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재현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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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의 불행을 '재현'할 때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재현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사태의 본질을 드러내겠다는 선한 의도가 있을지라도, 어떤 재현은 재현만으로도 대상을 타자화하고 그의 불행을 단지 '구경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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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의 불행을 ‘재현’할 때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재현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사태의 본질을 드러내겠다는 선한 의도가 있을지라도, 어떤 재현은 재현만으로도 대상을 타자화하고 그의 불행을 단지 ‘구경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지점에서도 폭력과 고통, 불행의 전시 자체를 문제로 보고 금기시하는 쪽(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과 재현이 불러일으킬 연대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쪽(수지 린필드, <무정한 빛>)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곤 합니다.
대통령실이 기록적인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사고 현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을 국정홍보용 ‘카드뉴스’로 만들어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이를 도로 삭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삭제된 카드뉴스에는 윤 대통령이 사고 다음날 현장인 반지하 창문 앞에서 관련 상황을 보고 받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비난 여론이 빗발쳤던 핵심에는 ‘참사를 국정홍보에 동원했다’는 분노가 있습니다. 거기에 정부의 부족했던 대처, 내내 불성실했던 대통령의 언행 등이 불러온 분노까지 더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쪼그리고 앉아 반지하방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진 속 대통령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치 ‘구경하는’ 듯한 인상을 받은 게 아닐까 합니다.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고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 역시 환영보단 의구심을 더 자아냅니다.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는 명징한 사실 앞에서, 정치와 정책이 조금 더 조심스럽게 타인의 고통을 보듬어주길 바라는 것은 과연 무리일까요.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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