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반윤리의 오디션, 누구에게 투표하시겠습니까?

한겨레 입력 2022. 8. 12. 05:06 수정 2022. 8. 1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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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산업이 거대해지고, 아이돌 그룹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정도를 측정하는 이 시점에서는 이를 다룬 문학 작품이 많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들은 많은 사람이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대상을 지고지순하게 다루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돌을 포함, 그를 만들어내는 산업에 혐오와 경멸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아이돌을 다룬 작품을 생산함으로써 여전히 그 산업의 성실한 소비자이며 2차 생산자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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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디 아이돌
누가 당신의 소년을 죽였을까
서귤 지음 l 위즈덤하우스(2022)

연예 산업이 거대해지고, 아이돌 그룹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정도를 측정하는 이 시점에서는 이를 다룬 문학 작품이 많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소설들의 입장은 대체로 다중적이다. 이들은 많은 사람이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대상을 지고지순하게 다루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돌을 포함, 그를 만들어내는 산업에 혐오와 경멸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아이돌을 다룬 작품을 생산함으로써 여전히 그 산업의 성실한 소비자이며 2차 생산자로 남는다.

서귤의 <디 아이돌: 누가 당신의 소년을 죽였을까>는 아이돌 산업의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사회 고발성 살인 미스터리이다. 한때 대한민국을 뒤흔들 만큼 팬을 모았으나, 그 뒤의 조작 스캔들로 볼드모트처럼 이름을 언급하기 어려운 오디션 프로그램을 소재로 했다. 제9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우수상이라는 타이틀도 이 거대 팬덤의 존재를 기억했기에 가능했으리라. 배경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일정 정도 공감을 주는 설정이라는 뜻이다.

대국민 아이돌 그룹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 <디 아이돌> 촬영 중, 간식 상자에 든 젤리를 먹고 양준우라는 연습생이 사망한다. 메인 피디 장인혜도, 방송국도 이 연습생의 죽음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이에 따라 꺾일 프로그램만이 문제이다. 장인혜는 도박 빚까지 졌으므로 어떻게든 프로그램을 살려야 한다. 결국 그는 <디 아이돌>의 ‘스핀오프’를 제안하는데, 유력 데뷔 후보이자 용의자인 다른 연습생 10명을 모아 매회 살인범을 찾는 투표를 진행하는 살인범 오디션이다.

반윤리의 극단을 치닫는 <디 아이돌 특별 편: 소년단죄> 방영 후의 광경은 지옥도 그 자체이지만, 현실적 연결은 있다. 우리의 현실도 진실보다는 단죄가 중요한 세계이지 않은가? 자신의 소년을 지키기 위해 악행도 서슴지 않는 팬들, 경쟁에 몰려 서로를 살인범으로 지목하는 연습생, 연습생들이 받을 타격은 아랑곳하지 않고 출연을 종용하는 기획사, 화제성만 얻을 수 있다면 ‘몰래 카메라’부터 최면까지 가리지 않는 방송국, 선정적 스캔들에 신이 난 언론사, 새로운 사실이 나올 때마다 입장을 바꿔가며 누구든 처단하려는 대중. <디 아이돌>은 소설 속 사건이 무엇을 참고했는지 구체적으로 떠오를 정도로 생생하게 케이팝 시장의 그림을 그려 나간다. 하지만 살인 미스터리에 그만큼은 관심이 없다. 관계자들의 치부를 밝혀 처단하는 데는 열의가 넘치지만, 피해자는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 수도 없다.

매 장을 넘길 때마다 경악할 범죄가 드러나고, 이를 밝히는 데서 오는 긴장감과 풍자는 있다. 그렇지만 인터넷 게시판의 집합체 같은 이 소설에서 인물이나 사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연속하는 고발 속에서 새 용의자를 끌어낼 뿐이다. 여기서는 그 누구에게도 이입할 수 없다. 이런 거리감이 소설적 의도라면, 인간을 지우고 상품으로 소비하는 현재 연예 산업의 이면을 형식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성실한 묘사에서 빚어진 우연이라면 약간은 슬프기도 하다. 이 또한 끝없이 선정적인 소재를 찾아 화제를 만드는 연예 산업과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성이 대중 서사에는 늘 공존하겠지만, 아직은 전자의 의도를 믿어보고 싶다.

박현주/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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