모님 세대는 미안한 마음 미뤄두고 자식들의 도움을 받는다지만 지금의 50대는 30년 후에 누구의 도움을 받을까? ‘지금 소설과 영화들이 말하는 인공지능(AI) 로봇의 도움을 받으려면 기계 사용에 영민해야 할 텐데’, 아니 ‘돈이 좀더 있어야 할 텐데’ 하는 일상의 염려가 얹어지는 독서였다.

김재원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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